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의 독서학습 - 한국의 나무특강]
나의 날숨에 포함된 이산화탄소가
나무의 들숨이 되고,
나무의 날숨에 있는 산소가
나의 들숨이 되는 걸 느껴보세요.
<프롤로그 中, p.11>
독서토론 모임을 참여하게 되면 좋은 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혼자서만 읽을 때 자칫 갖게 되는 독서편식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 책도 내가 스스로 선택한 책이 아니라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책으로 읽어가야한다는 의무감에 손에 들게 되었는데, 평소에 놓치고 있었던 주변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 뿐이겠습니까. 우리삶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 중에서 늘상 내게 익숙한 것만을 선택해 경험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닌지요. 그런면에서 누군가와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교류한다는 것은 풍성한 삶을 위한 좋은 방법이 될거라 여겨집니다.
책의 분량은 400페이지 남짓으로 다소 두꺼운 듯하지만 책의 많은 부분이 저자가 직접 전국을 다니면서 찍었던 나무사진들이 들어 있어서 읽는데는 그리 부담되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저자가 마치 강의의 내용을 그대로 녹취하여 담아놓은 듯 하게 쉬운 구어체로 말하듯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어서 책의 제목마냥 특강 하나를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 담겨진 나무 사진중에 몇개를 모아보았습니다. 어떤 나무는 1000년이 넘은 나무들도 있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더군요. 사진만으로 보아도 이렇게 웅장하고 멋진데 실제 눈앞에서 보면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왠지 그 나무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도 되는것 같아요.
그런데, 책에 나온 나무 사진들을 보다가 왠지 모를 불편함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무의 가지들이 자신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해 부러질걸 대비해 세워놓은 기둥들이었습니다. 나이가 많이 먹은 멋지고 웅장한 나무일수록 이렇게 만들어놓은게 많은데요. 그 중 하나의 사진이 이랬습니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지팡이를 짚는 것처럼 몸과 팔을 기대어 놓은 기둥이 '자연'스럽다고 보이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나무를 위한 것일까?' 이런 마음이 제 속에서 들면서 '전혀 그렇지 않다' 라는 나름의 답을 속으로 이미 정해놓은채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는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가지가 처지는 게 순리가 아니겠습니까. 저렇게 기둥으로 받쳐놓는 것은 과연 나무를 위한 것이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멋진 나무의 모습을 관람하고자 하는 욕심이 드러나 보이는 듯 했습니다. 책을 읽는데에 별로 좋지 않은 마음이 생긴거지요. 물론 비판적인 시각의 독서가 필요하지만, 저자가 이야기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생각의 프레임을 갖고 보다보면 진정 봐야할 것을 놓치기 마련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는 중에 그런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개인적으로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이었다면 더 읽지 않고 반납했을지도 모르지만 독서토론에 참석하기 위해 계속 읽어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크게 잘못생각하는 한가지가 무엇이었는지 어느순간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나무가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나무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나무와 함께 했던 우리네 삶이었습니다. 일제 침탈기에 마을 공동재산을 관리하고자 나무에게 재산을 주었던 공동체의 지혜, 아들을 갖지 못해 부자 어른이 나무에게 재산을 물려주어 그 나무가 이젠 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는 예천 석송령 이야기, 문수보살을 기다렸지만 외모라 사람을 판단하며 기회를 놓친 한 스님의 지팡이에서 피어오른 정선 정암사의 주목 이야기, 천주교 박해의 현장에 있던 회화나무 이야기, 배고팠던 시절을 떠올리는 쌀밥모양의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 이야기.. 셀 수 없이 많은 나무이야기만큼이나 우리 민족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왜 나무를 자연스럽게 죽게 두지 않고 지지대를 세워 보존하려고 하는가? 그것에 대한 답을 인간의 욕심이라는 시각으로 저는 보았던 것이지만, 삶의 모습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나무를 인식하게 되는 순간 어떻게 해서든 살려두려고 하는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주인공이었습니다. 현대산업사회의 아파트나 마트문화속에서 잊고 있었던 인간과 나무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었기 때문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무와의 인연이 꽤나 많았습니다.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위해서 외삼촌은 산에서 지게 한가득 나무를 해오셨습니다. 집 뒷마당에 심겨져 있던 사과나무는 가을에 맛있는 사과열매를 맺어주어 따먹을 수 있게 했고, 옆집 앵두나무의 앵두는 그 당시 군것질거리가 되었습니다. 나무를 잘라 안을 파서 만들어놓은 시골집 누렁이의 커다란 밥그릇 여물통도 생각이 납니다. 나무는 인간의 삶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 하고 있었던게 기억에 떠오르더군요. 먹을 것도 주고 따뜻하게도 해주고, 집이나 가구도 만들 수 있도록 해주고. 요즘같으면 이케아나 유한킴벌리 같은 회사만이 나무를 생각하지 일상을 살아가는 개개인은 나무의 고마움이나 나무와의 추억을 그리 많이 갖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는 한국의 나무특강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한국을 대표한다고 할만한 커다란 나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그 주인공은 사람입니다. 어쩌면 신경쓰지 않고 지나치는 나의 주변의 나무들도 저마다의 사람과 얽힌 이야기들이 하나씩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평소 보지 않았던 이런 책을 읽는 재미도 솔솔하다는 걸 느끼는 독서가 되었습니다. 나의 일상이 무료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주변의 일상이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는지 알려주는 좋은 독서가 될 것으로 여겨져 추천합니다.
<책 속의 명언>
과학만으로 풀어헤치기 어려운 사람살이의 알갱이는 그렇게 나무의 속살 깊은 곳에 담겨 있습니다. p.63
지난 세기 동안 나무와 자연을 희생하여 우리는 성장 신화를 이뤄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번영을 위해 기꺼이 희생했던 나무와 자연을 위한 신화를 바로 우리들의 손으로, 우리들의 지혜로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p.205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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