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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독서 휴식

[김성민의 독서휴식] 오두막 - 윌리엄 폴 영

[김성민의 독서휴식 - 오두막]


"우리의 상처가 주로 인간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치유 역시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 p.14


 이 책을 선물받을 때만해도 책 표지에 있는 허름하고 낡은 오두막의 모습이 기괴하여 무언가 공포스러운 스릴러 소설이 아닐까 생각을 했었다. 책을 읽는 중에 가만히 표지를 다시 보니 그림 오른쪽 상단에 새롭게 돋아나는 빛나는 나뭇잎이 보인다. 오두막 앞에 쌓여 있는 눈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봄날 돋아난 이파리 같은 모습.. 왠지 그 빛과 함께 생명이 번저나갈것만 같다는 생각을 한참을 지난 후에 하게 되었다. 


 간략하게 이야기를 정리해보겠다. 주인공은 맥, 그는 어려서 아버지의 폭행에 참지 못하고 집을 나와 자수성가로 가정을 이룬 사람이다. 다섯자녀를 둔 평범한 가정에 그리 두드러지지 않은 삶을 살아가던 중 아이들과 함께 가게 된 캠핑에서 아주 끔찍한 사건을 당하게 되고 그 후로 그의 인생은 '거대한 슬픔' 속에 빠져 살게 된다. 막내 딸 미사가 연쇄살인마에게 납치되어 실종되었던 것이다. 끝내 미사는 찾지 못하고 피가 가득 묻은 미사의 옷이 어느 산속 오두막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책 제목의 '오두막'은 바로 거대한 슬픔이 시작된 미사의 피묻은 옷이 발견된 그 오두막을 말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그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어느날 우체통에서 꺼내든 쪽지에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소. 오두막으로의 초대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메켄지,

오랜만이군요. 보고 싶었어요.

다음 주말에 오두막에 갈 예정이니까 같이 있고 싶으면 찾아와요

- 파파


 보낸 사람이름인 파파는 맥(메켄지)의 아내가 하나님을 부르는 표현이다. 누군가 자신을 놀리거나 혹 그때의 그 살인범이 무언가 목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한 것인가 하는 온갖 생각을 다하다가 친구 윌리에게 차와 총을 빌려 오두막을 찾아가게 되는데, 거기에서 그의 인생은 크게 바뀌게 된다. 그동안 자신의 삶을 괴롭혔던 '거대한 슬픔'을 떠나보내게 되고 그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그 이후로 전개될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되도록 말을 아끼고자 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짧게 표현된 말들로 책의 내용을 축소시키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맥'이라는 인물의 거대한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떠한 계기를 통해서 내 인생에도 가지고 있는 - 모양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여겨지는 - 슬픔과도 직면한다. 거대한 슬픔은 원망으로, 비판과 비난으로, 냉소로 이어져 관계의 풍부함을 깎아내려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만 그런 것일까? 아마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다 이런 순간을 경험하지 않을까 싶었다. 


 책의 서두에서 관계의 상처는 관계로 풀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일 것이다. 이 책이 취하고 있는 이야기 형태가 교훈적인 내용을 명시적 언어로 전달하는 것에 있지 않고 등장인물들간의 관계로서 보고 느끼게 하는 이유가..  책에 나오는 파파의 이야기는 그런면에서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고 본다. 


"나는 당신을 더 좋게 만들어줄 요술봉도 갖고 있지 않아요. 

삶은 약간의 시간과 많은 관계를 필요로 하죠”  - 파파  p.141


  관계라고 하니 아주 인상깊은 한 장면이 떠오른다. 맥은 오두막에 초대되어 파파와 사라유 그리고 예수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식사 중에 셋중 누군가가 요리가 담겨져 있는 그릇을 쳐서 깨뜨리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리고 나서의  그들의 태도가 인상깊다. 


