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의 독서휴식 - 싯다르타]
난 이렇게 믿기 시작하였네.
알려고 하는 의지와 배움보다
더 사악한 앎의 적은 없다고 말이야 p.35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참으로 안다는 것은 다르다. 수많은 육아서를 탐독해서 아이키우는 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러나 그가 진정 자신의 아이를 낳아 키워보지 않는 한 참으로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깨달음의 여정에 오른 이 책의 주인공 싯다르타도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
싯다르타를 읽기 전에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이 석가모니 고타마 싯다르타인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막연히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이야기를 소설적 요소를 가미해 만든 내용인줄 알았더니 동시대의 다른 인물이 주인공이었다. 이 주인공은 처음에 십대 청소년 시기로 부터 시작해서 점차 나이가 들다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머리가 백발이 된 노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즉 이 소설은 성장소설인 것이다. 깨달음을 향한 성장이자 인생을 알아가고 세계를 인식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싯다르타는 책의 초반 젊은 시절부터 이미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 전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중략) 난 이렇게 믿기 시작하였네. 알려고 하는 의지와 배움보다 더 사악한 앎의 적은 없다고 말이야 p.35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친구인 고빈다에게 전달하는 인생을 살며 자신이 깨달은 것 한가지도 같은 말임을 알 수 있다.
내가 얻은 생각들 중의 하나는 바로, 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네. 지혜란 아무리 현인이 전달하더라도 일단 전달되면 언제나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야. p.206
하지만, 이 책을 읽어가다보면 내용은 같을지라도 10대 철부지 청소년 시절에 하는 말과 60대가 넘어 노년에 하는 말은 그 무게가 다르게 다가온다. 그는 성장과정에서 대기업에 들어가 높은 연봉도 받아보고, 빼어난 미모의 여인과 깊은 사랑도 나눠보고, 도박과 술에 빠져 살아가며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급기야 자살을 기도하려고까지 하는데 그러고 나니 이제 그가 지니고 있던 지식이 참 지식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부와 권력과 안락함을 내려놓고 떠나온 어느날 싯다르타 자신의 입을 통해 고백하게 된다.
속세의 쾌락과 부는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어린 시절에 배웠었지. 그 사실을 안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제야 비로소 내가 그것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군. 이제 나는 그 사실을 제대로 안 거야. 그 사실을 단지 기억력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나의 두 눈으로도, 나의 가슴으로도, 나의 위(胃)로도 알게 되었어. 그것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로군 p.144
그런데, 소설을 읽어가며 참 의아한게 하나 있었다. 싯다르타의 감정에서 슬픔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기쁨, 환희, 고뇌, 괴로움 등은 보였지만 슬픔의 감정일 비쳐보이는 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가 드디어 슬픔을 맛보고 그를 통해 깨달음으로 다가가게 되는 각성의 시기가 오는데 바로 아들을 갖게 되었을 때이다.
싯다르타는 자기 아들이 옴으로써 자기에게 행복과 평화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고통과 근심 걱정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소년을 사랑하였으며, 그 소년이 없이 평화와 행복을 누리느니 차라리 그 소년 때문에 사랑의 고통을 겪고 사랑에서 비롯된 근심 걱정을 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였다. p.172
자신의 아들은 어느날 어린시절 자신의 모습과도 같이 아버지인 자신을 떠나 집을 나가버린다. 그리고 싯다르타는 아들이 갔을 곳을 찾아헤매며 그 옛날 자신의 여인 카밀라가 거하던 곳까지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깊은 슬픔의 감정을 쏟아낸다. 이제서야 그가 혼자만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관계성 속에서 깊이 맺어져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고 보았다. 그전에도 사색과 고행, 단식을 하며 그것을 자신의 무기임을 자랑하기 까지 했었지만 혼자만의 도닦기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앎은 관계에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성장소설에는 몇가지 공식이 있는데 주인공이 시련을 겪고 그 시련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영웅으로 성장해가는데, 이때 꼭 주변에 주인공을 도와주는 멘토 역할의 존재가 등장한다. 싯타르타에서는 나루터에서 강을 건네주는 바주데바라는 뱃사공이 그 역할을 해준다. 비록 매일 같이 같은 장소에서 강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또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고가는 사람들을 태워주는 일만 평생 해오던 뱃사공을 향해 싯다르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멋진 인생을 택하셨습니다.” 승객인 싯다르타가 말하였다.
