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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독서 휴식

[김성민의 독서휴식]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 채사장

[김성민의 독서휴식 -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질문은 숙제가 아니라 열쇠다. 

적합하고 정확한 질문은 

진리의 빗장을 풀고 

우리를 세계의 비밀 안으로 

들어서게 한다." p.229



우리는 저마다의 인생관 역사관 세계관 등을 갖는다. 여기서 관(觀)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틀 혹은 창문으로 이해 될 것이다. 이런 저마다 가지고 있는 다른 관점들은 질문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 아닐까?


컵에 물이 반이 차있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왜 컵에 물이 반 밖에 없을까?" 라며 원래 물은 전체가 가득 차있어야 하는데 왜 없어졌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언뜻 그의 생각이 질문을 야기시켰다고도 볼 수 있지만 무심코 나온 그 질문이 이전에는 없던 전제를 떠올리게 한 원인일 수 있다. 다른 이는 "왜 컵에 물이 반이나 담겨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물의 부재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물이라는 존재가 나타난 것은 덤, 보너스 같다고 바라보는 것이다.  질문과 생각은 말과 마차와의 관계와 같다. 말이 방향을 틀면 마차는 따라가게 되어 있다.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적어보려다보니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질문' 에 대해서 떠올리게 되었고, 책의 저자인 채사장의 무게감 있는 '질문'이 상기되었다.  지난번 읽었던 톨스토이의 인생론이 그러했던것처럼 채사장도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을 하며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앞서 질문이 관점을 만든다고 했던 것처럼 채사장의 질문은 채사장의 관점을 만들고,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라는 그 관점에 따른 답을 내놓게 되었다고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에세이 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안에는 단편소설도 있고, 시도 있고, 인문학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다. 티벳을 향해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 채사장에게 있어 한순간 육체로서 살아가는 인간이 아닌 어디선가로 부터 출발해 이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여행자로서 자신을 비롯한 인간을 정의한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 가 아닌 '나는 무엇인가?' 라고 내리면서 그가 내릴 수 있는 답의 범위는 전혀 달라졌을것이다. 내 앞에 있는 생수를 보고 '이것은 언제적 물인가?' 라고 유통기한을 생각하는 사람과 '이것은 어떤 액체인가?' 라고 질문하는 사람은 지독한 갈증을 느낄 때 그것을 마시는 행동 여부가 전혀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질문이 중요하다. 

채사장이 던진 그 질문이 과연 옳은 질문인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그가 전개하는 사유의 여정은 매우 진지하며 또한 배울 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처음 나오는 이야기는 재수시절 학원 사회문화선생님의 수업 중 딴길로 샌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는 삶의 경계까지 가봐야 한다거나, 불편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채사장의 삶의 태도에 강한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본다. 이야기는 이렇다. 

모두가 지쳐있는 듯한 사회문화 수업시간.. 연로하신 선생님이 평소와는 다르게 수업중에 딴 이야기를 시작한다. 신경쓰지 않았다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 있던 이야기인데 채사장인 그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선생님이 칠판에 별 모양을 그리며 말씀하셨다. 

“별 모양의 지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별 모양의 지식이 담겨진 책을 읽으면 될까요? (중략) 지식은 그런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른 책을 펴야 해요. 삼각형이 그려진 책, 사각형이 그려진 책, 원이 그려진 책. 이런 책들을 다양하게 읽었을 때, 삼각형과 사각형과 원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비로소 별을 만드는 것입니다. “ p.19


그 이후로 채사장은 재수생이라는 신분에서 사치로 여겨져 멀리했던 문학책 읽기를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재수공부와 대학합격이라는 눈앞에 있는 별을 향해 갈때 너무 그것에만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로 이해하고 다른 지식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그러나 그 누가 선생님의 본래 마음을 알겠는가? 단지 비인기과목이고 수능에서 크게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과목에 소홀히 여기며 국영수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과목도 중요시 해야 한다는 뜻에서 한 말이었을는지를..


너무 어려서 곁의 동료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자신도 그 죽음의 문턱을 오고갔기 때문일까. 채사장이 세상을 보는 눈은 너무도 어둡고 마음이 아프다. 물론 그는 그런 시선을 통해서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을른지도 모른다.  마을 어귀 산책길에서 만날때마다 짖어대던 강아지 한마리를 보면서도 삶의 소멸과 생성을 생각한다.


오랜 시간 세상을 살아가며 얻게 된 소중한 경험과 이해는 오래 산 존재들과 함께 침묵 속으로 사라지고, 세상은 이 세상이 처음인 싱싱한 존재들이 장악한다. p.90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실재하는 것은 없다. 관념일 뿐이고, 폭력을 조장하는 것은 바로 '진리' 라는 것 때문이다. 우리는 '관조자' 이고, 세상은 '빛'이다. 그속에서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도 서로가 스쳐가는 인연과 언어에서도 관조자만 남을 뿐이다. 라며 그가 이야기하는게 아닌가 싶다. 


너와 나의 만남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넘어선다. 그것은 차라리 세계와 세계의 충돌에 가깝다. 너를 안는다는 것은 나의 둥근 원 안으로 너의 원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감내하는 것이며, 너의 세계의 파도가 내 세계의 해안을 잠식하는 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p.34

헤어짐이 반드시 안타까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실패도, 낭비도 아니다. 시간이 흘러 마음의 파도가 가라앉았을  때, 내 세계의 해안을 따라 한번 걸어보라. 그곳에는 그의 세계가 남겨놓은 시간과 이야기와 성숙과 이해가 조개껍질이 되어 모래사장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고 있을 테니. p.34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이 말하는 내용이 '진리' 일 것을 희망하며 그렇다고 믿고 있어 보인다. 그리고 책을 통해 독자에게 다가선다. 소년병의 이야기와 언어와 고대 부족의 한 전설과 꿈에 대해 말하며 자신의 말이 진실일 수 밖에 없음을 주장한다. 


질문은 생각을 만든다. 그 생각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전제를 함축하고 있고, 그 전제가 맞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기 위해 수많은 이야기가 그 질문곁으로 달려든다.  이렇게 되면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해지지 않는 순간이 온다. 그저 누가 더 말을 잘하느냐로 판가름 나는게 아닐까?


그렇기에 채사장의 이야기는 공감가는 마음 짠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뭔가 모를 마음의 채이는 걸림돌을 남겨둔다.  톨스토이가 '참회록'에서 고백했듯이 이것이 큰 사유의 여정을 걷는자가 중간 정착역에서 만나게 된 미완의 이야기길 바란다. 그래서 종착역에 다다를 수록 보다 내용이 또렷해지길.. 그리고 마음의 슬픔이 걷혀지길 기대한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