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경영/독서 휴식

[김성민의 독서휴식] 톨스토이 인생론, 참회록 - 톨스토이

[김성민의 독서휴식 - 톨스토이 인생론, 참회록]



인생의 모든 모순을 해결하고,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을 베풀어 주는 이 감정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랑! 

이 감정은 바로 사랑인 것이다. p.104



젊은 청년 하나가 인생의 의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결국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기로 한 그가

기차를 타고 가는 중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아주 가까이에 삶의 의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멀리서 기차 복도를 따라 오던 한 아저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 한마디


"삶은 계란이요..  삶은 계란이요.."




우리는 한번쯤 청소년 시절을 거치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이 질문을 해보았을 것이다.  과연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러나 진지하게 끝까지 파고들어 답을 얻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장 대학을 가야하고, 취직을 해야하고, 결혼을 해야하는 

그야말로 숙제인생의 당면 과제를 앞에 두고 허겁지겁 달려오다보니 

그런 고상한 질문은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내 기억 저편으로 묻어둔 질문이지 않을까 싶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내가 그정도로 알고 있던 이 사람도 역시 인생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것도 그가 한참 문학인으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던 황금기에 

어느날 불쑥 찾아온 이 의문에 

도무지 외면할 수 없어 고뇌하고 절망하며 물음을 끊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살로서 자신의 삶을 끝내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를 붙잡고 놓지 않는 한가지 의문이 있었는데, 참회록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혹시 내가 무언가 못 보고 지나친 게 있는 건 아닐까? 어딘가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는 건 아닐까?” p.211


모든 진리의 발견은 이렇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가 싶다. 기업의 문제해결이나 창의성에서도 자신이 알고 있고 결정내린 것이 전부라고 그것이 답이라고 여기는 생각이 있는 한 더욱 새롭고 좋은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짐 콜린스가 Good to Great 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위대한' 생각의 적은 나쁜 생각이 아니라 '좋은' 생각이라는 말이 바로 그에 해당할 것이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지성으로 파헤친 결론이 전부는 아닐것이라고 보고 그때부터 세상의 모든 지식과 모든 사상들, 종교, 철학을 파헤치며 인생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몸부림쳤다. 그 흔적이 참회록과 인생론으로 나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그는 '인생은 무의미하다' 라고 하는 그간의 결론이 합리적으로 잘못된 구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하나 놓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사고를 거듭한 끝에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된다. 


모든 인생 문제의 해결도 분명히 나를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제기한 이 문제는 처음에는 아주 단순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그 속에 무한으로 유한을, 유한으로 무한을 설명하려고 하는 요구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p.23


그리고 자신의 유한성내에서는 결코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무한과 유한의 삶을 연결하는 것. 그가 발견한 것은 '신앙'이었다. 


우주의 생활은 그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다. (중략) 그 의지가 뜻하는 바를 깨닫고 싶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의지의 명령에 복종하여 그 의지가 우리에게 바라는 대로 실행해야만 한다. p.251


그리고 그가 속한 러시아 정교회의 모든 활동에 참여하여 진지한 태도로 종교생활을 하였지만 그속에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것이 있음에 또다시 몸부림 쳤고, 종교라고 하는 것이 보편적 인간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분열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에 심각한 모순을 느끼게 된다. 즉, 원래의 그리스도교가 추구하는 바가 아닌 그 이후에 만들어진 절차와 규정등에 의해 매여있는 종교의 현재 모습에 염증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역자 후기에는 이에 대해 '톨스토이주의' 라고 하는 신념에 찬 생활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현대의 타락한 기독교를 배제하고 박애주의에 투철한 원시기독교로 복귀하여, 노동・채식・금주・금연 등의 검소한 생활을 영위하고 악에 대한 무저항주의와 자기 완성을 기초로 한 사랑의 정신으로써 전세계에 평화에 이바지.... "


내가 읽었던 '인생론' 은  '참회록'에서 고백한 그의 완성된 삶에 대한 혜안이 집약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인생론에서 세상에 만연한 사이비 교의와 과학을 배격하는 입장을 취한다. 특히 인간을 단지 동물과 다름이 없는 진화적 산물로 규정하는 진화론에 대한 강고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느껴졌다. 또한 과학에서 인간 존재를 입자들의 우연한 배열에 의한 확률의 산물로 보는 것에 대한 것도 배격한다. 


