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의 독서학습 - 한홍구의 '특강']
해방 이후 친일 경찰들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미국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미국이 없었으면 다 해체되었을 겁니다. p.259
두 주전쯤 취미생활로 하고 있는 3D 프린팅을 이용해 Boycott Japan Tag 을 만들었다. 최근 이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대표하는 문양이다. (https://youtu.be/-DCsHr-at-c) 유튜브에 제작과정과 출력 영상을 올리자 다양한 반응이 올라왔는데, 그중 내 마음을 건드리는 표현들이 몇개가 있었다. 글쓴이의 입장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말을 가져와 보았다.
안타깝네요.. 현명하신 줄 알았는데 현 정부의 반일 프레임이 동참하시다니
불매운동에 동참하면 친 정부라는 것이다. 그렇담 이분의 논리로라면 자신은 불매운동에 반대하니 반정부이며 친일이라는 것인가? 물론 입장의 차이는 이해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면 그것이 그대로 현명치 못한 것인가? 입장의 차이가 상대의 인격과 가치를 폄하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당신이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분이 아니길 바란다는 말로 짧게 댓글을 남겼다. 그러자 곧바로 책한권을 추천하면서 지금의 반일 정서는 잘못된 민족의식이라고 조언을 하였다.
교보문고 정치파트의 베스트셀러라며 소개한 그 책을 찾아 목차를 보았고 그 책의 일부를 올려놓은 글을 읽어보았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교수,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여러명의 저자에 의해 쓰여진 이 책에는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등은 잘못된 피해망상이라는 논조를 가지고 있었다. 위안부는 창녀다 라는 표현을 아주 그럴듯한 통계자료등을 제시하면서 논리를 펴고 있었다. 헛웃음이 났다. 논리의 전개를 보면 자신의 입장을 정해두고 통계수치와 실제 사이에 있는 공백을 임의로 채우는 방식이었다. 여러 가능성이 있는 수치에 대해서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방식으로만 철저히 이용하는 것에 혀를 내두를만 하였다.
그동안 역사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이런 입장이 뉴라이트로 부터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지고 일부 극우 진영에서 확대 재생산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들어 알게 되었다. 이번에 읽은 한홍구 교수의 '특강' 이라는 이 책은 현재 우리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이 왜 이렇게 펼쳐지고 있는지를 해방이후의 근현대사를 기반으로 쉽게 이해되도록 쓰여 있다.
'뉴라이트와 건국절 논란', '어설픈 간첩, 간첩 조작사건', '토건 국가가 된 이유', '제헌 헌법과 민영화', '일본 순사에서 시작한 경찰폭력' 등 각장의 제목만 보더라도 대략 무엇에 대한 내용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한홍구 교수가 2009년 이명박 정부의 시기에 10년 넘게 역사가 후퇴하는 듯한 상황을 보며 현대사를 정리해 열었던 강연의 내용을 묶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객관적 자료와 정보를 위주로 담백하게 썼던 지난 책 '다큐멘터리 일제시대'와는 달리 강연에서 어울릴만한 다소 감정적이고 그 당시 정부나 극우 혹은 친일파 진영을 비꼬는 듯한 표현도 느낄 수 있었다. 좀더 중립적 입장에서 글이 쓰였다면 더 좋았겠다 싶었지만 어차피 강연으로 나온 책이기에 그 부분은 이해하고 넘어가고자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매우 흥미로웠던 내용 세가지만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첫째, 제헌헌법에 대한 것이었다. 한홍구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해방이후 남한은 멸균실에 가까울 정도로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싹 제거가 된 상태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제헌국회를 만들기 위한 1948년의 5・10선거를 좌파는 보이콧하여 참여하지 않았고, 중간파 역시 남북협상 실패로 5・10선거에 거의 가담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대로 우파인 사람들이 모여 만든 것이 제헌헌법이었던 것이다.
그 우파가 만든 제헌헌법에 중요 산업 국유화, 천연자원 국유화, 사회주의에 가까운 통제경제, 균등생활 같은 이념이 깔려 있는 거예요. p.186
현재기준으로 보면 좌익 빨갱이했다고 논란이 일듯한 내용이 들어있는 것이다. 정치적 프레임으로 누군가를 좌빨로 규정짓는 현실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초기에 민족주의자들과 우익정치인들은 어떤 입장이었는지를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었습니다.
둘째,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었다고 말하지만 이 부분에서 저자는 매우 조심스러운 언급을 한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곤란한 부분이 있어요. 대한민국 헌법에는 임시정부를 계승했다고, 3・1운동을 계승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 계승한 기구는 일제강점기의 총독부 기구입니다. 미군정이 총독부 관료기구를 실질적으로 접수했고, 다시 이승만 정부가 그 관료기구를 이양 받았으니 결국 이승만 정부에는 총독부 관료들이 득실거린 겁니다. p.265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어벤져스 영화에서 쉴드 조직이 알고보니 하이드라였더라 라는 반전을 보는 듯 했다. 실제로 해방직후 김구를 비롯해 임시정부의 사람들은 인천공항에 비행기로 내린 후 입국 허가도 받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야했다고 한다.
셋째, 그런 상황이다보니 해방이 되어 친일을 했던 자신들의 목이 두개라도 모자라겠다고 느꼈을 친일부역자들. 그들은 죽을 줄 알았던 상황에서 갑자기 기사회생한다.
도서관 중에는 일본인 사서가 물러나자 사환이던 사람이 관장으로 승진한 데도 많아요. 검사 서기 하던 사람들은 검사가 되었습니다. 경찰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다 승진한 겁니다. 일본 놈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나 친일파 입장에서는 해방이 진짜좋지요. (중략) 지금 다들 미국이라면 껌뻑 죽는 거 우리가 이해해줘야 해요. 안 그렇겠습니까? p.266
학창시절부터 역사는 참 어렵다고 생각해왔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없다. 올바른 역사관이란 무엇인지 지금도 가늠하기가 어렵다. 이전 정부의 대통령도 학생들에게 자긍심넘치는 역사관을 심어주겠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추친하고 그랬지 않는가.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는데,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역사 앞에 입장이 다를 수 있는 것 같다. 누군가 자신의 할아버지 부모님이 친일파였다면 지금의 이런 책은 무척 부담스러운 책임에 틀림없다. 어떤 위치에 상관없이 투명하게 역사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책임있게 사는 삶. 그게 가능할까? 이런 질문들을 의혹이 없이 살아간다는 나이를 훌쩍 넘어서야 생각하게 되다니 솔직한 마음에 나이를 헛 먹은건 맞는 것 같다. 그런면에서 오늘도 겸허히 배우는 삶을 살아야겠다. 오늘 리뷰는 이정도로 마치겠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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