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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독서 휴식

걸리버 여행기 - 조나단 스위프트

[김성민의 독서휴식 - 걸리버 여행기]


왜 이 책을 신성모독적이라 평가했는가?

왜 이 책을 금서로 취급하고 저자에게 야유를 퍼부었는가?

왜 이 책을 마음대로 삭제하여 아동용 도서로 왜곡했는가?

왜 이 책의 4부를 누구도 읽어선 안되는 딱지를 붙였는가?

<책의 표지 中>



  책 표지에 적혀 있는 문구들은 출판사 마케팅의 목적으로 자극적인 표현인 경우가 많고 심하면 책 내용과 다르거나 상반된 경우도 있다. 그래서 독서활동 초기에는 책 표지의 글만 보고 혹해서 책을 구입했다가 실망을 한적도 많았다.  그러나 걸리버여행기 무삭제 완역본이라고 하는 이 책의 표지 문구는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어린시절 재밌게만 읽었던 동화가 이처럼 파격적인 내용이었다니 책을 끝까지 읽어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걸리버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소인국과 거인국에 방문(?)한다. 여기까지가 동화속 걸리버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걸리버는 거기서 여행을 끝마치지 않고 두군데의 나라를 더 방문하게 되는데 이것은 철저히 감춰진 이야기었다. 만약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 의해 제대로 읽혀졌더라면 유럽의 역사와 지금의 현대사회가 크게 바뀌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기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리뷰해보도록 하겠다. 


 걸리버는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총 네 군데의 여정을 기록하고 있는데 잠시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1부는 릴리퍼트라는 작은 사람들의 나라 이야기, 2부는 블롭딩낵 이라고 하는 큰 사람들의 나라 이야기, 3부는 라퓨타 라고 하는 하늘을 나는 나라와 그 아래에 있는 몇개 나라 이야기, 4부는 휴이넘 이라고 하는 말들의 나라 이야기가 그 구성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라고 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이 만든 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 가 바로 걸리버 여행기 3부에 나오는 그 공간을 모티브로 한 것이었다. 


  이 책은 그 당시 유럽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하고 있다. 하지만 300년전의 유럽에만 해당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책을 읽어내려가며 오늘을 사는 우리들, 대한민국이라는 이땅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그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깨닫게 된다. 자기보다 낮은 위치라고 생각이 되면 서슴없이 물컵을 던지는 갑질문화, 국가를 위해 중요한 정책들을 논의해야 할 상황에 개점휴업을 한 국회, 정부 부처나 주요기관의 낙하산 인사, 신뢰가 가지 않는 검찰과 경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을 교묘히 이용하는 기득권, 부패한 종교와 종교지도자,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경제적 양극화 문제.. 이 모두가 걸리버 여행기에서 다루어지고 있었다.  

 이 내용들은 책 전반에 걸쳐서 이야기 되고 있지만 뒤로 갈수록 보다 노골적이 되어간다. 1부 소인국에 간 걸리버는 사실 갑의 위치에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2부 거인국에서부터는 입장이 뒤바뀌어 거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재롱을 부려야 하는 철저히 을 로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거인국 국왕과의 대화의 자리를 갖게 되는데그 부분부터 사회 비판적 시각이 은근히 들어나기 시작한다고 보였다. 다음은 걸리버가 자신의 나라에 대해 좋은점만 말하려고 실드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통찰력 있는 거인국 국왕이 정리한 말이다. 


그대의 말을 들으면서 알게 된 것인데, 어떤 지위에 대하여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그 지위에 등용되고 있다는 것은 전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덕망에 의해 귀족이 되거나, 학식에 의해 사제들이 승진하는 것 같지도 않으며, 용기있는 행동 때문에 군인들이 승진을 하거나, 정직하기 때문에 재판관들이 영달을 하고, 국가를 사랑한다고 국회의원에 선출되거나, 지혜가 있다고 해서 국왕의 고문들이 총애를 받게 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p.163


이런 이야기는 책의 후반부로 갈 수록 더욱 격해지다가 급기야는 걸리버가 말의 나라인 휴이넘을 3년간 지내고 와서는 야후(인간)의 혐오스러움에 치를 떠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걸리버는 자신의 아내와 식사조차도 함께 하지 않고 마구간에 말들과 대화를 나누는 여생을 보내며 끝을 맺고 있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3부였다. 걸리버는 라퓨타라고 하는 하늘을 나는 나라를 방문하고 나서 그 아래에 있는 발니바르비, 럭낵, 클럽덥드립, 일본 등의 나라를 차례로 거친다. 마지막에 일본이 있는 것은 아마도 네덜란드에 의해 유럽에 알려져 있던 일본이라는 나라와 연결함으로써 나머지 나라들도 실제할 것이라는 분위기를 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3부에 나오는 다음 내용은 무척이나 엽기적인데, 현재의 우리 정치판을 생각하며 읽다보면 속시원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번 같이 읽어보자.


정당들이 서로 격렬한 싸움을 할 때, 그것을 멈추기 위하여 그는 아주 멋진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각 정당에서 서로 백 명의 지도자들을 뽑는다. 그리고 머리의 크기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짝을 지어 놓는다. 

