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지금으로 부터 120년전 영국의 예술평론가이자 작가인 필립 길버트 해머튼이 편지형식으로 쓴 책이다. 19세기에 쓰였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 책은 편지형식의 에세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나는 읽는 가운데 자기계발서라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것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일반적인 현대의 자기계발서와는 달리 잠잠히 자신이 인생을 살면서 느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 같이 다가왔다.
처음 이 책을 독서모임에서 선정하게 되었을 때 표지와 제목을 통해서 '독서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겠거니 하며 책을 펼쳐보았다. 그런데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는 '건강'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건강'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된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저자가 생각하는 지적생활의 다양한 풍경들을 그려내고 있다.
지적 생활은 결국 신경조직에서 행해지는 활동입니다. 신경조직이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p.30
건강은 운동을 하지 않고서도 한동안은 유지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달 동안 필사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운동에 시간을 할애한다면 그만큼 손해를 본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우리의 삶은 기나긴 시간의 연속입니다. 지금은 손해인 듯 보이는 운동이 한 평생을 두고봤을 때 크나큰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지적 생활은 건강이 오랫동안 유지되어야만 가능합니다. 건강도 실력입니다. p.62
현대사회는 우리에게 멀티태스킹을 요구한다. 그래서 T형인재라느니, H형인재라느니 하는 하나가 아닌 폭넓은 다방면의 지식을 지닌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당위성을 주장한다. 그에 대해 해머튼은 '배움은 다양할 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편과 '여러 분야를 공부해야 한다고 집착하는 친구에게' 편에서 우리가 배우는 지식습득이 얼마나 타인에게 종속되어 있고, 자신의 개성과 기질을 발현시키는데 제약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부분이 '지적생활' 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가장 잘 반영된 내용일 것이다. 흔히 지적생활이라고 하면 누군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지식을 뽐낼 수 있는 정도의 박학다식한 지식을 습득하고 으스대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저자가 이야기하는 지적생활은 자신의 삶에서 다른 누구의 강요가 아닌 자신의 성숙과 성장을 위해 지식을 넓혀가는 것이다.
지적 훈련의 기준은 내적인 법칙성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이 훈련의 주체는 자기 자신입니다. p.90
다양한 곳에서 여러 대상들을 앞에 두고 강의를 하는 나에게 있어서 때로는 지적생활이 아닌 지적 노동자로서 책을 읽고, 연구를 하곤 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되었다. 타자의 기준에 부합하는 존재로서가 아닌 오로지 나의 삶을 살아가는 목적으로서의 지식을 습득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그런 시간이 내게 있는지 물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는 오랫동안 책꽂이에 꼽혀 있던 20년이 다된 먼지쌓인 공학수학책을 꺼내어 편미분 방정식을 풀어보았다. 오래된 기억이 스물스물 흘러나오고 함수들이 풀어헤쳐지는 것을 보면서 왠지모를 흥분이 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나의 일상 일도 계속 해나가겠지만 지적생활의 즐거움을 위해 수학문제 풀이의 취미를 가져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은 '기억력이 나쁘다고 한탄하는 친구에게' 편이었다. 일반적으로 그런 소제를 붙여놓고 내용은 기억력을 높이는 비법같은 것을 전수해주는 글이 이어질텐데, 헤머튼은 그런 유치한 접근은 하지 않는다. 위로의 편지가 아닌 '축복의 편지'를 쓴다며 잘 잊어먹는다는 것은 반대로 소중한것만을 남겨놓고 자신에게 중요치 않은 것은 잊어먹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과 재미없는 것을 무의식중에 구별하여 흥미가 없는 내용들은 재빨리 잊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당신의 머릿속에 주어졌기 때문이다. p.135
이 이야기를 읽으며 속으로 얼마나 웃음이 나왔는지 모른다. 기억력이 안좋은 것에 대한 정말 멋진 역발상이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내가 잘 기억하는 것과 잘 잊어먹는 것을 통해서 내 무의식이 더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끼는게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는 바로메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기억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좋은 기억력이란 많은 것을 기억하는 게 아닙니다. 선택 기억이든, 합리적 기억이든 본질은 '연계' 입니다. 관련이 있는 것들 사이에서 개인의 연상력이 작용하고, 머릿속에 하나의 질서가 새롭게 생성되는 창의성이 핵심입니다. p.140
나를 비롯해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느꼈던 많은 사람에게 힐링이 되는 말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잘 잊어먹는 사람에게 복 있을지니, 그들이 선택기억을 가졌음이요.
우리의 삶에서 교육을 통하든 사회 문화적으로 정답이 있을 것 마냥 인식을 해왔다. 그러나 실은 정답이라는 것은 없다. 모범답도 어쩌면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이유로 살아가는 지적생활의 즐거움을 한걸음씩 내딛여야 겠다는 생각을 오늘도 갖게 된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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