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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독서 휴식

[김성민의 독서휴식] 아몬드 - 손원평

[김성민의 독서휴식 - 아몬드]

(※ 내용상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p.259



 게슴츠레 눈을 뜨고 무표정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는 한 소년이 주인공이다.  그는 두려운 감정을 느끼는 뇌의 부분인 편도체가 남들보다 작다. 책에는 아몬드만하다고 나온다. 편도체가 작으면 보통은 두려움만 느끼지 못하는데, 주인공인 윤재는 슬픔 기쁨 초조함 흥분됨... 모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감정표현불능증'을 경험하고 있다. 


편도체가 작으면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가 공포심을 잘 모르는 거다.

용감해서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모르는 소리다.

두려움이란 생명 유지의 본능적인 방어 기제다. 

두려움을 모른다는 건 용감한 게 아니라 차가 돌진해도 그대로 서 있는 멍청이라는 뜻이다. p.30


  책은 윤재의 가족인 할머니와 엄마의 비극적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성탄절 캐롤이 울려퍼지는 크리스마스 이브. 모처럼 외식을 하러 나갔던 윤재의 가족은 '내앞에 웃고 있는 사람은 다 죽이겠다' 라는 한 사람에 의해 할머니는 그자리에서 칼에 찔려 죽고, 엄마는 망치로 머리를 수차례 얻어맞아 식물인간이 되어버린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할머니의 죽음을 눈앞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지켜보아야만 했다. 혼자 남겨진 윤재, 과연 잘 살아갈수 있을까?


  한 사람이 사회속에서 정상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특별한 장애가 없는 우리들 개개인도 20여년을 정서적 보살핌과 경제적 뒷받침이 있었기에 건강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으리라. 소설의 주인공인 윤재도 그랬다. 그는 어려서 할머니와 엄마로 부터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며 커간다. 남들로 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때마다 할머니는 윤재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어준다. 


"할멈, 사람들이 왜 나보고 이상하대?”

할멈은 내민 입을 집어넣었다.

“네가 특별해서 그러나 보다. 사람들은 원래 남과 다른걸 배기질 못하거든. 에이그, 우리 예쁜 괴물.”

P.21


  할머니와 어머니의 부재 중 윤재가 사는 집 2층에 있던 건물 주인인 빵집가게 '심박사'가 멘토 역할을 해준다.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주며 윤재가 고민에 빠졌을 때 정답을 주기보다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며 지켜봐준다. 세상에 그런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어려서 엄마의 손을 놓치고 떨어진채 커온 '곤이'와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아무도 감싸주고 지지해주며 보호해주지 않는 야생의 늑대소년과 같이 곤이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도 남을 배려하지도 않은채 늘 분노에 이글거리는 모습이다. 

  또 한명이 캐릭터를 떠올린다면 '도라'가 있을 것이다. 도라는 윤재에게 가슴뛰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끔 해주는 엑스트라 같은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관심과 성장' 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도라는 또 다른 측면의 이야기를 해주는 듯 하다. 윤재가 장애속에서의 관심을 받고 자란 아이라면, 곤이는 부요하고 정상적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자라게 된 전형이다. 반면 도라는 평범한 가정에서 부모의 지극한 관심을 받고 자라고 있으나 자신이 하고 싶은 '달리기' 라고 하는 꿈을 지지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인생을 강요받으면서 살아간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한 듯 하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애정과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장례식장에 온 여경 하나는 유족들에게 절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조금 뒤 나는 그녀가 복도 끝에서 나이 많은 남자 경찰에게 혼나고 있는 걸 봤다. 앞으로 이런 일은 부지기수로 보게 될거야. 그러니까 무뎌지는 법을 터득해야 해.  p.64


  또 하나 이 소설은 '감정' 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저 홀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타인을 바라보고 공감하며 느끼는 '감정'을 말이다.  '감정표현불능증'을 겪고 있는 주인공의 시선에 들어온 세상은 참으로 신기한 모습이었다. 할머니의 장례식에 찾아온 여경을 질책하는 나이든 경찰은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무뎌지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조언을 한다. 감정이 풍부히 있지만 사회속에서는 그것을 표현하면 안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면에서 주인공인 윤재는 타고난 사회적 인간일 수 있다. 그런데도 세상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표현을 못하는 윤재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세상이다. 윤재는 그걸 이상하게 생각한다. 


나는 알고 있다. 곤이가 착한 아이라는 걸. 하지만 구체적으로 곤이에 대해 말하자면 그 애가 나를 때리고 아프게 했다는 것, 나비를 찢어 놓았다는 것, 선생에게 패악질을 부리고 아이들에게 물건을 집어 던졌다는 것밖에 말할 게 없었다. 언어라는 건 그랬다. (중략) - 그냥 알아요. 곤이는 좋은 애예요.  p.233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문제아라고 바라보며 수학여행때 없어진 물건의 도둑이 곤이라고 몰아갈때 오직 윤재만이 곤이가 좋은 애임을 알아봐 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관과 보여지는 정보들만을 가지고 상대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이런 '감정'은 제대로 세상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발자국 더 나아가 윤재는 사람들 감정의 이중적 모습을 꼬집는다.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던 심박사가 자기가 온 것을 보며 환히 웃으며 맞이할 때 윤재는 이해할 수 없어한다. 멀리 떨어진 슬픔은 공감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일까. 반면에 크리스마스날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칼부림에 대해서 침묵했던 그날 거리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연 감정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것일까? 윤재는 의아해 한다. 그리고 그건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멀면 먼대로 할 수 있는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p.245


  결국 인천에 있는 시장 뒷골목에 있는 철사형님께 몸을 맡긴 곤이를 찾아간 사람은 '감정표현불능증'의 윤재였다. 윤재는 곤이에게 찾아가 집에 가자고 말하고, 곤이대신 칼을 맞는다. 


  소설의 주인공이 겪고 있는 감정표현불능증이 어떤 것인지 잘 상상이 안간다. 머리로는 대충 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는 어떨지.. 책은 윤재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되고 있지만 그 이야기에 완전 몰입해서 볼 수 없는 이유가 이런 괴리에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하나같이 영화 어벤저스에 나오는 수퍼히어로와 같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자신의 시간을 내어 뒤에서 보살펴주는 심박사도 그렇고, 분노장애가 있는 학교 최고의 문제아 곤이가 윤재의 감정에 눈을 뜨게 해주려 노력하는 모습도 그렇다. 이 책의 최고의 비현실성은 해피엔딩 마무리에 있다고 하겠다. 모두가 해피엔딩을 바라지만 현실은 바라는 바대로만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감정표현불능증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나 심리학적 교훈을 도출해내려고 한다면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오히려 수퍼히어로의 영화에서 권선징악이나 정의가 승리한다는 등의 교훈적 메시지, 그리고 눈을 사로잡는 스케일과 액션등을 보듯이 소설속의 따뜻한 이야기들과 작가가 간혹 던지고 있는 주제의식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감정을 풍부히 느끼는 나는 과연 제대로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며 한발자국 다가서려는 노력을 하였나? 하는 도전을 느끼는 독서였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