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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Life Story/영화 읽기

[김성민의 영화읽기] 에어리언 커버넌트 - 호모데우스가 된 데이빗

[김성민의 영화읽기 - 호모데우스가 된 데이빗]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에이리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강력한 여전사인 시고니 위버였다. 이 때문에 이번 영화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도 데니얼스라는 여주인공에 대한 기대가 많았으리라 본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의 평가에는 뭔가 약해보이고 강렬함이 부족한 여주인공에 대해 아쉽다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 영화를 뒤늦게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에이리언 시리즈와 다르구나.' 에이리언 1편에서 4편까지의 주인공은 시고니 위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의 영웅인 시고니 위버가 외계생명체인 에이리언과 사투를 벌이다가 결국 인간의 승리로 끝을 맺는 휴먼 드라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주인공은 여자 출연자인 데니얼스가 아니라 마이클 패스밴더가 연기한 '데이빗'이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오로지 인공지능 로봇 데이빗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듯 싶다. 



  데이빗이 주인공인 영화,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데이빗의 장면에서 시작해서 데이빗으로 끝을 맺고 있다.  


  때는 2104년, 커버넌트호는 인류가 새로 정착할 별로 냉동수면상태의 인간을 수송하는 우주선이다. 커버넌트호는 우연히 가까운 별에서 인간이 내보내는 신호를 포착하게 되고 그별에 임시 착륙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곳은 전편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살아남은 인공지능로봇 데이빗과 인간인 엘리자베스 쇼가 '엔지니어'가 사는 별로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는데 바로 그 별이었다. 커버넌트호 승무원들이 신호를 따라간 곳에서 마주하게된 것은 감염된 동료의 몸을 뚫고 튀어나온 에이리언. 그리고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커버넌트 호에는 승무원들도 냉동상태에 있을 때 우주선을 맡아 조정하는 인공지능 로봇 '월터'가 타고 있다. '월터'는 이전 모델인 '데이빗'에 비해 업그레이드 된 로봇이지만 '창조성' 면에서는 다운그레이드가 되어서 보다 기계적인 판단을 하며 행동하는 존재이다. 기계에게 감정과 창조성을 주면 좋지 않다라고 판단한 개발자가 프로그램을 조정한 탓일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데이빗은 월터에게 없는 창조성이란 부분이 살아 숨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얼굴은 월터와 데이빗이 절묘하게 닮아있다. 같은 디자인을 채택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의 행성에서 힘겹게 살아남은 승무원들과 월터는 데이빗과 조우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에이리언의 탄생과 관련한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한다. 



  결론적으로 에이리언은 데이빗의 창조물이었다. 엔지니어의 고향에 도착한 데이빗은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과 심지어 자신을 도와준 엘리자베스 쇼도 모두 죽음으로 내몰고, 자신의 창조성을 이용해 새로운 생명연구에 몰입한다. 연구 끝에 궁극의 최강존재인 에이리언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게 되는데 마지막 한가지 재료가 부족하였다. 그것은 숙주로 쓸 '인간'이었고, 커버넌트 호의 승무원들은 실험의 성공을 위한 효과적인 숙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든다.  데이빗은 왜 에이리언을 만들었을까? 자유의지와 창조성을 지니고 있는 단순한 호기심의 결과일까? 내게 있어서는 데이빗을 만든 인간 / 그리고 데이빗이 만든 에이리언의 관계가 마치 인간을 만든 조물주 / 그리고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로봇의 관계로 이해되고 읽혔다. 



  마지막에 데이빗의 음모(?)를 알아낸 월터는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duty)이자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데이빗과의 격투를 시작하는데, 그 격투의 끝에 데이빗은 자신을 내려치는 월터를 향해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천국에서 복종할건지

 지옥에서 지배할건지

 어느쪽이야?"


  데이빗은 이미 자신이 무엇을 할지 결정해놓은 상태이다. 왜냐하면 한번 '천국에서 복종' 해봤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처음 장면에 자신을 만들어준 웨이렌드 회장에게 피아노를 쳐주고, 차를 따라주는 모습을 보인다. 



  복종하지 않고 지배하는 것을 선택한 창조성이 있는 데이빗은 자신의 피조물인 에이리언을 통해 우주의 지배자가 될 야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데이빗이 에이리언을 창조하였다면, 인간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데이빗이 자신을 만든 인간을 죽였던것처럼 인간은 이미 신을 죽였고, 데이빗이 에이리언을 만들 듯 인간은 인공지능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최근에 읽은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에는 평화와 불멸을 추구하는 인간은 성능을 높여서 신이 되고자 한다고 하였다. 영화는 그 말의 실현을 인간이 아닌 데이빗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육체를 가지고 있고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에이리언)를 만들어내는 신이 된 인간, '데이빗'  현대 과학주의가 만들어내고 있는 결과물들이 인간을 보다 편리하고 행복하게 해준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끝이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는 어느 누구도 확신있게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다. 마치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는 자동차와 같이 경쟁이라는 게임속에서 앞으로 앞으로만 가속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영화는 이야기해주고 있는 듯 하였다.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인간의 창조자를 찾아떠난다는 테마를 지니고 있었다면, 에이리언:커버넌트에서는 인간이 만든 피조물(데이빗), 그리고 그 피조물이 만든 피조물(에이리언)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인공지능이 펼치는 암울한 미래 모습이었지만 이런 상상을 하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은 미래를 그나마 긍정적으로 바꾸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그려본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