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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독서휴식] 이반일리치의 죽음 - 톨스토이

[김성민의 독서휴식 - 이반일리치의 죽음]


"사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산에오르고 있었어. 

근데 사실은 정확히 그만큼 

내 발아래에서 

삶은 멀어져가고 있었던 거야."  p.108



인생의 의미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그의 후기작품들은 이렇게 죽음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이 작품은 4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법조인 이반일리치의 장례식 장면으로 부터 시작한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반일리치의 부고 소식이 전해지고 귀찮은 듯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는 죽은자의 애도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그저 남들이 하는 것처럼 풀죽인 얼굴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영혼 없는 멘트를 날릴 뿐이다. 


죽은 이반일리치의 직장동료였던 표트르 이바노비치를 조용히 불러 상의할게 있다는 미망인의 입에서는 공무원이 죽었으니 국가 지원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정체 모를 슈바르츠라는 인물은 장난기 서린 얼굴로 오늘밤에 있을 브릿지 게임에 사람을 모으는데만 관심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장례식장으로 부터 빠져나온 사람들은 그 죽음의 공간에서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이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아닌 게 아니라 일회전이 끝나가던 참이어서 그가 끼어들어 다섯이 새 게임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p.25


장례식에서 빠져나온 직장동료인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곧바로 브릿지 게임이 한창 열리는 곳으로 마차를 향하고, 이반일리치의 자리를 누군가 대신했는지 정확히 다섯명이 카드게임 하는 모습으로 1장을 마치고 있다. 


주인공을 이미 첫 장면에서 죽여놓았으니 과연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을까? 반전영화의 결말을 이미 본것 같은 느낌으로 읽어내려갔다. 톨스토이는 왜 마지막 장이 아니라 첫 장에다 죽고나서의 장면을 넣었던 것일까? 

죽음이라는 것은 이미 정해진 것이고 그 어떤 반전요소도 없다고 보았기 때문인 것일까? 그런데, 1장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죽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행동을 하고 있다. 장례식의 절차는 번거로울 뿐이고 불쾌하고 빨리 지나가버릴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누구도 죽지 않을 것 처럼 돈을 생각하고 게임을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이는 이반일리치가 죽음으로 향해가며 고통속에서 고약한 외침을 했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저들은 관심도 없어. 자기들도 죽을 텐데 말이야. 어리석은 것들. 나는 좀 빨리, 저들은 좀 늦게 갈 뿐이야. 죽는 건 같아. 근데도 좋아들 하고 있어. 짐승 같은 것들!”  p.72


주변으로 부터 인정을 받으며 스스로 공명정대하게 자신의 일에 충실히 법조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이반일리치에게 어느날 불쑥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든다. 그의 일생은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을 나와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낫고, 아내와의 갈등에 별로 대화가 없는 가정에 아이의 진로 문제로 갈등을 겪고, 집평수를 넓히며 더 나은 연봉에 혈안이 되어 살아가는 삶. 이반일리치가 3500루블에서 5000루블을 받을 수 있는 직책으로 옮기려고 하는 것도 소비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함이요. 이는 100여년이 지난 대한민국 땅에 사는 우리의 이야기와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죽음이 찾아와 그 길을 향해가면서 이반일리치는 수많은 심경의 변화를 겪으며 이런 무수한 말을 쏟아내는데, 아마 죽음에 더 가까와져서 하는말이  기억해야 할 것들이 아닐까 싶다. 


결혼...... 뜻하지 않게 찾아왔었고 이어진 실망, 그리고 아내의 입 냄새, 애욕, 위선! 그리고 이 생명이 없는 직무, 그리고 돈 걱정, 그렇게 보낸 일 년, 이 년 그리고 십 년, 이십 년, 항상 똑같았던 삶, 계속되면 될수록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삶. 산에 오른다고 상상했었지. 그런데 사실은 일정한 속도로 산을 내려오고 있었어. 그래. 그랬던 거야. 사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산에 오르고 있었어. 근데 사실은 정확히 그만큼 내 발아래에서 삶은 멀어져가고 있었던 거야.  p.108


그는 자신이 검은 구멍에 빨려 들어가며 힘들어한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 혼자 힘으로는 그 구멍에 기어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더 힘들어한다는 것 또한 느끼고 있었다. 구멍이 기어들어가는 걸 방해하는 건 자신의 지난 삶이 괜찮았다는 인식이었다. 삶의 정당화는 그를 붙들고 놔주지 않아 그는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이 점이 그를 제일 힘들게 했다. p.121


이반 일리치는 그렇게 조용히 죽어갔다.  살아가면서 그토록 미워하고 거리를 두었던 아내를 보면서 마지막 순간에 "미안해" 라는 말이 입밖에 나오려다 말았던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죽음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이상하게도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톨스토이가 그것을 목적으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3개의 단편이 함께 실려 있는데 첫 소설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고 나머지는 각각 '세 죽음 '  ' 주인과 하인' 이다.  나오는 등장인물은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저마다 다르고, 지독한 죽음앞에 서게 된 사람은 살아갈때의 이기적인 속물의 모습에서 조금은 인간다움을 발현하게 되는 것 같다.  자신의 장화를 젊은 마부에게 쓰라고 건네주는 늙은 마부의 모습에서.. 눈덮인 곳에 죽어가고 있는 하인의 몸을 자신의 몸을 덮쳐 녹여주는 주인의 모습에서..  논리적이지도 않고 갑자기 불쑥 튀어난 심경의 변화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죽음 앞에선 인간은 원래 그런게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죽음을 향해 갈 수록 빛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 

죽음이 있기에 오늘의 삶을 가치있게 살아야겠음을 ..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사랑이 중요함을 ..


마음에 그려보았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