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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독서 휴식

[김성민의 독서휴식] 빛의 제국 - 김영하

[김성민의 독서휴식 - 빛의제국]


"역사상 유명한 스파이는 모두 실패한 스파이다. 

최고의 스파이들은 절대 발각되지 않고, 그대로 조용히 은퇴해 노후를 즐기다 죽는다." p.345


 자신의 인생 절반을 고정간첩으로 활동한 한 남자의 숨막힌 하루. 아침 7시에 이야기는 시작해서 다음날 7시에 새롭게 하루를 맞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난다. 


주인공 기영은 스무살이 갓지난 젊은 나이에 남한 고정간첩으로 내려와 대학도 다니고 결혼도 하여 이제는 평범한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남자이다. 아침에 깨어날 때 머리를 찌르는 듯한 두통이 그날이 다른 날과는 다를 것임을 암시하는 신호였을까? 시리얼에 우유를 따라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허둥지둥 옷을 챙겨입고 학교와 직장으로 출근을 하는 여느 집과 다름없는 평범한 가정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출근을 해서 받게 된 대출광고로 위장한 메일한통을 받고 나서 그날은 더이상 어제와 같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기영 혼자만 달랐던 것은 아니다. 아내 마리와 딸 현미의 하루도 특별하긴 마찬가지였다. 이 가족은 과연 앞으로 정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김영하 작가는 주변상황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매우 탁월하다.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VR(가상현실)기기를 착용한 상태에서 주인공과 그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래서 더욱 몰입이 되는 것 같다. 그는 북에서 내려온 고정간첩의 하루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지만 내게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삶의 모습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영은 북에서 남한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지식적으로 익히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수 있게 훈련받고 내려와 완전한 남한사람으로 위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늘 이방인과 같은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 기영의 생각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록 이문세 2집의 충격을 잊지 못하고 선동열의 해태가 삼성을 꺾고 우승하던 86년과 87년의 한국시리즈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정신적 시민권이 될 수는 없었다." p.102


여기서 기영이 '정신적 시민권' 이라는 것을 말할 때 문득 내가 지금 '나' 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인정하는데에 있어 '기억' '경험' 이라는것이 얼마나 중요하게 차지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기영은 남한에 내려와서의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있고, 남한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역사적 맥락을 지식으로 습득하고, 시험도 보고 그랬다. 그러나 그시절 누구나 가지고 있었던 킹콩, 마징가제트, 이소령과 성룡, 도널드덕과 딱따구리에 대한 문화적 경험이 기영에게는 없었다. 세상 속에서 나를 자각하는 힘은 경험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이보그 로봇이나 복제인간을 만들어 놓고 지식을 주입했다고 해서 과연 그 존재가 바로 내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을 통해 얻은 참된 나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영은 남한 사회를 살아가며 3자의 입장에서 이 사회를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자에게는 이미 무뎌진 어떤 현상들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보고 비판적이기 까지 하다. 그래서 기영의 눈을 통해 바라본 사회, 정치, 종교등에 대한 이야기는 예리하기까지 하다. 가수와 배우에게 대마초를 판매했던 기영 아내회사의 지점장은 기독교에 귀의하면서 마약을 끊었다고 한다. 열심히 수요일과 주일 교회를 나가 방언의 몰아경을 경험한다는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가 기대는 것이 신인지 황홀경인지는 분명치 않다.  p.33


내부자가 타성에 젖어 보지 못하는 것을 고정간첩 기영의 눈을 통해 짚어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기영의 뒤를 쫓는 국정원 요원들과 외도를 벌이는 아내, 그리고 혼자 남자친구의 생일날 집에 따라가는 딸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폭로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북한 지하벙커에서 남한사회에 대해 열심히 훈련하고 배워서 남한에 투입되었지만 배운것과 실제의 다름을 인식하는 기영에게서는 대학을 나와 취업을 해 회사생활에 적응해가는 청년의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었다. 맞벌이 부부의 늦은 퇴근으로 혼자 집에 들어와야 하는 딸의 모습도 이사회가 만들어놓은 가정이라는 모습의 전형성을 드러내는 듯하였다.  이렇게 읽다보면 더 이상 첩보 소설이 아닌 우리의 일상을 바라보고 생각케 되는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소설은 처음 읽지만 사실적 묘사에 푹 빠져들며 읽었던 것 같다. 한가지 도전을 받는 것은 작가라는 사람은 어떠한 노력을 했기에 이토록 실제 경험했던 것과 같이 이야기를 끌어내는지이다. 미술가가 화폭에다가 아주 섬세하게 명화를 남기듯이 빈 백지위에 자신의 머리속에 있는 영화와 같은 그림을 언어라는 투박한 도구를 이용해 섬세하게 독자에게 전달해주고 있었다. 


아직 이 책의 제목인 '빛의 제국' 이라는 의미를 잘 이해하진 못했지만, 왠지 우리가 마그리트의 그림과 같이 밝음 속에 어두움이 깃들고 그 어둠속에 한줄기 불빛이 있는 그런 사회속의 한장면을 말하고 있지 않은 가 생각들었다.  경제경영서와는 또 다른 재미가 소설에는 있기에 한번 천천히 소설에도 손을 대어 볼까 한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