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의 독서학습 - 은유의 힘]
시인은
‘한알의 모래속에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독서모임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게 불편한 책을 읽을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이 딱 그런 류였다.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내가 언제 시에 대해 말하는 책을 읽으려고 시도라도 했겠는가. 그런면에서 좋은 기회였다고 할 수 있지만, 실은 그 읽기의 어려움 때문에 매우 벅찬 시간이었다.
내게 있어 시에 대한 경험이라고 하면 그리 말할만한게 없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실린 시를 읽거나 성경에 나오는 시편을 외우는 것 말고는 딱히 없었는데 그래도 하나 찾아보라면 대학 때 시집을 한권 읽었던 경험이다. 그것도 우연히 접하게 되었던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마도 그 시집의 이름이 신촌에 있는 유명한 카페이름을 닮았었기 때문에 손에 잡혔던 것일런지도 모른다. 바로 이해인 수녀님의 '민들레의 영토'. 그 시집을 읽어내려가다 발견하게 된 '말을 위한 기도' 라는 시가 대학시절 당시 관계적 고민과 그속에서의 언어적 실수를 너무 잘 드러내는 글이어서 가슴후벼파며 공감을 했던 시이다. 그 시의 일부를 한번 가져와본다.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말을 위한 기도' 中, 이해인>
그리고 시간이 지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시를 접해볼 기회는 거의 갖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은유의 힘' 이라는 온통 은유로 적혀 있는 것 같은 이 책이 쉽게 읽혀지지가 않았다. 어쩌면 위에 인용했던 이해인 수녀님의 시와는 다른 세계의 시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문장들 앞에 나는 읽기의 좌절을 경험해야만 했다.
은유는 범속을 타고 넘어가기, 사물과 현상을 삼켜서 토해내는 시적인 번쩍임 그 자체다.
“진정한 ‘의미’를 낳는 것은 ‘은유’였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를 나누는 가로줄의 순간적인 월경(越境)이자 ‘시적인 번뜩임’ ‘창조적 번뜩임’이었다. p.32
시인들은 말을 모으는 자들이 아니다. 시는 말을 채집하고 그것을 쌓아두는 일이 아니라, 말을 버려서 의미의 부재에 이르게 한다. 말의 바닥에 닿으려고 말을 지우고 빈자리를 만든다. 말의 빈자리에 시가 들어선다. p.106
분명히 한글로 쓰여 있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그런 글들을 읽으며 좌절스러워도 했지만, 한편으로 내게 부족한 어떠한 부분을 자극해나간다는 생각에 끈질기게 읽어내려갔다. 그러다보니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지 아주 조금은 개념을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장석주 시인은 우리주변에 보이는 수많은 대중적인 시들에 대해서 못마땅해하는 듯 하였다. 시는 의미를 추구하지 않고 존재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에서 보여지듯 겉으로 쉽게 이해되는 시, 표면화된 시는 시로써 보기 어렵다고 말하는 듯 보였다.
겨우 문자나 깨친 무지몽매한 이류 비평가들은 씌어진 표면에서만 시를 읽는다. 시들의 표면은 심층을 갖지 않는 한에서 명료하고, 무의식의 외침 같은 다양한 선을 머금은 심층을 갖는 한에서 모호해진다. p.96
시는 낡은 의례와 방법론 속에 방임되면서 흔하고 진부해졌다. 서울지하철 스크린도어에서 만나는 저 끔직하게 진부한 시들이 그렇다. p.189
세계를 뒤흔드는 고요한 사상과 폭풍을 일으키는 가장 조용한 언어를 갖지 못한 서정시인은 비루해진다. p.233
지하철을 기다리며 스크린 도어에서 시한편을 읽으며 왠지모를 감상에 젖곤 하던 내 모습이 생각나서인지 이 글의 저자에게 반박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왜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류만 시라고 보느냐. 쉽게 이해되면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시도 시이지 않는가. 현학적 어려움에 빠져서 대부분은 이해도 안되는 모호함만 가득한 것만을 시라고 한다면 엘리트주의적인 발상이 아니냐' 이런 나만의 투정이 저자에게 들릴리 만무하겠지만 솔직히 속마음은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시에 대해서 얼마나 알기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겠는가. 그저 나의 경험의 한편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대들고 싶을 뿐이겠지.
내가 언젠가 가족들과 함께 갔었던 자연휴양림의 산책길을 걷다가 보았던 고은 시인의 시가 나와서 반가왔다. 그리고 그 시에 대한 설명이 인상깊었다. 제목이 없다는 그 시는 딱 세줄로 이루어져 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은>
저자는 이 시가 꽃에 관한 시가 아니라고 한다. 꽃에 관한 시가 아니라면 무엇에 관한 것이란 말인가? 저자는 올라갈 때는 보지 못하고 내려갈 때 보게 된 그 순간을 직관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한마디로 '앎'의 벼락이 전두엽에 직선으로 내리꽂히는 찰나 라고 설명한다. 역시 시인이어서인지 그 표현이 예사롭지 않다. 앎의 벼락이 전두엽에 꽂힌다라니.. 그리고 이어서 묻는다. 왜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것을 내려갈 때 보게 되었을까? 이 질문을 시작으로 하여 ' ‘봄’이 시각의 일이 아니라 마음의 일이라는 증좌(證左)다.' 라고 맺는 문장은 두고두고 기억해둘만한 내용이었다. 어떻게 달랑 세줄짜리 시를 두고 인간의 인지과정에 대해 그토록 선명하게 설명해낼 수 있다는 말인가.
어쨋든 이 책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게도 만들었지만 말이다. 평소에 문학과 시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공감하면서 읽어내려갈 때 많은 공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 나 처럼 시에 대해 불편해하는 사람도 좀 새로운 경험을 위한 독서로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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