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의 창의칼럼 - 변증법적 창의성]
2016년 하반기에 강남스타일 못지 않은 인기로 전세계 사람들에게 퍼져나간 뮤직비디오가 있었다. 그 제목은 PPAP이다. 범상치 않은 옷을 입고 나와 묘한 미소와 함께 흔들거리며 부르는 모습을 보면 왠지 따라해보고 싶은 충동과 중독성을 느낀다. 황당한 것은 가사다. '펜이 있고 사과가 있는데, 응(?) 하면 ApplePen 이 된다. 펜이 있고 파인애플이 있어서, 응! 하면 PineapplePen 이 된다. 그리고 이제는 ApplePen 과 PineapplePen 을 응! 하면 PenPineappleApplePen(PPAP)이 된다.' 밑도 끝도 없는 가사다. 그래서 뭐 어쨋다는 것인가? 그런데 재밌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그러다가 최근 '처음 만나는 미학' 에서 헤겔의 철학을 접하면서 아주 흥미롭게 연결이 되었다.
중고등학교 윤리시간에 시험에 나온다며 아무 생각없이 외웠던 '변증법'과 '정반합'의 원리가 하나의 창의적 사고로 이어지는 원리로 다가왔다. 먼저는 책에 나왔던 구절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헤겔은 …. 실체가 자기속에 머물러 있어 자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최초의 상태를 즉자적 존재(卽自的 存在, An-sich-sein)라 부르고, 이 즉자 존재가 자기를 자기에서 분리하여 스스로 타자화 하면서 나타나는 상태를 대자적 존재(對自的 存在, Für-sich-sein)라고 한다. 대자 존재의 성립은 실체가 의식을 통해 자기가 무엇인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즉자적 존재가 대자적 존재와의 대립을 해결하고 지양(止揚)된 존재가 바로 즉자대자적 존재 (卽自對自的 存在, An-und-für-sich-sein)이다. 헤겔에게 있어 정신은 즉자대자적 존재가 되었을 때 절대 정신으로 바뀐다. p.234
그렇다. 애플펜과 파인애플펜이 만나 PPAP가 되었듯, 변증법적인 발전의 방식은 즉자와 대자가 만난 즉자대자적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언제 성장하는가? 짧은 인생의 경험으로는 갈등을 마주대할 때 성장한다고 본다. 자신있게 준비했던 강의가 말도 안되게 망쳤을 때, 어처구니 없을만큼 사소한 이유로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을 때, 나의 그동안 인생속에서 당연하였던 것이 주변사람들에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경험할 때, 그 갈등 순간의 공통점은 즉자가 대자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항상 성공만 했던 사람은 그 성공의 방식을 절대화 하여 인생을 살아가는 신념으로 삼고, 그런 신념의 사람은 '대자'를 만날 수 없는 것 같다. 혹여 대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도 자신의 즉자를 강하게 주장하여 밀어내 버리고 만다. 이런 사람에게는 즉자대자적 존재로서의 성장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창의성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종이컵이 하나 있다. 그녀석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이 완벽한 존재라고 여긴다. 이 상태에서 100년이 지나도 변화하지 않는다. 변화는 대자적 존재를 자기 안에서 발견하게 되면서이다. 어느날 커피를 따라 마시려는 사람의 표정과 태도의 불편함을 보면서 알게 된다. 자기 자신에게 불완전함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완벽한 나와 그러지 못한 나와의 모순된 모습을 그대로 둘 수 없던 그는 오랜 고민끝에 두꺼운 종이를 자기 몸에 감아쥔다. PPAP의 출현이다.
새로운 생각을 위해서는 반드시 대자적 존재가 필요하다. 그런데, 대자적 존재란 자기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면서 나타난 모습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을 자기성찰이라고도 하고, 기업의 창의성에 있어서는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의식이 없고 자기 성찰을 하지 않으면 변화와 성장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반대로 말해서, 무엇인가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하고 꿈꾼다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기 내면을 들여다 봐야 하겠다. 자기안의 날카로운 가시를 보게 될때 그것이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임을 자신있게 외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PPAP의 창의성이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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