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의 독서경영 - 군주론]
군주에게 가장 훌륭한 성벽은
백성들의 원성을 사지 않는 것입니다. p.167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난받아 마땅한 정치사상' 정도로 알고 있던 '군주론'을 독서모임에서 다루게 되어 읽게 되었다. 고전이 지닌 힘이 있어서일까? 읽는 내내 복합적인 여러 생각들이 오고 갔다. 그러면서 마키아벨리즘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해되었고, 그 당시 마키아벨리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을 지도 그의 편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이 책에는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군주의 모습 혹은 지켜야할 덕목이 아닌 매우 현실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할지가 나타나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몇가지를 가져와봤다.
- 백성들이 겪고 있는 역경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심어주고, 적의 잔혹성에 대한 백성들의 두려움을 이용해 목소리를 높이는 자들을 효과적으로 입막음함으로써 힘든 난관을 극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p.92
- 매사에 늘 선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선량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반드시 몰락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권력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상황에 따라 악행을 행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핣니다. p.122
- 현명한 통치자라면 신의를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할 때 약속할 당시의 동기나 이유가 사라지면 약속을 지킬 수도 없겠지만 지켜서도 안 됩니다. p.138
- 중요한 것은 여우의 기질을 교모하게 감추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뛰어난 거짓말쟁이이자 위선자가 되어야 합니다. p.138
- 군주는 비난을 받을만한 일은 타인에게 떠넘기고 민심을 얻을 만한 일은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p.147
이런 문장을 읽다보면 유체이탈화법을 즐겨쓰고, 공약은 대부분 지켜지지도 않았으며, 눈 부릅뜸 신공으로 눈물도 만들어내시는 푸른지붕밑의 한분이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분이야 말로 군주론에서 이야기하는 진정한 군주가 아닐까? 라는 억지같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전체를 읽고 나니 군주론을 이런 관점에서만 보는 것은 부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찬란했던 로마의 문명의 중심지, 르네상스를 이끌기 까지 했던 이탈리아 반도가 하나의 전제국가로 확립되어 강력해지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틈바구니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와중에 쓰여졌던 책이다. 외세의 침입속에 혼란하고 안정이 되지 않았으며 주변 강대국에게 위협을 받아가며 자국의 목소리도 내지 못하며 당하고만 있다면 과연 그 나라의 국민은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 우리도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서구열강의 틈바구니속에 아직까지도 영향을 받고 있기에 어느정도는 짐작가능하다고 본다. 쉽게 말해 자주국방을 하며 열강과 대등한 지위를 얻고 싶어지는게 당연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15세기 말, 16세기 초 이탈리아에 살았던 마키아벨리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런 통일 이탈리아를 만드는데 가장 적합한 국가체제가 무엇이며, 군대는 어떻게 조직이 되어야 하며, 군주는 이 혼란의 시대에 어떤 대처를 해야할지를 이 책을 통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다. 바로 그가 생각하기에 앞으로 통일 이탈리아를 잘 구성해 낼 것으로 여겨지는 그 당시의 권력 가문인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에게 말이다.
군주론은 중국의 공자나 맹자사상처럼 성인군주를 지향하는 이상적인 덕목을 내놓고 있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진흙탕 뒤범벅에서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이탈리아라는 땅에 가장 필요했던 것은 그런 먼 미래의 이상이 아니었다. 적어도 마키아벨리가 생각했을 때에는 당장 나라의 안녕을 위해 필요한 행동을 해줄 군주를 원했던 것이리라. 무척이나 현실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로마때부터 시작해서 당대 주변국가의 정치체제와 수많은 군주들, 그리고 이탈리아에 반짝 일어났다 사라진 군주들을 사례를 바탕으로 쉽게 반박하지 못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백성들은 마음이 내키는 대로 군주를 사랑하지만, 군주에 대한 두려움을 품는 것은 군주가 행동하기에 달렸으므로 현명한 군주라면 본인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백성들의 사랑보다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두려움을 바탕으로 백성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p.135
실제 역사에서 백성들의 군주에 대한 사랑은 항상 변해왔다는 것이다. 인간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신의를 모르며 자신의 이기적 욕심에 의해서 행동하는 존재이니 덕이라든지 하는 것은 개나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최근 역사상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탈리아 통일에 가장 적합했던 군주로 체사르 보르자를 생각하는데, 그로부터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체사레 보르자로 부터 배워야 할 것 p.74
1. 군주로서 백성들의 충성과 두려움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법
2. 휘화 군대의 존경심과 복종심을 확보하는 방법
3. 군주에게 위협이 될 세력을 물리치는 방법
4. 낡은 제도를 개혁하는 과정
5. 엄격하면서도 자애롭고 아량이 넓고 관대한 군주가 되는 방법
6. 충성심이 부족한 군대를 해체하고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는 법
7. 주변국의 국왕 및 군주들과 매끄러운 관계를 유지하여 도움을 받는 방법
8. 신생 군주에게 위협을 가하더라도 공격하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방법
보기만 해도 후덜덜하다. 어떻게 한명의 군주가 이런 여러가지를 다 신경써서 할 수 있겠는가? 마키아벨리도 책의 말미에서 살짝 이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흘린다.
