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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독서 학습

[김성민의 독서학습] 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김성민의 독서학습 - 국가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단순한 절차와 제도의 집합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절차와 제도를 대하는 

의식과 태도를 포함한다. p.314


 촛불이 타오르는 광장에서 우리의 마음을 한마디로 압축해 표현한 듯한 문구가 올려진다. '이게 나라냐'.  마치 이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유시민 작가는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의 책을 개정판으로 내놓았다.  학교다닐 때 국가의 3요소라고 '영토' '국민' '주권'을 달달 외워 시험에 답을 적곤 했다.  그러나 한번도 진심어리게 국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할 때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는 '대한민국'도 국가이며, 치솟는 물가와 실업률과 자살율 아파트값이 상승하여 헬조선이라고 비난하는 대상도 국가이다. 우리는 국가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며, 국가란 어떠해야 하는가?  이 책은 '이게 나라냐' 라는 밑도끝도 없는 불만스러움에 대한 합리적 답변이라고 여겨진다. 


 책을 전체적으로 살펴본다면 7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의 형태를 띄고 있다. 

- 국가를 보는 세가지 입장 (국가주의,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제1장~제3장) 

- 국가는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플라톤, 맹자, 칼 포퍼) (제4장)

-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피히테, 르낭, 톨스토이) (제5장) 

- 국가 변혁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마르크스, 톨스토이, 칼 포퍼, 하이에크) (제6장)

- 진정한 진보 정치란 무엇인가 (배블런, 김상봉, 이남곡, 아리스토텔레스) (제7장)

- 국가가 이상으로 삼아야 할 가치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니버, 마르크스) (제8장)

- 정치인에게 필요한 윤리는 무엇인가 (칸트, 베버, 베른슈타인 ) (제9장) 


  먼저 저자는 2009년 남일당 빌딩에서 진압중 화제로 인해 농성자 5명과 한명의 경찰이 목숨을 잃은 '용산참사'를 가져와 그것을 바라보는 4가지 시선으로 이야기를 연다. 각각의 시선은 '국가란 무엇인가' 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주의에 대한 정당한 철학적 기반을 닦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시작으로 해서 로크, 루소, 애덤스미스 등으로 이어진 자유주의국가, 국가 자체를 계급적 억압과 착취의 주체로 규정한 마르크스 주의를 다룬다. 


  누군가는 강력한 권력을 바탕으로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갈등과 다툼을 잠재우고 안정화시키며 외부로부터의 적을 확실히 대적하여 자국민을 보호할 국가를 꿈꾼다. 때로 그 국가에 소속된 국민의 자유가 억압을 받더라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자체이다 라는 것이 사회계약론을 말한 홉스의 국가주의의 기본 입장이다. 국가 자체가 없거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소말리아나 시리아의 국민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가는지를 사례로 들며 이론적일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상당히 지지를 받는다라고 본다. 반면 이것에 절대성을 부여하게 되었을 때 독재권력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어지기도 하는 위험성이 있다. 


(11년판)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홉스의 대답은 명확하다. 국가는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이다. p.25

국가주의 국가론은 가장 강력한 감정인 두려움을 정서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 내부 혼란과 침략의 위험이 상존하는 ‘국민국가’의 시대, 더욱이 이데올로기적・군사적 대결을 동반한 한반도 분단체제가 계속되는 한, 대한민국에서 홉스의 국가론은 앞으로도 위력을 떨칠 것이다. p.50


  반면에 국가가 아닌 국민 개개인의 자유에 초점을 맞춰 국가는 국민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때를 제외하고는 권력을 휘둘러서는 안된다는 자유주의 국가를 바람직한 국가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보면 당연했지만 무지했던 개념이 여기에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국가'와 그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건 상식적인 말이지만,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을 마치 반국가단체로 몰아가는 작금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입장이었다. 만일 이 입장을 취한다면 잘못된 정권과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마땅한 권리를 갖고 몰아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법치주의를 강조한 데서 그친 존 로크와 달리, 루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가 법치주의를 위반하는 경우 인민에게 정부를 무너뜨릴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런 논리를 펴기 위해 루소는 국가와 정부를 매우 엄격하게 분리했다. p.65

라스키는 정부에 주권이 없다고 보았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 국가에도 국가가 관할하는 최고의 강제 권력을 운영할 인간집단이 필요하다. 이 인간집단을 정부라고 한다. 국가와 정부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은 정치학의 기본 상식이다. p.68


