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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독서 휴식

[김성민의 독서휴식] 호밀밭의 파수꾼 - 제롬 데이비스 샐린저

[김성민의 독서휴식 - 호밀밭의 파수꾼]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p.279



 아몬드라고 하는 소설을 읽던 중 주인공이 수십번 읽었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일어 꺼내어 들게 되었다. 제목은 참 많이 들어보았던 것 같다. 혹시 책을 읽지 않았던 분이라면 한번 상상해보기를 바란다. 이 책의 배경은 어디일 것 같은가? 이 책의 주인공의 나이는 얼마나 될 것으로 여겨지는가? 

 내가 책을 읽기 전에 아주 오랫동안 이 책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 하나가 있었다. 배경은 농촌 전원마을, 주인공은 나이 40대정도 되어보이는 중년의 남자. 그속에서 펼쳐지는 스릴러.. 어쩌면 등장인물중 누군가 호밀밭 음침한 곳에서 죽은 시체로 발견되면서 시작하는 추리소설같은 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냥 제목하나 듣고 수십년동안 생각해왔던 이 책에 대한 이미지가 그랬다는 말이다. 


  잘못 짚어도 너무 잘못 짚었다. 내가 생각했던 그런 내용이 전혀 아니었다. 배경은 택시와 자동차가 도로를 굴러다니고 곳곳에 브로드웨이 공연과 영화가 상영되는 뉴욕, 주인공은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맞은 청소년. 내용은 기승전결이 없이 주변에 보여지는 사물과 대상에 대한 묘사, 그리고 옛 경험에 대한 회상으로 엮여있다. 


  책을 다 읽고 한마디로 이 책을 말한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해보았다. 내가 찾은 답은 '가출 청소년의 방황기'. 


  책에서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궂이 말하자면 허름한 호텔에서 모리스라고 하는 엘리베이터 보이에게 속아서 자기방으로 창녀를 불렀을 때 정도, 아니면 돈이 다 떨어져서  부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하면서 몰래 집으로 들어가 동생한테 돈을 빌려 나올 때 정도. 그 외에는 집을 나와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주인공의 생각과 자신의 우울한 감정에 대한 투사만이 가득했다고 생각된다.

  



 글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콜필드는 피셔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다섯과목 중 네과목을 낙제하여 퇴학을 당하게 된다. 원래는 기숙사생활을 하고 있던 중이라 퇴학통보가 부모에게 가고, 부모가 다음 주 수요일에 데리러 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주인공은 기숙사 룸메이트와의 다툼을 비롯해 여러 불편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토요일 밤에 기숙사를 나와 자신의 집이 있는 뉴욕을 배회하게 된다. 그 이후로는 주인공이 뉴욕 술집과 호텔, 택시, 극장, 공원, 박물관 등을 돌아다니다가 집에 돌아가기까지 겪었던 잡다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고 앞서 이야기한바와 같이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거나 하진 않는다. 그저 걷다가 택시탔다가 그러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 자꾸만 과거를 떠올리고 주인공 머릿속에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독자도 함께 공유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건이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무척 지루할 법도 한데, 콜필드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묘사가 매우 매력적이다. 그래서 계속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속으로는 온갖 호박씨를 다 까면서도 겉으로는 무척이나 신사답게 상대에게 이야기 한다. 때로는 그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여 여자친구 샐리에게 욱하며 한마디 했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샐리에게 잘못했다고 손이 발이되듯 빌고 또 비는 모습에서 남자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변호사인 아버지를 둔 금수저 집안의 주인공은 어느정도 사회적 우월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도 보인다. 낡은 가방을 들고 가는 사람에 대해 우습게 여기는 태도라든지, 카톨릭교도가 아닌 그가 필 받아서 수녀에게 기부를 한다던지 하는 모습이 그렇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 내내 그의 기분은 '우울함' 그 자체였다. 유일하게 기분이 나아지는 순간이 있었는데, 일요일 아침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어떤 한 가족을 보았을 때였다. 엄마와 아빠 옆을 따라가며 차도와 인도사이에서 자유롭게 걷고 있는 소녀를 보았는데, 그때 처음으로 '호밀밭'이 등장한다.