“매일매일 이 강가에서 생활한다는 것, 그리고 배를 타고 그 강 위를 다닌다는 것은 멋진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뱃사공은 미소를 지으면서 노를 저였다. “그건 멋진 일이지요, 나으리, 나으리가 말씀하신 그대롭니다. 하지만 모든생활, 모든 일이라는 게 다 제 나름대로 멋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p.150
몇마디 대화속에 뱃사공 바주데바가 보통의 인물이 아님을 느낀 싯다르타는 그에게 배우겠노라며 그와 함께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석가모니 고타마의 제자로 들어가기도 거부했던 그가 말이다. 하지만 바주데바는 자신은 가르쳐줄게 없다고, 단지 강이 당신에게 가르쳐줄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바주데바를 통해 나오는 '강' 이라는 것의 의미를 이 대목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 수천의 사람들을 건네다주었지요. 그들에게는 나의 강이 단지 여행하는 데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들이 여행하는 목적은 가지가지였지요. 돈과 사업을 위해 여행하는 사람도 있었고, 혼인시에 가거나 순례를 떠나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들에게는 이 강이 방해가 되었지요. 뱃사공은 그들이 장애물을 신속하게 건널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들 수천 명 가운데 몇 사람에게만은, 아주 몇 안 되는 너더댓 명의 사람에게만은, 이 강이 장애물 노릇 하는 것을 그만두었던 셈인데, 그 까닭은 그들이 이 강의 소리를 들었으며, 그들이 이 강물 소리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에요. p.156
나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해 보았다. 강은 인생을 살아가다 겪게 되는 갖가지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은 내가 희망하는 인생의 목적을 이루는데 방해로만 여겨지기 쉬운 그런 사건들, 이를테면 대학 입시에 떨어졌거나 일자리를 잃었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되었거나 가까운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거나 우리는 이런 사건들이 늘 있지 않은가. 이것만 없으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텐데 하는 그런 사건들이 강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조금씩 나이를 먹고 경험을 쌓다 보면 알게 되는 것 하나는 나를 힘들게 했던 사건들이 어쩌면 나를 더 성장시키는, 깨달음을 주는 스승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바주데바는 그래서 강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한것이라 생각이 든다. 아들이 집을 나갔을 때 그리고 그를 찾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 싯다르타는 강의 소리를 듣게 되고 그 눈빛은 변해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전수해줄게 없다고 판단한 바주데바는 홀연히 숲속으로 살아지는 장면이 매우 묘한 느낌을 준다.
싯다르타는 영적 깨달음을 향해가는 구도자일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혼자 생각해보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가 새로운 학문과 이론들을 접하면서 이 세상이 그 이론들로 만들어진 렌즈를 통해 모두다 해석이 되는 것 같은 착각을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이상을 쫓으며 살고 혼자만의 깊은 영적 세계만을 탐식하다가 어느덧 사회인으로서 안정적인 직장과 가정을 갖고 그 순수했던 이상은 저 멀리 던져놓은 채 현실과 돈벌이만 급급한 시기를 거치기도 하였다. 어쩌면 지금이 이 단계에 와 있지 않을까 생각이든다. 그러나 조금씩 알게되는 것이 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소중하고 하루하루의 일상이 가장 의미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싯다르타는 싯다르타의 길을 갔다면 김성민은 김성민으로서의 인생길을 살아가는게 아닐까.. 오늘도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처럼 내가 맡은 일들에 충실한 하루를 보내야겠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
'▶독서경영 > 독서 휴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성민의 독서휴식]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 류시화 (0) | 2019.06.11 |
---|---|
[김성민의 독서휴식] 1984 - 조지오웰 (0) | 2019.03.25 |
걸리버 여행기 - 조나단 스위프트 (0) | 2018.05.12 |
[김성민의 독서휴식] 어린왕자 - 생텍쥐페리 (0) | 2018.03.28 |
[김성민의 독서휴식] 이반일리치의 죽음 - 톨스토이 (0) | 2018.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