시대와 상황이 다시 변하면 그는 자신의 행동방식을 변화시키지 않았기 때무에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신중하게 행동한다고 해도 어떤 변화에든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p.189
마키아벨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그가 진정 원했던 정치체제가 공화제인지 군주제였던 것인지.. 다 이해하고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가 그 시대속에서 했던 고민만큼은 공감이 되었다.
왜 우리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 살지도 않는데, '군주론' 이라는 책을 읽는 것일까? 혹은 왜 아직도 고전의 반열에 서서 읽혀지고 있을까? 한번 생각해보니, 국가 정치체제는 군주제가 아닐지라도 우리 주변에는 항상 이탈리아 반도의 변화와 위협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은 항상 경쟁사와의 치열한 공방과 국제 정세의 변화속에 전쟁을 치루는 것과 같은 상황에 있고, 조직 리더의 한순간의 판단이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기를 살고 있다. 그런 유사점이 리더십의 책으로도 많이 읽히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때론, 독재권력에 의해서, 혹은 그 독재권력의 속셈을 파악하려는 목적으로도 읽혀졌다고 들었다.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독자라면 한번쯤 읽어볼 것을 권한다.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비난섞인 용어로 매도되기에는 많은 가치가 담겨 있다고 보여진다.
< 책 속의 명언 >
- 이렇게 군주에 오른 이들(일개 시민이 황제의 지위에 오른 경우)은 군주가 되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의 호의에 매달려 행운을 빌 수밖에 없으므로 그들의 기반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합니다. 이런 인물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모를 뿐 아니라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중략) 느닷없이 군주가된 사람이 불시에 손에 넣은 행운을 지켜낼 방법을 하룻밤새 익힐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갖췄거나, 다른 군주들이 이미 차곡차곡 쌓아온 튼튼한 기반을 닦을 재주가 없는 한 그 같은 파멸은 피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p.63
=> 갑자기 어느날 한번 떠서 인기를 끄는 사람이 언제였냐는 듯이 우리 기억속에 사라지는 것을 여러번 보았던 것 같다. 우연히 때를 잘 만나 한 순간 빛을 바랠 수는 있으나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오랜 기간 준비한 내공에 의해서 가능한게 아닐까 싶었다. 누군가에 자꾸 기대려는 거지근성이 아닌 자신만의 것을 찾으려는 헝그리 정신을 가지고 도전해봐야겠다. - 요컨대 다른 사람의 갑옷과 무기는 당신의 몸을 압박하거나 힘을 떨어뜨리거나 행동에 제약을 가할 뿐입니다. p.113
=> 베끼기로는 한계가 있다. 다윗이 사울이 건네주는 모든 갑옷을 던져버리고 자신의 강력한 강점인 물맷돌을 가지고 나선것처럼 자신만의 것이 중요하다. - 군주가 백성들의 경멸을 받는 것은 변덕과 경박함, 그리고 나약함과 비겁함, 결단력이 없는 모습을 보였을 때입니다. p.143
- 군주에게 가장 훌륭한 성벽은 백성들의 원성을 사지 않는 것입니다. p.167
=> 가정에서는 가족, 기업에서는 사원, 국가에서는 국민들이 외세의 침입으로 부터 든든한 성벽이 되어준다. 가화만사성이 생각난다. 부부싸움이라도 한 날은 일이 손에 제대로 안 잡히는 것처럼. 사원들의 불만이 가득한 회사, 국민들의 분노가 치미는 그런 나라는 제대로 운영이 될 수 없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 자명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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