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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경영/창의력의 재발견

[김성민의 창의칼럼] 매너와 자유 사이

[김성민의 창의칼럼 - 연애대상 시상식의 드레스코드]


  연말을 맞아 각 방송사들이 한해동안 활약했던 방송인들에 대한 시상식을 개최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이 시상식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 중 기안84라고 하는 웹툰작가의 옷차림에 관해서 논란이 주목받고 있다. 시상식에 참여한 연예인들을 비추는 카메라에 평범한 패딩차림의 남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복학왕' '패션왕' 등의 웹툰을 그린 작가로 알려졌는데, 그의 옷차림을 두고 '예의가 없다' 라는 비난에서 부터 '가식없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라는 호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입장에 있는가? 


  나는 기사에 나온 반응들을 보면서 무척이나 놀라왔다. 부정적인 비난과 함께 긍정적인 목소리도 상당히 많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10년전에 동일한 일이 벌어졌다면 이와 같이 옹호하는 목소리가 클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서 우리 사회가 많이 변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비난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그곳이 격식과 예의를 지켜야 하는 자리라는 기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장례식에 핫팬츠를 입고 가는것이 말이 안되는 것 처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생활에서는 어느정도 지켜야 하는 선이 있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패딩남에 대한 옹호하는 입장은  사회의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는 행사에서 자신만의 자연스러움을 드러내는 용기있는 행동이었다는 입장이다. 조금 성급할지 모르지만, 전자를 기존 질서와 체계를 지켜나가는 것이 미덕이라고 보는 보수적 태도라고 한다면, 후자는 사회통념을 깨뜨리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진보적 생각이라고 파악된다. 


  그런 다양한  가치판단속에서 창의적 사고가 구현되는 방식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제 포스팅한 글에서도 이야기한바와 같이 개인의 창의성은 조직안에서 주장되고 실천될때 의미와 가치가 발현된다. 그리고 변화를 싫어하는 인간 인지의 특성으로 인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고 하는 것은 언제든 초반에 배척받게 되기 십상이다. 기안84의 행동은 기존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눈살을 지푸리게 하는 행동임에 분명하다. 창의적 아이디어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처음 들을 때 황당한 생각이 아니라면 그 생각에는 희망이 없다" - 앨버트 아인슈타인 (창조경영트리즈, p.115)


  창의적 아이디어의 속성이 이렇다고 해서 대놓고 주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옳은가?  이 질문의 답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좋은 질문도 아니다. 어쩌면 이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옳게 만들것이냐는 문제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업의 창의력을 쓴 알란로빈슨과 샘 스턴은 이 문제를 향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기업 창의성을 위한 시스템의 목적은 모든 사람의 자발적 행동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기업의 창의력  p.237>


  풀어서 생각해보자면 조직의 시스템이 각자가 자발적으로 의견을 내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시상식 장에서 입는 의상을 청바지부터 턱시도 까지 자유스럽게 입을 수 있다고 애초에 규칙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이런 논란은 일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턱시도와 드레스라는 것에 한정된 의상이 아니라 더욱 다양한 의상들의 멋진 모습을 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왜 한복은 안되는가? 왜 밀리터리 룩은 안되는가? 조직 안에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답답함이 여기에 있을 수 있다. 조직 전체적으로 수용되는 창의성의 기준이 숨막히게 정해져 있어서 그 이상의 생각을 하게 되면 눈총을 받게 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자유스러움을 빼앗겼을 때 '자발성'이라는 것은 나오지 않으며 '모든 사람'의 참여는 요원해지는 것이다. 

  반면에 시스템과 문화가 그렇지 않은 곳에서 개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나는 각 개인이 자신의 행동과 발언이 그 사회와 조직안에서 거부될 수 있는 생각임을 인식한 가운데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내 맘이지 뭘 신경써~" "왜 그렇게 사람들이 고지식해.. 자유로운 생각의 끝판을 보여줄꺼야" 등의 개인화된 고집스러움이 아니라, 이런 나의 생각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할 때 '용기'를 내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솔직히 기안84의 패팅 패션이 이런 고민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며 나온 '용기'였을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시상식 정도야 한번의 해프닝으로 지나가 버리는 사건일 수 있지만, 기업 안에서 아이디어를 내놓고 그것에 책임을 지며 함께 일해나가야 하는 사람에게는 도발적 아이디어를 표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더욱 조직문화를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겠다.



  옷 이야기로 시작하다보니 갑자기 이분이 떠올랐다. 한 회사를 대표해서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야하는 중요한 신제품 발표회때마다 운동화와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등장하던 사람. 그리고 그것이 이 회사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자연스럽게 보여졌던 모습이다.  이 분은 고인이 되었지만, 단지 옷차림이 아닌 그의 혁신을 향한 도전 정신과 용기는 그 기업 문화로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기업들에게도 자유스러운 아이디어 소통의 문화가 더욱 뿌리내리길 바란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