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의 창의칼럼 - 세렌디피티가 아니라 본질씽킹이다]
왕궁에서 쫓겨난 세 왕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하염없이 떠돌던 왕자들은 낙타가 지나간 흔적을 보게 되는데 그 흔적을 관찰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이 낙타는 한눈이 멀었고, 이가 빠졌으며, 한쪽 다리는 마비가 된데다가 한쪽 옆구리엔 꿀단지, 다른 편에는 버터단지, 임신한 여자를 등에 태우고 있구먼" 그런 대화를 하고는 여정을 계속 이어갔다. 한참 길을 가던 중 낙타를 잃었다는 상인을 만나게 되었다. 세 왕자는 그 상인에게 자신들이 관찰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한번도 안보고 어떻게 그토록 자세히 알 수가 있냐며 되려 도둑으로 몰려 재판을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완전 꼬여버린 것이다. 그들은 재판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쪽의 싱싱한 풀을 놔두고 반대쪽의 덜 푸른 풀만 먹었으니 한눈이 멀었을 것이고, 발자국 옆의 질질 끌린 자국으로 보아 한 다리가 마비되었을 것입니다. 끊어진 풀이 고르지 못한 걸 보니 이가 성하지 않았을 것이고, 길 한편엔 개미가, 반대편에는 파리가 몰려 있는 것으로 보아 옆구리 양쪽에 꿀단지와 버터 단지를 달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낙타옆에 여성의 발자국 손자국을 보았는데 손자국이 있는 것은 여인의 몸이 무거운 상태임을 보여주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상인은 왕자들이 이야기한 곳에서 헤메고 있던 낙타를 찾게 되었고, 왕자들은 큰 상을 받았다고 한다.
'스리랑카(세렌딥)의 세왕자'라는 이 이야기로부터 훗날 영국의 한 작가에 의해 '세렌디피티'라는 단어가 말들어졌다고 한다. 이는 영어 단어로 '우연적 발견'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창의성과 관련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언급되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가장 유명한 이야기로 목욕탕에서 벌거벗은 상태로 뛰쳐나오며 '유레카' 라고 외쳤던 아르키메데스의 부력의 발견이 그렇다. 또한 혹자는 사과가 떨어지는 우연적 순간을 보면서 만유인력을 생각해낸 뉴턴이나, 실수로 열어두었던 배양접시에 생긴 푸른곰팡이에 균이 번식하지 않는 것을 보고 페니실린을 발명한 알렉산더 플레밍의 사례를 든다. 이 외에도 꿈에서 본 장면을 통해 벤젠고리의 화학구조를 발견하였다거나, 신경전달물질에 대한 실험을 꿈에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는 노벨의학상 수상한 뢰비 박사의 이야기도 있다.
이처럼 수많은 역사적 발견의 순간에는 합리적 인과관계보다는 우연이나 실수에 의해 놀라운 발견이 있었던 것을 착안하여 세렌디피티야 말로 진정한 창의적 방법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대표적인 이론이 영국의 심리학자인 윌러스가 정리한 '창의성 4단계' 라고 하는 '준비 - 부화 - 통찰 - 검증' 이다. 창의적 '통찰'을 얻기 위해 지식을 쌓아두고(준비) 그것이 '숙성' 되기를 기다리다보면(부화) 어느 순간 '아하!!' 하는 순간이 오는데(통찰) 그것이 창의성이라는 말이다. 꽤 그럴듯한 이론이다. 그러나 창의적 아이디어가 필요한 순간 우리가 실제로 적용할 수 있을까? 그건 무리다. 언제 '아하~!' 라고 하는 통찰의 순간이 올지 아무도 말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통찰의 순간을 컨트롤 할 수도 없다. 조교가 배양액 덮개를 열어두는 실수를 해야 하는데 성실한 조교가 자기일을 잘 처리했다면 위대한 발견은 일어날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윌러스의 이론은 역사속의 창의적 발견의 순간을 해석하는 좋은 도구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현실속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을 방법론으로는 뭔가 맞지 않아 보인다.
