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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경영/창의력의 재발견

[김성민의 창의칼럼] 창의력은 질문력이다.

[김성민의 창의칼럼 - 창의력은 질문력이다]


  2010년 9월 G20 서울정상회의 폐막식, 그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오바마 대통령은 연단에 나와서 마지막으로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수십명이나 되었을 그곳의 한국기자들 중에는 아무도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EBS 다큐프라임을 통해서 이 장면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기사거리에 목말라 있는 기자들이 왜 질문을 안한건지? 혹시 하고 싶은 질문은 있었으나 못한 것일까?



 우리는 태어나서 수많은 질문을 하면서 성장해간다. 주변 사물들에 대해 이건 뭐고 저건 뭐고, 에어울프와 키트가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는 식의 호기심 천국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대 국어교육연구소에서 올해 초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교 때가지만 하더라도 주간 4회 이상 질문자가 55% 이상이었던 것이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이르면 30%가 채 안되는 비율을 보인다. 게다가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가 '관심과 흥미 부족' 이라는 것이 점점 늘어남을 볼 때 뭔가 교육이 잘못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4차산업혁명. 그 기술의 핵심에는 인공지능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손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으로 내가 궁금해하는 것을 물으면 언제든 답을 주고, 알파고한테 바둑에 대해 질문하면 승리를 가져다 준다. 인간은 질문을 하고 로봇은 답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 스스로가 무엇을 질문할지에 대해서는 인공지능이 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인공지능이 의식을 가지게 되어 스스로 질문하게 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는 없으나, 그것은 현재로서는 아주 먼 미래의 일로 보여진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기능적으로 탁월한 인공지능보다 인간이 더 뛰어날 수 있는 이유는 '질문력'에 있다고 하겠다. 


 이 질문력은 창의력으로 이어진다. 질문은 그 근본 태생이 '무지'를 전제로 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그 당시 날고 기는 소피스트들보다 더 지혜로울 수 있었던 이유를 자신은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소피스트들은 그것을 모른다고 하는 차이를 말한다. '무지의 지' 그것으로 부터 출발한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통해 진리에 접근한다. 질문으로 이루어진 소크라테스만의 특유의 '대화술'은 사람들에게 통찰을 자아내는 산파술을 펼친것으로 유명하다. 


 창의성은 고정관념으로 부터의 탈출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 고정관념으로 부터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고정관념을 깨면 되는가? 한가지 확실한 방법은 질문하는 것이다. 세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질문할 것이 없다. '원래 그런거야'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질문할 필요가 없다. '왜 면죄부를 사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왜 사과는 떨어지고 달은 떨어지지 않는가?', '왜 인간은 하늘을 날 수가 없다고 하는가?' 위대한 결과는 낸 사람들은 늘 당연함과의 치열한 질문싸움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스티븐 존슨의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에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어디서 오는지 잘 나타나 있다. 자신만의 범주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속에서 새로운 방향의 힌트를 얻고 그것을 발전시키게 된 것이 창의적 아이디어가 된다는 것이다. 타인의 생각속에 아이디어의 핵심요소가 심어져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듣고자 한다면 질문하고 경청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질문하면 좋을까? 가장 기본적인 질문법은 '왜?' 라는 질문이다. '왜?' 질문은 호기심의 질문이다.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주변사람들은 무척 당황해할 것이다? 당연한 것을 질문하는 괴짜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왜? 스마트폰은 사각형이어야 해?  왜? 선풍기에는 날개가 달렸어?  왜? 공인인증서가 꼭 있어야 하는데?  왜? 정원에는 잔디를 심지?  왜? 왜? 왜?  그러나 이런 질문을 던져야만 다이슨의 날개없는 선풍기가 나오고, 하늘을 날며, 인터넷 은행이 나오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질문법은 미래 희망 질문법이다. '만약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으로 시작하는 질문이다. '만약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냉장고를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만약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만약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가장 빠른 배송을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질문법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당연함의 관습을 깨도록 도와주는 질문이다. 


 물론 기계적인 질문으로는 한계가 있다. 내가 질문을 할만큼 전체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이 중요하다. 이런 자각은 어떻게 올 수 있는가?  소크라테스가 ‘네 자신을 알라’ 라는 델포이 신전의 문구를 인용했던것과 같이 자신에 대한 성찰을 기반으로 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창의성이란 셀프리더십이기도 하고, 태도의 문제라 할 것이다. 통찰력으로도 번역하는 insight 가 '내면'을 뜻하는 in 과 '보다'의 의미인 sight 로 이루어진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내가 당연시 여기고 있고 고착화사고에 빠져 있는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 거기서 통찰력, 창의력이 샘솟을 것이다. 


 옛 격언 중에도 질문을 하는 사람은 5분간 바보가 되지만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은 평생 바보가 된다는 말도 있다. 미래는 준비하는 창의력을 위해 질문하는 사람이 눈치보지 않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