그런 다음, 훌륭한 외과의사 두 사람에게 지도자들의 머리를 톱으로 자르도록 시킨다.

뇌가 거의 절반으로 나누어지도록 말이다. 

이렇게 해서 잘라낸 머리를 반대편 정당의 사람에게 붙인다. 

그 작업은 매우 정확성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 교수는 재치있게 수술을 한다면, 정당간의 쌍무은 틀림없이 치료될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절반으로 나누어진 두 개의 뇌가 하나의 두개골 속에서 논쟁을 하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p.236


 그리고, 그 당시에 이 책이 금서로 지정된데에는 권력자들에 대한 서슴없는 비판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박정희는 다카기 마사오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하였으며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전적이 있다는 글을 1970년대 누군가 책으로 내었다면 그 저자와 그의 책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보길 바란다.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조나단 스위프트도 분명 그런 처지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3부 라퓨타의 아랫동네를 여행하던 중 클럽덥드립이라는 나라에 잠시 들르게 된다. 그곳 총독은 죽은 사람을 24시간 동안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걸리버는 그의 도움으로 역사상 위대했던 인물들을 불러내어 직접 대화도 하고 역사적 순간을 경험도 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알프스를 넘어가는 한니발을 보았다. 그는 자기의 진영에 식초가 한 방울도 없다고 말했다.

그 다음에는 이제 막 전투를 시작하려는 시저와 폼페이를 보았다. 그리고 시저가 승리하는 최후의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로마의 원로원을 커다란 방에 나타나게 하고, 오늘날의 국회를 다른 방에 나타나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들을 서로 비교해 보니, 로마의 원로원은 영웅과 반신반인의 모임체처럼 보였으며, 오늘날의 국회는 봇짐장수, 소매치기, 강도, 깡패 들의 집단처럼 보였다.   p.244

 

여기서 나오는 국회는 걸리버가 살았던 시대, 그리고 조나단 스위프트가 이 책을 쓰는 시점인 1700년대의 영국 국회를 말할 것이다. 그러나 300년이 지났어도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을 받는 것은 무엇일까? 


걸리버를 통해 현대 과학의 불완전성에 대한 이야기도 서슴치 않고 하고 있다. 


나는 데카르트와 가센디의 도움을 받아서, 그들의 체계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설명하였다. 그 위대한 철학자는 자연과학에 있어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였다. (중략) 그는 현대의 학자들이 열광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만류인력도 자신과 똑같은 운명, 즉 반박당할 운명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자연을 이해하는 새로운 체계는 한 순간의 유행에 지나지 않으며, 시대마다 변하는 것이다. 새로운 체계를 수학적 원리로 증명하려 드는 사람도 결국 짧은 기간 동안만 유행의 정상에 있을 뿐이며, 일단 그것에 대한 증명이 이루어지면 그 유행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p.248

  

이미 상대성 이론에 의해 만유인력의 법칙이 우주적 스케일에서는 맞지 않음을 우리는 현대과학을 통해 알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가장 크게 지지를 받았던 만유인력을 이렇게 내다보고 비판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나라의 최고 통치자에 대한 풍자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총독에게 열 대여섯 명의 국왕들을 여덟이나 아홉 세대 이전의 조상들과 함께 불러주도록 부탁하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주 비통한 것이었으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왕관을 쓰고 있는 행렬 대신에 깡패 두 명, 말숙한 아첨꾼 세 명, 성직자 한 명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가문에서는 이발사 한 명, 수도원장 한 명 그리고 두 명의 추기경이 있었다.  p.249 


너무 심한건 아닌가 할 정도의 표현이었다. 조상이 어떠했음을 가지고 현재의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은 아무래도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 당시 역사적 맥락속에서 갖게 된 저자의 정치권에 대한 극한 혐오가 분출된게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이런 풍자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때 우리나라에도 코미디 프로에서 풍자코너가 있었다가 지난 정권을 지나면서 무참히 사라져 버리는 걸 지켜보았다. 풍자는 그 자체로 진실을 보여주는 통로가 된다.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 '왕의 남자'에서 주인공들이 탈을 쓰고 하는 풍자극은 영화속에서 일반 백성들에게 그나라 정치가 가는 방향을 고발하고, 알도록 하게 함으로써 여론 조성의 힘을 가지는 걸 본다. 

 비단 정보 공유의 차원을 넘어 지도자들 스스로 깨닫고 각성할 수 있도록 하는 지혜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로저 본 외흐가 쓴 'Creative Thinking' 에는 유럽의 황실에 있던 어릿광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릿광대는 바보가 아니었으며 높은 지능과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만약 왕이 주변 아첨꾼들의 감언이설에 끌려다니게 될 때 어릿광대는 거리낌없는 풍자와 기발한 의견을 들려주어 왕이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풍자로 가득찬 '걸리버 여행기'. 아마 그 당시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 읽는다면 더욱 새로운 것을 책속에서 발견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만약 나처럼 그다지 역사에 밝지 못하더라도 지금의 현실에 대입하여 우리가 잘못 나아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반성적 독서를 할 수 있는 것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득이 아닐까 싶다.  단지 동화가 아닌 진정한 고전으로서 인문 독서를 해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무삭제 완역본 걸리버 여행기를 추천한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