이것은 애초에 시작부터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세렌딥의 왕자가 했던 것을 순전 '우연적 발견' 이라고 보았으니 문제가 꼬여버린 것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세 왕자가 셜록홈즈와 같은 예리한 추리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은 결코 실수나 우연이 아니었다. 그들은 면밀히 관찰을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성을 이용해서 논리적 결론을 이끌어 내었던 것이다. 개미와 파리가 각각 버터와 꿀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길 좌우에 돋아나 있는 풀의 길이가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흙냄새를 맡으며 지저분한 땅위에서 손바닥 자국을 발견하였다. 이게 과연 우연인가? 어쩌면 그들이 낙타의 발자취를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그런 습관과 삶의 태도는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도 빛을 발했을 것이라 믿는다.
'우연적 발견' 이라고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좋은 것이며 감사한 일이겠지만, 그것이 벌어질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본질씽킹을 해야 한다. 역사속의 수많은 사람들이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을테지만 뉴턴은 사과의 떨어짐과 달의 떨어짐이 본질적으로 같음을 통찰함으로서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황금왕관의 부피와 자신의 몸의 부피가 물에서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작용을 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되었기에 아르키메데스는 임금님의 명령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벤젠고리의 화학구조를 발견하게 된 케쿨레는 어땠는가. 그는 마차안에서 잠깐 졸다가 뱀이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꿈을 꾸게 되었는데, 그때 벤젠과 꿈에서 본 뱀의 형태적 본질을 동일하게 여기어 연구에 몰입한 끝에 방향족 원소인 벤젠고리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케쿨레의 친구들이 자신들도 위대한 발견을 할 생각으로 케쿨레가 탔던 마차를 빌려 잠을 청했지만 어떤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았다고들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연적 발견에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중요한 교훈이 담긴 이야기라 여겨진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본질사고를 하면 되겠는가. 핵심은 '관찰'이다. 열군데도 넘는 회사로 부터 월급을 받는다고 하는 '관점을 디자인하라'라는 책의 박용후 저자는 '틀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찰이다.' 라고 말한다. 창의적 결과를 내놓은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그는 막연하게 우연히 발생할 사건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면밀히 자신의 분야를 끊임없이 관찰했음을 이야기 한다. 자신의 개와 함께 사냥을 나섰던 스위스의 한 남자가 훗날 억만장자가 된 것도 관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조르주 드 메스트랄의 사냥은 순탄치 못했다. 한참을 스위스의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사냥감을 쫓았지만 허탕만 친 것이다. 허탈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오는데 개와 자신의 몸에 수없이 붙어 있는 도꼬마리(산우엉)의 씨를 보게 된다. 보통 같았으면 사냥도 잘 안된데다가 엉망이 된 옷에 신경질 한번 부리고 넘어갈법한데 아마추어 발명가였던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도꼬마리가 잘 붙어서 안떨어지는지를 '관찰'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편리하게 쓰이고 있는 벨크로(찍찍이) 발명의 서막이 된 사건이었다. '본다' 라는 것은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러나 '관찰'을 하는 사람은 적다. 사과의 떨어짐을 본 사람, 목욕탕 물이 넘치는것을 본 사람, 온몸에 씨앗이 들러붙은 것을 본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그것을 관찰한 사람은 소수라는 사실. 그리고 그 관찰의 끝에 결국 본질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공통점은 창의성이 더 이상 '우연'이나 '아하 순간' 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관찰로 부터 시작함을 일깨워준다.
이제 세렌디피티, 유레카, 우연적 발견, 아하 Moment 를 말하지 말고 관찰을 통한 본질씽킹을 하도록 하자. 당신이 역사속 한페이지를 장식하는 위대한 발견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혹시 아는가, 다른 사람은 발견하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되어 조직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자로 인정받게 될런지를...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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