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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독서 학습

[김성민의 독서학습] 사진에 관하여 - 수전 손택

[김성민의 독서학습 - 사진에 관하여]


사진은 

경험을 증명해 주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경험을 거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p.26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근처 공원에 가서 놀았다. 주말만이라도 아내가 아이로 부터 떨어져 혼자만의 해방감을 만끽하게 하고픈 남편의 기뜩한 마음에서 얼마전부터 시작한 의식이다.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잘 한다고 했던가. 정작 노는 것은 아이들이 알아서 뛰어다니며 놀고, 나는 옆에 있다가 간간히 사진을 찍어서 아내에게 아이들 잘 놀고 있다며 문자메시지로 사진전송과 함께 보고를 한다. 



 사진은 현대사회에 너무나 당연히 존재하는, 어쩌면 존재해야만 하는 매체로 인식되어진다. 스마트폰의 카메라기능이 좋아지면서 사진으로 소통한다는 것은 모두의 일상이 되어버린 듯 하다. 심지어는 사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거대한 글로벌 기업이 되어버린 인스타그램이라는 회사가 나오기도 하지 않았던가. 


  이런 보편적 기록의 도구 정도로 생각해 왔던 사진에 대해 수전손택이라는 예술평론가가 책을 내었다. 사진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기에 읽는 내내 쉽지는 않았다. 사진이 발명된 19세기에 존재하던 사진작가로 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작품에 담긴 의미와 해석이 이어질 때에는 책을 당장이라도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읽는 내내 내가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현실적인 부분을 평론가의 시각으로 종합해서 새로운 통찰을 던져주는 것에 매료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나는 왜 사진을 찍을까?'  보통은 내가 경험했던 것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기록의 목적으로 찍는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경험을 했다는 사실은 기록되지 않아도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예컨대 20대 중반에 피지라는 낯선 곳에 3개월 가량 봉사활동을 혼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카메라도 없었거니와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은 채 그저 그곳에서 내게 맡겨진 일들을 하다가 돌아왔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왜 그때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지. 하며 아쉬운 마음이 든적이 있다. 왜 사진을 못찍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냐하면 솔직히 고백하건데 그 사진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며 내가 했던 경험을 자랑하거나 적어도 증명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실은 그것을 증명하지 않더라도 내가 3개월간 피지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수전 손택은 사진의 이런 속성에 대해 한번 더 파헤쳐 들어간다. 


사진은 경험을 증명해 주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경험을 거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진으로 찍기 좋은 것들을 찾아다니는 일만을 경험이라고 생각하게 되거나 경험을 일종의 이미지, 일종의 기념품과 맞바꿔버리려고 하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까 여행이 고작 사진을 모으는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p.26


이렇게 증명의 용도로 사진을 찍다보니 사진은 오히려 경험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파리에 가면 에펠탑,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하는 식으로 말이다. 에펠탑과 개선문을 배경으로 하는 사진을 위해 그 사이의 수많은 경험들은 거부되지기도 하더라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서 그 순간의 경험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기도 한다. 아이와 함께 어린이 공연을 보러가서는 내가 하던 역할은 언젠가 이 순간을 다시 보여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스마트폰으로 비디오 촬영을 했다. 두개의 눈으로 그 넓은 공간과 그 내용에 집중하기 보다는 4인치 남짓한 뷰파인더에 나오는 화면을 보면서 공연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찍었던 영상은 나의 노트북 폴더 어딘가에 소중히(?)담겨져서 다시는 본적도 없는데도 말이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사진 한장이 떠올랐다. 



  이 장면은 신규 영화 홍보차 조니 뎁이 왔을 때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서 가만히 자신의 두눈으로 오로지 경험을 누리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주변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다른 사람들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어쩌면 우리는 사진의 기록에 기대어 오로지 몸으로 경험하는 방법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과거에 나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친구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모두 외우고 계셨다. 물론 시골 마을 학교라서 학생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200명 넘는 수였으니 지금 기준으로는 놀라운 기억력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어머니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연락처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위였다고 생각된다. 얼마전 읽었던 오뒷세이아와 같은 구전문학이 정리된 형태를 보면 음유시인들이 그 많은 내용을 모두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다가 사람들앞에 낭송했던것이 아니었는가. 실로 기록이라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을 때에는 기억에 의존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건과 경험에 대해 더 깊은 이해와 기억을 해낼 수 있었을 것이라 본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이거 꼭 찍어놔야해' 라는 말 속에 나중에 보고 추억을 회상하고 떠올리기 위해서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4인치 스크린만 보다가 여행을 마무리 한 사람과 자신의 온전한 두눈으로 여행지를 거닐은 사람과의 경험과 추억은 누가 더 강렬할까 생각해본다. 