갑자기 쨍그랑하는 소리에 그의 몽상도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중략) 셋은 숨이 멎을 만큼 웃어댔다. (중략) 그는 사발의 내용물이 바닥에 쏟아지고 계획했던 요리를 나눠먹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누구의 실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서로에 대해 사랑을 품고 그로 인해 완전함을 얻는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p.162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집안에서 가족 구성원 중에 누군가 실수를 했을 때 나는 어떻게 했는지. 그의 실수를 정확히 정의내리고 짚어주어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교훈을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가족을 대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걸 거기다 두니깐 그런거지!" "미리 준비했으면 그럴일 없었잖아" 어느 덧 나는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심판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동굴안에서 만난 파파의 지혜 소피아는 이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심판을 하려면 심판받는 사람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해야하죠.” -소피아 p.255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할 존재로서가 아니라 우월성을 가지고 규칙과 원칙을 들이대며 심판하려는 태도의 나를 자각하게 되었을 때 한없이 부끄러웠고 미안해졌다. 그래도 규칙은 필요한 것이잖은가. 질서를 유지하고 통제를 하기 위해서는 규칙들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 라고 주인공 맥 역시 의문을 던진다. 그 의문은 내가 품고 있었던 것인데 맥이 대신 질문한 것이다. 그러다 그 질문의 답에 나는 크게 한방을 얻어맞았다. 


“사실, 규칙보다 관계가 훨씬 복잡하긴 하죠. 규칙은 마음의 깊은 질문에는 절대 답하지 않고 당신은 사랑하지도 않으니까요” p.325


책임이니 기대니 하는 난해한 표현을 이용해서 규칙을 강화하는 것은 불확실성에서 확실성을 이끌어내려는 헛된 시도에 불과하죠. (중략) 규칙은 자유를 가져오기는 커녕 남을 비난하는 힘만 갖고 있어요.”  p.355


  생각해보니 규칙은 정말 초보적 수준이다. 제 4차산업혁명시대에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위기감이 있는데, 가장 먼저 없어지는 부분은 규칙을 통해 일을 해내는 분야가 될 것이다. 관계가 훨씬 복잡하다.  복잡하고 어렵지만 인간은 관계를 하는 존재로 있어야 한다. 이거 너무 당연한 사실을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니.


  관계의 삶을 중요한 가치로 둔다면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어떤 변화가 있을까?  여기서 정말 충격적인 표현이 나온다. '순종', 누군가 뛰어나고 위대한. 혹은 권력이 높은 사람에 대한 태도로서 여겨졌던 '순종'이 사랑의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진정한 관계는 비록 당신의 선택이 쓸모없고 건전하지 않더라도 순종하는 특징이 있어요. (중략) 순종은 권위에 관한 것도 복종도 아니에요. 순종은 사랑과 존중의 관계에 대한 거죠. 마찬가지로 우리는 당신에게도 순종해요” -예수  p.231


  '나는 순종하고 있는가' '순종하는가?' 하는 질문을 가슴으로 되뇌이게 했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가정에서 우리가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가정은 격렬한 스포츠 경기장이나 법정이 되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 


  여기까지가 내가 책을 읽으면서 받았던 대략적인 인상이다. 가능하면 종교적 내용을 제외하고 글을 쓰려고 했지만, 신앙인으로서 잘못된 형식의 집착, 도그마에 빠지고 있던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고,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관점으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는 말을 추가로 하고 싶다. 


 아바타의 주연으로 나온 '샘 워싱턴'이 맥의 역할을 맡아 영화화가 되었다고 한다. 언제쯤 나오는가 싶어 찾아보니 얼마전 4월 20일 개봉하여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책으로 읽은 것을 영화로 보았을 때 여러번 실망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영화가 그리 끌리진 않는다. 잠시 예고편으로 본 장면들은 내가 책을 읽으며 머리속으로 떠올렸던 분위기에 비해서는 뭔가 많이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면 책을 통해서 오두막을 경험해보기를 바란다. 오두막 주방에서 파파와 대수롭지 않게 주고받는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 그리고 맥 내면의 갈등과 오해, 고민들도 같이 -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삶에 무게가 많이 느껴지고, 신앙의 무미건조함에 영혼이 석고처럼 굳어짐을 느끼는 사람..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