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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경영/창의력의 재발견

[김성민의 창의칼럼] 달리는 말에 대한 감각

[김성민의 창의칼럼 - 달리는 말을 보았는가]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은 경험과 학습으로 부터 온다. 그리고 경험은 오감을 통해 인지되는데, 알다시피 우리의 감각은 정확한게 못된다. 물론, 특별히 연습한 사람에게는 수십마이크로미터의 돌기도 구분해낼 수 있는 놀라운 감각을 가지고 있다곤 하지만 일상의 우리는 쉽게 감각정보에 의해 속게 된다. 한번 예를 들어볼까?  쉽게 속고 있는 대표적 사례를 들자면 영화를 꼽을 수 있겠다. 스크린에 있는 영상은 아무리 살아 움직이는 것 같고, 요즘에는 3D 니 4D 니 하면서 화면밖으로 튀어나올것만 같이 생생하더라도 그것은 엄연히 끊어진 사진들이다. 1초에 수십장의 사진을 보여주는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움직인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진과 사진사이에 있는 간격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한마디로 우리 모두의 눈은 간단한 트릭만으로 속고 있는 것이다. 


  EH. 곰브리치 가 쓴 '서양미술사'의 앞부분에 아주 흥미로운 그림 하나가 나온다. 서너명의 사람들이 말을 타고 달리고 있는 모습인데 뭔가 이상한 점이 있는가? 



  곰브리치는 달리는 말의 다리를 언급한다. 가만히 보면 말의 다리는 네개의 다리를 공중에 쭉뻗은 상태로 공중부양중이다. 우리는 저런 형태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저 그림의 작가인 테어도르 제리코는 왜 저런 형태의 말을 그렸을까?  


  그 이유를 말이 어떻게 달리는지 제대로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 위의 그림이 그려지고 나서 50여년 뒤에 에드워드 머이브리지 라는 사진사는 여러대의 카메라를 말이 달리는 방향으로 장치해놓고 말이 달려나갈 때 카메라앞에서 사진이 찍히도록 해놓음으로써 실제 달리는 말의 움직임을 잡아낼 수 있었다. 



  그 어떤 사진에도 말의 다리고 양쪽으로 쭉 뻗은 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진이 알려지고 나서 사람들은 테어도르 제리코의 그림이 비정상적이라고 느끼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우리의 '경험'에 의해 그렸다면, 현재 우리가 말이 달리는 모습이 어떠하다는 사실은 '학습'에 의해 형성된 지식이다. 우리는 고구려의 벽화에서 부터 아주 오랜동안 직접 보고 있는 말의 모습을 양쪽으로 다리를 뻗고 있는 모습으로 그렸다. 감각 경험을 통한 지식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기까지는 더 나은 측정장비가 나오고 나서야 가능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경험하는 모습 것을 회의적으로 생각하자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보는 것, 그리고 학습하고 들은 것이 전부는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거기에서 새로운 관점과 더 나은 창의적 생각들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보다 정교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속고 있을 지도 모르니깐 말이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