  손택은 사진에 관한 다양한 담론들을 꺼내어 놓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사진은 과연 사실의 전달일까? 하는 내용이었다. 그에 대해 한국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어 좀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10여년 뒤에 발생한 베트남 전쟁에서보다 생태계 파괴와 집단 학살이 훨씬 더 철저히 이뤄진 한국 전쟁의 참상을 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면, 미국인들이 그토록 한결같이 한국 전쟁을 묵인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점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그런 사진이 설 만한 자리가 없었으며, 마찬가지로 대중도 그런 사진을 보지 않았던 것이다. p.39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베트남 전쟁을 야만적인 식민전쟁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한국 전쟁은 자유 진영이 소련과 중국에 맞서 벌이는 투쟁의 일부로 받아들여졌고, 이런 특성을 감안할 때 무제한적으로 화력을 퍼붓는 미군의 잔인함을 사진에 담는다는 것은 부적절한 행위라고 여겨졌다. p.41


사진은 한 사건에 명칭이 붙은 다음에야 뭔가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이 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는 그에 상응하는 정치 의식이 존재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p.41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저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고 했던가.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말하는 내용은 정확히 사진에 대한 것으로 해석이 되었다. 동일한 사진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이해되는지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고 한다. 극단적인 형태가 아래 사진인 비키니 섬에 떨어진 원자폭탄 사진이다. 



사진에서는 원자폭탄이 폭발하는 장면도 안전함을 선전하는 목적에 사용될 수 있다.  p.249


때로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어떤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현재 실제로 일어나는 것의 일부를 왜곡하기도 하지만, 사진이 놓여 있는 맥락은 우리로 하여금 전혀 다른 메시지로 받아들이게도 한다. 



  마치 '그거 어제 9시 뉴스에 나왔어' 라고 하면 사실이고 진실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처럼, 사진은 그런 신뢰감을 준다. 같은 장면을 그림으로 사실적으로 표현해놓은 것은 언제든 허구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사진으로 찍혀진 장면은 모두 사실임이 틀림없다고 여겨지곤 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약 1백여 년간 회화를 이끌어온 단순한 유사성이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해 좀더 넓게 해석해보면, 사진의 리얼리즘은 ‘실제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지각한 것을 보여주는 그무엇으로 정의될 수도 있다. p.178


  그러나 사진이라는 매체도 역시 사진작가가 지닌 시선과 지각한 결과물에 한정될 수가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도로시아 랭의 사진>


사진 작가는 사진이 어떻게 보여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선호하는 노출 방식이 있기 때문에, 피사체에 특정한 기준을 들이대기 마련이다. 카메라는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포착한다는 생각도 존재하지만, 사진도 회화나 데생처럼 이 세계를 해석하기는 마찬가지이다.  p.23


위의 도로시아 랭의 사진에서 농사를 짓는 소작농의 얼굴에 비친 피곤함과 굶주린 모습의 앞뒤에는 해맑게 옆 사람과 수다를 떨며 웃고 있는 모습이 있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말이다. 


그 밖에 사진은 예술인가 아닌가, 사진의 오브제, 사진가의 윤리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아쉬운건 앞서 말했던 바와 같이 사진에 대해 배경지식이 조금만 더 가지고 읽었더라면 더 폭넓게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다. 그렇지만 수전손택의 책을 비판하는 비평가들이 그녀의 책이 나올 때마다 '글이 산만하다, 장황하다, 아는 체 한다' '앞에서 했던 말을 뒤에서 바꾼다' 라며 욕설을 한다던데, 역시 읽기 힘들긴 했지만 새롭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독서라서 즐거웠다. 

만약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분이라면 사진의 역사나 대표적인 사진가들의 작품을 조금 알아보고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세상을 새로운 눈을 갖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