 앞선 2가지 입장은 국가라는 것은 그 존재의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반면에,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이 마르크스 주의였다. 마르크스는 역사를 계급 투쟁의 연속으로 보았고, 지배계급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기관이 '국가'라고 하였다. 이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고 했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트라시마코스'의 입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반공사상을 강력하게 학습했던 세대에게는 마르크스의 '마'자만 나와도 부정적 시선을 갖게 되지만 마르크스가 바라본 국가는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국가의 모습을 어느정도 사실적으로 나타내준다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한계점도 있음을 이 책은 지적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이 국가를 파괴하고 애국심을 부정한다는 비난은, 진지한 마르크스주의자에게는 비난이 될 수 없다. (중략) 국가가 만인을 위한 공동사회가 아니라 계급지배의 착취도구에 불과하다면,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 그들에게 없는 것을 빼앗을 수는 없는 일이다.  p.87

포퍼의 해석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의 방법론이 아니라 순수한 역사이론이다. (중략) 마르크스는 어떻게 하면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지, 국가권력을 탈취한 이후 어떻게 사회를 재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p.94


이처럼 구분된 3가지 국가에 대한 입장은 앞서 언급한 다양한 질문에 녹아들어가 답변을 이끌고 있다. 누가 국가를 운영해야하는가. 애국심이란 무엇인가. 혁명인가 개량인가.  어떤 국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국가운영의 주체도, 국가운영의 방향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역사속에서 이렇게 격돌해왔던 국가에 대한 생각이 2000년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헌법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것은 다양한 관점에 대한 존중에 있었다. '내편 아니면 모두가 적'이라는 도식적인 관점이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 여러 관점이 뒤섞여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작용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떤 하나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무조건 비난할 이념도 없다고 여겨진다. 우리 사회는 태극기와 촛불이라는 2가지 절묘한 상징으로 나뉘어져 있다. 국가주의, 애국심, 안정, 보수 등으로 연결되는 태극기와  자유주의, 개인, 민주 라는 상징의 촛불. 왜 그것이 태극기여야 했고 촛불이여야 했는지를 이 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단지 아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저자는 좋은 정치가가 가져야 할 덕목으로 베버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지만,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도 동일하게 생각해봐야 할 말이다. 


베버는 좋은 정치인의 자질로 세 가지를 들었다. 열정, 책임의식, 균형감각이다. p.257

열정은 대의에 헌신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것은 지적 흥미를 느끼는 일에 낭만적으로 몰두하는 ‘비창조적 흥분상태’와 구별해야 한다. p.278


서구사회에서 수백년을 걸치며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힘들게 이뤄왔던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우리는 정말 짧은 시간내에 누군가의 선물처럼 뜬금없이 받았다. 선물이 나의 것이 되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작금의 사태를 통해 이제는 국가와 정부, 그것을 대하는 국민의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조금은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완벽한 시스템이 있어서 신경쓰지 않고도 잘 운영될 수 있는 국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우리는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만일 누군가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며 투표를 소홀히 하거나, 누가 되거나 다 똑같지 하는 냉소주의로 정치를 외면하게 되었을 때, 권력을 폭력으로 삼고자 하는 자들은 더욱 세를 떨치게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함을 이 책을 읽으며 마음에 담게 되었다.  그래서 유시민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절차와 제도의 집합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절차와 제도를 대하는 의식과 태도를 포함한다. p.314



 처음에 2011년판을 읽고 나서 2017년 개정판을 보았는데, 2011년 이후 추가된 역사적 상황과 특히 최근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 대한 내용 사례가 많이 담겼다. 정치인에서 전업작가로의 변화가 글의 디테일한 문장을 다듬게 되었다고 하는데, 전체적으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탄핵사태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들이 많이 나와서인지 2011년 판이 보다 깔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IMF 이후의 국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했겠지만, 사회보다는 개인의 성취와 자기개발이 지대의 관심이었다. 그러나 경기장이 기울고 경기규칙이 편파적인 곳에서 선수개인의 기량을 키우는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설령 나 하나 노력해서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실패를 발판삼았음을 인식하게도 된다. 그렇기에 다시금 시선을 개인에게서 사회로, 사회에서 국가로 눈을 돌리게 되는데, 이 책은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느리지만 거북이처럼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삶을 꿈꿔본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