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경영/독서 휴식

[김성민의 독서휴식] 고로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 진중권

[김성민의 독서휴식 -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내가 고양이와 놀 때에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인지

누가 알겠는가?

(몽테뉴)  p.269



 나의 집 거실에는 작은 어항이 하나 있다. 

추어탕을 만들어 먹으려 사다놓은 미꾸라지들을 아이들이 가지고 놀게 되면서 계기가 된게 

대단친 않지만 지금의 구피와 비파를 키우게 된 시작이었다.

그리고, 벌레 곤충을 좋아하는 둘째 덕분(?)에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도마뱀, 매미, 귀뚜라미 등도 거실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반려 동물을 키우는가가 다른 대상과의 관계를 규정짓는 것 같다.

아직 내가 깊이 있는 대화를 시도해보지 않아서일진 모르지만

우리집에 있는 구피나 곤충들을 대할 때 

그것들을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때가 되면 물을 갈아줘야 하고, 먹이를 줘야 하는 대상

내가 슈퍼갑이고 그들은 철저한 을일 뿐이다. 

(물론, 전적으로 인간인 내 중심적인 생각이다)


이 책의 소제목은 좀 특이하다.

'지혜로운 집사가 되기 위한 지침서'

교회에서 '집사님, 집사님' 하며 서로간에 호칭하던 그 집사인가?

나중에 알고보니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용어였다.

보통 반려동물로 개를 키우게 되면

키우는 사람은 개의 '주인' 혹은 '엄마' '아빠' 등으로 불린다.

반면에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철저히 독립적이고 도도하기 까지 한 고양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키운다라고 하지 않고

고양이를 모시고 산다는 스스로의 포지셔닝을 한다. 

즉, 고양이의 일상의 쾌적함을 유지시키는 옛날 귀족들 집안에서 시종역할을 하던 '집사'라는 것이다.


저자인 진중권씨는 TV나 언론에서 많이 나왔던 인물이지만

내가 실제로 유심히 이분의 말을 관심가져본적은 없었다.

언뜻 스쳐지나가는 인상으로 정치적인 부분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로 독설을 뿜는 사람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책도 너무 사변적이고 어려운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했었는데

실제 이 책의 내용과 구성은 유쾌하면서도 흥미로운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고양이를 소재로 책을 쓰면 밥주고 돌보는 방법외에 뭘 쓸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인류의 역사로 부터 시작해, 문학, 철학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아주 고대적 농경생활을 하고 곡식을 쌓아두게 되면서부터

곡식을 먹는 쥐를 처치해주는 너무나 고마운 야생동물 '고양이'

그 동물은 이집트에서는 바스테트라고 하는 신의 위치까지 차지하기도 한다.

반면에 역사속에서 중세 마녀사냥과 함께 악마의 동물로까지 그 존재가치가 바닥을 헤매던 시기도 있었다. 

신이었던 고양이에서 마녀의 동물로의 추락이라니...

그 후 근대로 들어서면서 서서히 지위를 회복하다가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는 내용은 흥미 그 자체였다.


(왼쪽부터, 일본의 마네키네코, 장화신은고양이, 이웃집토토로의 고양이버스 -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체셔고양이의 모습)


고대 설화나 문학에 있어서도 고양이는 우리 인간의 삶과 연계해서 많이 등장하고 있었다.

특히 인상깊었던 부분이 사키 라고 하는 작가의 작품속에 나오는 말하는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말하는 고양이를 귀족들이 모인 곳에 자랑스럽게 데려와 선보이는데, 이 고양이가 자신이 불륜을 저지르고, 다른 귀족을 비난하던 것을 공개적으로 말하는가 하면, 지붕위 어디든 다닐 수 있던 고양이가 다른 귀족들의 약점까지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에 귀족들이 경악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키는 인간사회의 허위, 위선, 부조리를 드러내기 위해 종종 동물이나 어린이의 눈을 빌린다. 여기에서는 그 역할을 고양이에게 맡긴 셈이다. p.226 


나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 않기 때문인지

고양이 집사로서의 지침서로서 보다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되는 인간사가 눈에 들어왔다. 

특히, 고양이가 일찍부터 인간사에 들어왔지만 

그 야생성을 모두 버리지 않고 다른 길들여진 가축과는 다른 행동들을 하는 것을 보며 

차별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부분에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기대하는 방식대로 반응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친숙하지 않은 대상에 대해 마녀사냥과 같은 굴레를 씌우진 않은가 하는 문제 말이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시선이 그렇고

여러가지 모양으로 소수자의 문제를 대할 때도 그렇다. 

저자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는 고양이에서만 끝나지 않고

인간들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듯 하였다. 


인간이 이성을 가졌다는 사실에서 논리적으로 동물에 대한 지배권이 나오지는 않는다. 나아가 인간이 ‘이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고작 동물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논리로 써먹는 게 과연 얼마나 이성적인 짓일까? p.286


개를 키우는 사람과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개는 반려동물중에서도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높기로 유명하다. 

반면에 고양이는 왠만해서는 길들여지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둘다 기르고 있지 않지만 한번 상상해보았다.

개를 기른다면 개라고 하는 대상을 통해 누군가 지배하는 자가 있다면

다른 이는 그에게 따라야 한다라는 사실을 암암리에 인정하며 대하게 될 것이다.

나의 말을 잘듣는 개가 이뻐보이고, 그렇지 않은 개는 야단을 칠 수도 있다고 믿게 될 것 같다. 

즉, 개 라고 하는 동물을 키우는 양태속에서 내가 세상과 타자를 대하는 태도가 익숙해지거나 심지어 길들여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말이다.

반면에, 고양이는 어떤가. 

좀체 길들여지지 않고, 그저 고양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나는 그에게 쓸모있는 존재가 되는 어떤 선에서 그와 동거하는 삶이 될 것 같았다. 

즉, 타자는 그 자체로 주체로서 존재하고, 나도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관심은 가지고 있지만 간섭하지 않아야만 하는 관계

인간 계급사회에서 좀 모나고 아웃사이더와 같은 태도의 그 고양이를 인정하는 태도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아웃사이더에 대한 시선이 어떠해야하는지를 알려줄것만 같았다. 


물론 키워보지 않고, 글로만 배운거라 실제는 어떨까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에 내가 반려동물을 키우게 된다면 

고양이를 키워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책 중간에 나와 있는 자신의 고양이와 함께 찍은 유명인들의 사진에 영향을 받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사르트르, 푸코, 헤밍웨이, 오드리 햅번, 마크 트웨인, 버나드 쇼 등이 보인다.)


자신이 고양이의 집사라면 공감할 수 있는 책이 될 것이고,

집사가 아니라면 앞으로 집사의 꿈을 꾸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무것도 아니라 하더라도 인간 삶의 역사와 문학, 철학에 대해 담고 있는 이 책은 

가벼운 인문학 책으로도 손색이 없는 독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