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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독서 휴식

[김성민의 독서휴식] 당신 인생의 이야기 - 테드 창

[김성민의 독서휴식 - 당신 인생의 이야기]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선택하기도 전에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결정해야 한다. p.187


 어린시절 주말에 '환상특급' 이라는 외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온갖 기묘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약간은 공포영화같은 느낌의 단편 외화 드라마였는데, 이 책이 딱 그 느낌이다. 


  모두 여덟편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런것들이 있었다. 하늘 끝까지 탑을 쌓아 올리다가 급기야 하늘 천장에 다다른 인간이 천장너머의 세상을 알고 싶어 구멍을 뚫는다는 설정의 '바벨론의 탑', 식물인간 상태에 있던 주인공이 획기적인 뇌 회복약인 호르몬K 처방을 받고 인간을 초월한 지능을 갖게 되면서 벌어진 이야기 '이해',  '1=2' 라는 말도안되는 등식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낸 수학자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가면서 벌어지는 내적 갈등의 이야기 '영으로 나누면', 외계인의 지구방문에 맞춰 외계언어를 통역하는 과정에서 그 언어에 담긴 비밀을 통해 미래를 보게 된다는 언어학자의 이야기 '네 인생의 이야기',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를 풍자한듯한 강철의 연금술사의 세계관과 닮은 '일흔 두 글자', 삶을 살아가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고통과 기적을 대하는 인간 내면의 생각을 담은 '지옥은 신의 부재', 한번의 처방으로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않게 된다는 '칼리그노시아' 의무화를 둘러싼 펨블턴 대학 학생들에 대한 인터뷰를 모아놓은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 다큐멘터리'.  기묘하다고 하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딱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책에 나오는 각 단편들 모두가 아주 독특한 작가적 상상력을 통해 그려져 있고 모두 유명한 상을 휩쓴 작품들이라 전체적으로 하나로 리뷰를 쓰기에는 참 아쉽기도 하다. 특히 국내에 '컨택트' 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Arrival' 이라는 영화가 바로 이 책의 네번째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니 그것만 해도 할 얘기가 많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정말 관심있는 독서가라면 오히려 너무 자세한 내용을 담는 것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주 간략히 전체적인 내용에 대한 소감을 말하는 것으로 포스팅을 채울까 한다. 


  한편 한편이 모두 대단하다. 어떻게 작가가 그런 상상력을 지닐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혹시 작가 테드 창이 우리가 가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해보고 돌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만져 들 정도였다. 그래서 든 생각이 이 책의 제목 '당신 인생의 이야기' 라는 것이 독자인 우리들을 향해 '너네들 인생이 어떤 것인지 내가 본 것들의 진실을 펼쳐 보여주마' 라는 뜻은 아닐까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런 생각을 가져다 준 것은 각 소설들이 시대적 배경과 소재가 모두 다른 것 같지만, 글의 전개에서 어떤 공통점을 주었기 때문이다. 먼저는 주인공은 일상을 살아가다가 점차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바벨론의 탑에서는 그것이 탑의 상부를 향해 올라가는 여정이 되었고, 이해는 뇌 치료를 받고 나서 점차 좋아지는 지능의 경험, 네 인생의 이야기는 외계인과 만나 그들의 언어를 학습해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과하게 된 주인공은 남들이 하지 못하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된다. 하늘 천장 구멍을 통과한다거나 뇌의 사고 메커니즘만으로 사람의 생각을 조정하기도 하고, 외계인의 언어를 알아차리게 되어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생겼다거나.. 그리고 주인공은 깨달은 사람으로서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물론 '이해'편의 주인공 레온은 레놀즈와의 일대 격전에서 패하여 자체 붕괴하고 말지만 그 또한 마지막에 자신을 객관하여 내다보며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나는 <말>을 이해하고, 그것이 작용하는 수단을 이해한다. 고로, 나는 붕괴한다. p.109


   영으로 나누면에서는 인생과 우주 전체를 뒤흔들 딜레마를 자기 스스로 증명해낸 수학자 레네를 아내로 둔 칼의 독백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무는 결정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칼은 레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자기도 정확하게 알며, 그 자신도 그녀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두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 아니라 떼어 놓는 종류의 감정이입이었고, 그녀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p.137


  작가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세계에서 '이것이 인생이다' 라고 당연시 해왔던 것에 대해 의문을 제시한다. 도너츠나 원통인장처럼 세계가 만들어진게 아닐까 하는 상상이나, 우주가 순차적 방식으로 시간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공시적인 방식으로 볼 수 있다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물질 우주는 완벽하게 양의적인 문법을 가진 하나의 언어이다. (중략) 한 방식은 인과적이고, 다른 방식은 목적론적이다. 두 가지 모두 타당하고, 한쪽에서 아무리 많은 문맥을 동원하더라도 다른 한쪽이 부적격 판정을 받는 일은 없다. p.198

 인류가 순차적인 의식양태를 발달시킨 데에 비해, 헵타포드들은 동시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켰다. p.199


 책을 읽으며 공학을 전공했던 사람으로 가지고 있는 얄팍한 과학지식을 토대로 내용을 비판하고자 하는 생각이 솟아나는 적이 있었다. '바벨론의 탑'에서는 탑을 오르는 중에 태양이 위에서 아래가 아닌 아래에서 위로 비추는 순간이 찾아와 식물을 거꾸로 재배한다거나,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페르마의 최단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하며 광선을 의인화하여 마치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이는 듯한 개념으로 서술해 놓는 것을 마주할 때가 그랬다. 물론 작가 테드 창이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이어서 어느정도 기대하는 바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작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어떤 주제의식을 전달해주고자 하는 소설이라고 본다면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당연시 여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작은 비틂을 주었다는 것이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얻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 책을 자신의 인생의 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그정도는 아니지만 아주 독특하고 흥미로운 관점을 던져주는 책임에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향한 고정된 시선에 차이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주저없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마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확률이 클 것이라고 본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