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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독서학습] 처음만나는 미학 - 노영덕

[김성민의 독서학습 - 처음만나는 미학]


“태양과 같은 것이 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눈도 결코 태양을 볼 수 없다” 

<플로티노스> p.201



  기억해보니 대학 3학년 계절학기때 '미학개론'을 교양과목으로 신청해 수강했었다. 공대생으로써 조금 새로운 것에 대한 견문을 넓힌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과목이었을 텐데, 더운 여름날 강의실 가장 앞자리에서 나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꾸벅꾸벅 숙면을 취하는 시간이었다. 왜 이걸 기억을 하냐면 그당시 수업을 진행한 오병남 교수님이 수업 한참 진행하던 중에 '나는 이 친구가 가장 부럽습니다' 라며 졸고 있던 나를 지목하며 빙긋이 웃으시며 눈을 마주쳤던 사건때문이다. 그 순간 어찌나 부끄러워 숨고 싶던지.  졸고 있는 와중에 기습을 당한 거라서 그게 어떤 미학적 맥락에서 연결지어 말씀하신 것인지는 전혀 듣지 못했다. 추측해보면 어떤 목적의식 없이 누군가에 대한 눈치도 없이 아주 자신만만하게 교실 맨 앞자리에서 졸고 있는 모습에서 어떤 철학적 사조와 연결하여 존재로서 자신의 길을 용기있게 살아내는 모습으로 보아주셨던 것은 아닐까 싶다. 물론 그냥 나의 추측일 뿐이다.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수업 첫 시간에 해주신 말은 또렷이 기억한다. 여러분은 미학개론을 무슨 수업으로 생각하고 들어왔냐는 질문이었다. 지금껏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미술에 대한 수업'으로 많이 알고 있었고, 개중에 '화장술' 이라고 생각하며 듣는다고 하셨다. 사실 나도 인문대에 있는 교양수업이라는 것 하나와 수업이름이 미(美)가 들어가 있어서 뭔가 교양에 도움이 될 듯한 생각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뿔사 그렇게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왠 철학 강의가 진행되는 것은 무엇이냔 말인가.  내 마음에 미학에 대해 확실히 자리잡힌 생각 하나는 '미학은 철학이구나'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 펼쳐들게 된 '처음 만나는 미학'은 책 서문에 '영화로 읽는 미학'의 증보개정판이라는 말을 보면서 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짚어 들었다. 그러나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미학이라는 것이 철학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은 여전하였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살아온 삶과 고민이 축적되어 있어서인지, 인식에 대해, 주체에 대해, 현상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철학적 담론들이 크게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읽어내려갈 수록 쉽진 않았지만 하나씩 곱씹으며 이해하고자 할 때 지적 희열을 경험하기에 충분하였다. 


  모두 12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고 각 장은 하나 이상의 영화를 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공포영화로 부터 숭고미를 말하고, A.I. 영화에서 자아존재에 대한 말을 이끌어낸다. 타인의 취향에서는 관념론이 등장하는 등 영화로 시작했다가 미학과 철학적 주제들로 넘어간다. 그 중 인상깊었던 내용 중 몇가지를 나누고자 한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반열에 오른 인물들은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연습벌레라는 것, 노력의 노력을 경주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들도 연습하고 훈련하고 노력할 땐 힘들다. 그럼에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이유는 훈련할 때 힘들면서도 그 분야에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p.91



 흔히 고민되어지는 좋아하는 것을 하느냐, 잘하는 것을 하느냐라는 갈등에 있어서 청년의 시기에는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야된다는 생각이 든다. 공자님도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이야기하셨(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왜냐하면 정말 한 분야에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의 축적이 필요한데.. 좋아함이 인내를 이끌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는 대상이 지니는 존재적 무한함에 대한 어떤 한정이다. p.99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사물의 현상에 대한 인식, 이해 또 사유나 판단 등 모든 정신적 행위의 바탕이 되는 정신의 최후 심층적 배후는 바로 ‘신념’ 인 것이다. 곧 인간은 모두 자기가 지니고 있는 어떤 ‘념(念)’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p.105
 

  우리가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게 될 때 나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왜 상대방은 그렇게 받아들이는지 무척 괴로울 때가 있다. 어쩌면 그것은 언어가 가지고 있는 한정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념'과 상대가 가지고 있는 '념'의 차이를 알아채지 못해서 벌어지는 에너지 낭비는 아닐까? 우리가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는것, 좋은 소통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서로가 가지고 있는 '념', 책에서는 언어의 4차적 층위를 이해하는 것에 해당하는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무엇을 본다는 것은 그 보이는 대상과 동일한 것이 보는 주체의 내부에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미를 지각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안에 ‘미’ 그 자체가 있어야만 한다. p.201


  태양과 같이 되어야지 태양을 볼 수 있다는 플로티노스의 말을 풀어 한 말이다. 비단 미(美)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화를 낸다는 것은 그 화를 내는 것이 나의 속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달에 읽었던 데미안에서 오르간연주자였던 피스토리우스가 했던 이야기와 닮아 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내가 누군가의 대화에 어떤 감정을 느끼거나, 미술작품을 보면서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흥분하는 것, 음악을 들으며 그속에 깊이 빠져들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그 모든 것들속에는 이미 그속에 칸트가 이야기 한 선험적 지식이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아는 것이 다른사람과의 연결점이 없을 때,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지난 주 토요일 광화문과 서울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의로운 주장을 해내고 있다. 서로가 지니고 있는 것, 그 안에 품은 태양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이해안되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현대 예술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예술은 미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18세기적 타성에 젖어 여전히 예술을 미와 관련된 어떤 것으로만 보려고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p.280


  이 책은 미학에 대한 책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의 삶에 대한 철학적 인식과 적용에 초점을 맞춰 읽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내용들이었기에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앞으로 예술을 경험하게 될 때에 알게 모르게 달라진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끝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면 인생이라는 도화지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