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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Life Story/영화 읽기

[김성민의 영화읽기] 터널

[김성민의 영화 읽기 - 터널]



"나 살아 있는데" - 극 중 이정수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보통은 영화는 영화고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진 않았지만 오늘 처음으로 영화감상 후기를 적어본다. 그래서 영화 후기를 어떤 구성으로 작성해야하는지에 대한 기준도 방법도  모른채 그저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여러가지 생각을 나열식으로 적어보기로 했다. 이런 블로그 글에 보면 항상 스포일러에 대한 경고문구를 넣는데, 글쎄 잘 모르겠다. 내가 쓴 글이 스포일러성이 될 지.. 그래도 가능한 내용의 결말이나 중요한 반전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게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어서 등장인물이나 몇가지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도록 하겠다.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신분들은 이미 알겠지만 터널에 갖힌 이정수(하정우역)라는 자동차 세일즈맨의 구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장면의 대부분은 사방이 돌덩이에 둘러싸인 터널안 차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스케일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실망일 지 모르겠다. 나는 이런 밀폐된 곳에서의 주인공들의 탈출을 담은 영화를 대체로 좋아했던 것 같다.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큐브' 라고 하는 영화도 좋아했고, 127시간, 폰부스.. 톰 하디가 자동차 안에서 전화통화하는 장면만으로 영화가 만들어진 '로크' 라는 영화도 좋았다. 아마도, 여러 복잡한 장면이 없는 그런 영화들이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잘 따라갈 수 있어서 좋았던게 아닌가 싶다. 난 단순하니깐. :)


  많은 평가에서 말하는 것 처럼, 이 영화는 사회고발적인 영화로 보여진다. 특히 2년전 있었던 여객선이 침몰한 어떤 상황을 연상시킨다. 장면이 바다가 아닌 터널안이라는 것만 빼고는 주변에 돌아가는 상황은 매우 빼닮았다. 





119에 터널 붕괴로 인해 고립되어 있다고 구해달라는 주인공의 외침에 전화기 건너편에서는 아주 사무적인 목소리로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세요" 라며 전화를 끊는다. "가만 있으라" 라는 선내방송 메시지가 머리에 스쳐지나간다. 사실 사무적이라고 했지만 합리적인 안전행동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렇게 이야기한 사람이나 그 내용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왠지 모를 불편함, 때로는 분노까지 일으키는 가만히 기다리라는 방송은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속에 퍼진 집단 트라우마의 결과가 아닐까 싶었다. 





이 영화에는 '죄송하다' '미안하다' 라는 말이 유독 많이 나온다. 함께 터널에 갖힌 사회초년생으로 보이는 한 여성 운전자는 주인공 이정수에게 끊임없이 죄송하다. 죄송한데 물좀 달라, 죄송한데 개한테도 좀 달라, 죄송한데 전화 좀 쓰겠다.  이정수의 아내도 남편의 구출현장에서 모든 사람들한테 죄인이 된듯 미안하다를 입에 달고 다닌다. 작업반장의 죽음에 대한 책임감.. 노모가 찾아왔을 때도 '미안합니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내'다. 그런데 정작 미안해 해야 할 사람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은 미안해 하지 않는다. 남편 구출을 중지한다는 서명을 받으러 온 사람에게 아내는 '만일 살아 있으면요...  그럼 미안하지 않으세요?' 라는 말을 던진다. 





이때 정치인은 현장의 책임자인듯 행동은 하지만 적당한 시점에 기념사진을 찍고 열심히 무언가 하고 있는 모습만 보이는 꼭두각시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제2터널과의 마찰이 생길 수 있다는 말에 '잘 협의해서 진행하도록 하세요' 라는 모호한 말로 피해간다. 그 연기를 한 배우 김해숙씨는 왠지 분위기가 우리가 잘 아는 어느 정치인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감독은 아마도 그런면을 부각시키고자 이런 배역과 설정을 했었을 것 같다. 언론은 보도 경쟁속에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의 안전보다는 특종이 중요하다. 구출이 되는 시점에서도 '아하~ 하루만 더 있다 나오면 좋은데.. 기록을 깨는데 말이야' 라는 말로 언론에 대해 우회적으로 풍자한다. 





그런 와중에도 적극적으로 문제의 핵심에 진실하게 다가가고자 하는 인물이 있다. 배우 오달수가 연기를 한 소방대장이다. 어쩌면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리더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생명을 중요시하고, 자신이 맡은 임무, 역할에 충실한 리더. 자신은 안해보고 지시하기만 한게 미안해서 직접 오줌을 받아 마시기까지 하는 모습에 솔선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게 된다. 안타깝게도 그는 영화의 마지막에 시말서를 쓰고 있고, 그 사건을 외면하고자 했던 단체는 언론을 통해 모든 공을 가져간다.  그런 모습이 동네 아저씨 같은 편안하며 즐거운 캐릭터인 오달수라는 인물이 연기하면서 심각함 보다는 그저 있을 수 있는 해프닝 처럼 보여진다. 





언론은 원하는 방향을 위해 프레임을 설정한다. 갖혀있는 이정수씨를 구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에 대한 설문조사가 아니라, 500억 넘게 손실을 끼치는 중단되었던 공사를 재개해야 하느냐 마느냐로 프레임을 만들었다. 그 터널에 수혜를 입는 사람들의 입장이 부각되고, 그 뒤로 터널 개통에 따른 경제적 관점은 뒤로 숨는다. 그런데 만일 그런 방식으로 프레임이 짜여 있더라도 결국 한 사람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구출작업을 그만두어야 하느냐 마느냐로 귀결될 것임을 모두는 알고 있다. 애써 외면하는게 아닐까? 어쩌면 그냥 죽었겠지!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압박이 아니었을까? 설령 설문조사가 65%나 나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것이 한명의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데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설문조사의 숫자를 통해 생명을 좌지우지 한다는 그런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이 섬뜩할 따름이다. 어쩌면 우리가 눈감고 있던 우리 자신의 치부일 수도 있겠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최고의 나찌당원이라고 자부하며 히틀러를 담길 원했던 아이히만이라는 장교는 유대인 학살에 가장 큰 공로를 세웠다는 죄목으로 전후 재판에 세워졌다. 그런데 악랄한 존재로 생각되었던 그가 사실은 한 가정의 평범한 남편이자 아빠..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다정하기까지한 우리 주변의 아빠들과 별반 다름이 없음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나는 주어진 일에만 충실했다. 만약 내가 학살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것에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다.’  악은 멀리 있지 않다. 사람에 대한 무감각이 악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과연 구출에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로 관심이 모아진다. 그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여기선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는 결말이 있다. 그것이 영화에서가 아닌 현실에서 말이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



# 캡쳐사진은 공개된 영화예고편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