그 애는 그저 연석 옆에 붙어 차도를 걸어가며,

‘호밀밭에 들어오는 사람을 잡는다면’ 을 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우울하지 않았다.  p.156


  그리고, 몰래 집안에 숨어 들어 동생인 피비에게 갔을 때 또 한번 '호밀밭'이 등장한다. 피비가 또 퇴학당했느냐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채 주인공을 몰아붙이는데, 주인공은 뭘 좋아하냐는 동생의 질문에 이런 대답을 한다.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 거야.

(중략)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p.230


  

이 소설의 제목 '호밀밭의 파수꾼'은 이렇게 딱 2번 등장한다. 소설의 제목은 소설의 주제의식, 즉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연관된 어떤 것을 쓴다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작가는 독자들에게 어떤 것을 전해주려고 하는걸까? 


자세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주인공 화자의 태도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계속해서 우울감에 쌓여 있던 주인공이 유독 밝아지는 순간이 호밀밭과 연결되어 있었다. 호밀밭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순간을 행복해한다 그리고 바보스럽지만 그런 아이들을 위험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책의 마지막은 참 당황스럽게 마치고 있는데 여기서도 파수꾼의 행복해하는 모습이 드러나 있다. 동생 피비와 유원지 회전목마에 가서의 일이다. 갑자기 내린 비에 자신은 빨간색 모자를 눌러쓴채 비를 흠뻑 다 맞아가며 파란 옷을 입은 채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피비를 지켜보는 장면이 나온다. 


피비가 목마를 타고 돌아가고 있는 걸 보며, 불현듯 난 행복감을 느꼈으므로. 

너무 행복해서 큰소리를 마구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p.278


그 이전까지는 스스로 삶을 끊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우울한 감정에 쌓여 있던 주인공이 큰소리를 지르며 행복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행복은 거창하고 대단한것으로 부터 빚어지는게 아니라더라.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장면이 가장 큰 반전이었다. 그리고 엔딩이기도 하다. 


티없이 밝은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지켜주고 싶다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콜필드. 한편으로는 자신이 그렇게 뛰어놀고 싶은 아이가 아니었을까? 어른들의 세상에서 어른인척하며 술집을 드나들며 담배를 피우고 매춘부를 부르더라도 그곳에서는 정작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실망감과 우울함만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미술에 관한 책을 읽고, 잠시동안 이었지만 주변 사물들을 날마다 스케치하는 습관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때 느꼈던 것이 미술을 한다는 것은 일상에 대한 특별한 관찰력을 키우는 좋은 연습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면서 소설이라는 것 글을 쓴다는 것 역시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자인 주인공의 입을 통하여 주인공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세밀한 감정선을 이끌어내고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버린다. 그런면에서 주인공인 콜필드가 부럽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다섯과목중 네과목이나 낙제를 했지만, 유일하게 낙제하지 않은 과목이 영어 였다고 한다. 기숙사 룸메이트가 작문숙제좀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교수님이 룸메이트인 네가 작문잘하는걸 아니깐 좀 대충써달라고 언지를 주기까지 할 정도로 이야기를 만들고 묘사하는 것에는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기숙사를 나와 뉴욕으로 향해 가는 기차안에서 만난 여성에게 엄청날 정도로 뻔뻔하게 거짓말을 만들어 하는 장면은 놀라울 정도다.  소설을 읽고 이런 생각을 갖는게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처럼 나도 살아가는 일상에 대해 여러 잡다한 생각을 적어보고 나의 생각을 잘 표현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제목으로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책이었지만, 읽으면서 나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좀 더 생생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문학 독서도 좀 해볼까 하는 자극을 받았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