장님은 자기 앞을 지팡이로 더듬으며, 

지팡이의 촉각이 전해 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단언한다. p.34


바리새 주의로 대표되는 사이비 교의와 진화론적인 입장의 과학주의를 일컬어 '장님'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인간이 처해져 있는 자신의 실존, 혹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삶의 목적과 의미가 얼마나 편향되어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만일 그의 양친이 가난하다면, 그는 인생의 목적은 보다 많은 빵과 돈을 얻고, 될 수 있는 한 적게 일하고

될 수 있는 한 많은 동물적 자아를 만족시키는 일이라고 하는 한 가지를 양친으로부터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가 부유한 환경 속에서 태어났다면 인생의 목적이란 될 수 있는 한 재미있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재산과 명예를 얻는 것이라고 하는 한 가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p.38


정말 그렇지 않은가. 내가 철저히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가치라는 것은 내가 태어나면서 부터 존재했던 나의 주변의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은, 라캉이 이야기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그런 목적일 따름이다. 


톨스토이는 이런 관점의 인생관은 잘못된 것이며 궁극적으로 인생이 가져야 할 것들은 '행복' 추구라고 말한다. 이는 많은 사상가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이야기한 것과도 같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 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에는 심각한 모순이 생긴다.  모두가 자신을 사랑해주길 기대할 때 누구도 사랑을 받을 수 없다라는 이성적 사고의 귀결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인간은 인생의 목적인 행복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 수수께기의 해결을 기발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당신은 모든 사람이 당신을 위해서 살고 그들 자신보다도 당신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의 이 희망이 실현될 수 있는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다. 모든 생물이 다른 것의 행복을 위해서 살고, 자기 자신보다 더욱 많이 남을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당신 내지 모든 생물은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고, 그 일원인 당신도 역시 당신이 바라는 행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p.86


자신이 행복을 추구하는 유일한 길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살때만에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톨스토이는 당연히 제기될 반대 심리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다. 

그게 이상적인 상태만이 그런거지. 실현 가능하기나 하냐는 질문 말이다. 

그러나 인생과 사랑에 대한 참된 의미를 설명하며 우리가 갖게 되는 오해를 풀어주려고 한다. 


인간 생존의 불행은 개체의 존재를 인생이라고 인정하고 행복이라고 인정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p.98

인생의 모든 모순을 해결하고,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을 베풀어 주는 이 감정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랑! 이 감정은 바로 사랑인 것이다. p.104

장래의 사랑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이란 오직 현재의 활동이다. 현재 사랑을 나타내 보이지 않는 사람은, 결국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p.111

참된 사랑은 개인적 행복을 포기한 결과이다. p.113

사랑의 양은 분수의 양과 마찬가지이다. 그 가운데 분자 - 즉 다른 사람에 대한 편애 ・ 동정 --는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으나, 분모 -- 즉 자기에 대한 자신의 사랑 -- 는 스스로 자신의 동물적 개성에 무게를 두는 비율에 의해서 무한정 증감시킬 수가 있다.  p.115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인생론을 끝마친다. 


죽음의 공포는 사실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그릇된 생명에 대한 공포이다. p.130


인생을 참된 모습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자기의 생명이 병이나 노쇠 때문에 쇠퇴한다고 해서 슬퍼하는 것은, 마치 빛으로 다가가는 사람이 빛으로 다가간 만큼 자기의 그림자가 작아지는 것을 슬퍼하는 것과 똑같다. 육체가 멸망했다고 해서 생명이 멸망했다고 믿는 것은, 가득 비치는 빛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물체의 그림자가 없어지는 것을 물체 자체가 없어진 표시라고 믿는 것과 같다. 다만 지나치게 오랫동안 그림자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마침내는 그것을 물체 자체라고 상상하게 된 사람만이 앞의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p.144


인간의 삶은 행복에 대한 갈망과 정진이고, 그가 갈망하고 정진하는 대상은 그에게 부여된 것이다. 죽음으로 대신할 수 없는 삶과,. 악으로 대신할 수 없는 행복이 그것이다. p.178


나는 특히 이 죽음에 대한 파트가 마음에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내 앞에 놓여 있고 다가오고 있다는 죽음이라는 순간을 나는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물론 톨스토이가 15년에 걸쳐서 고뇌했던 것을 책을 한번 읽었다고 해서 다 이해하거나 나 스스로 던져낸 질문의 답이 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몸부림처럼 나도 역시 진리를 향한 경주를 쉬지 않는다면 언젠가 삶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가 생겼다. 결국 삶은 ... 계란이 아닐까?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