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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독서 휴식

[김성민의 독서휴식] 숨 EXHALATION - 테드 창

[김성민의 독서휴식 - 숨]

“그 무엇도 과거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회개가 있고, 속죄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단지 그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中 p.58>


  "제가 요즘 테드 창의 숨 이라는 단편집을 읽고 있는데 어떤건 SF같지 않은 것도 있던데 어떻게 보시나요?"  SF소설 평론가와의 만남 때 내가 했던 질문이다. 그러자 "테드 창은 2000년대를 대표하는 SF 작가입니다. 과학분야 노벨상에 해당하는 휴고상을 네번이나 수상한 데다 내놓는 작품마다 SF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SF 영화는 좋아하지만 사실 소설로 읽은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테드 창의 첫 단편집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이 사람은 천재다. 이 책 첫 단편인 '상인과 연금술사'를 보면 이슬람의 느낌이 나고, 가상현실이란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그가 타임머신으로 미래를 가서 보고 쓴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처음에는 좀 뜬금없기도 하고 이 등장인물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살짝 헷갈리는 부분도 있지만 그가 펼쳐놓은 세계관에 한번 발을 들여놓게 되면 짜임새 있는 구조와 철학적 질문들에 파묻혀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특히 이 책의 제목이 된 두번째 단편 '숨'은 나를 전율케 한다. 이야기는 사람들이 충전소에서 만나 허파를 열고 새로운 허파로 교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하며 당황하고 있을때, 작가는 점차 그가 펼쳐놓은 세상이 실제이고 책을 읽고 있는 나는 오히려 가상이라고 착각할 만큼 몰입감있게 글을 전개해나간다. 글의 화자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이상현상들에 의문을 갖고 자기자신의 뇌를 열어보는 실험을 강행하게 되는데, 마침내 자신의 뇌를 다 열어보았을때 기존 이론과는 전혀 다름을 알게 된다. 그 뇌의 작동방식을 통해 세상의 작동방식과 우주의 원리를 깨우치며, 흔히 말하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열역학2법칙)을 기반으로 이 우주가 흘러가는 방향성을 알게 된다는 설정이다.  이 책에는 아르곤 공기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에너지 근원이 된다. 그런데, 이를 현실세계의 에너지로 치환해 본다면 어떨까?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한정된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고, 이 에너지는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다. 현재 신재생에너지로 바람과 태양, 지열 등을 사용하지만 이것도 결국 에너지 평형상태에 놓이게 되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않게 될 것이고, 태양으로 부터 에너지를 얻는 모든 식물들, 그들을 먹고 사는 모든 동물과 인간은 그 운명을 다할 지도 모른다.  "숨"에 나오는 허파통을 매일 충전소에서 교체해야 살아가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토록 기괴하게 느껴졌으나 책의 마지막에 도달해서는 그게 나이고 지금의 세상임을 알게 된다. 


여기 나오는 단편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에서는 자녀 교육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녀를 키우면서 늘 고민하는 것 같다. 여러 갈등의 상황에서 어떻게 대하는 것이 자녀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그런 고민 말이다.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가 응석받이가 되지는 않을까 하기도 하고, 안된다고 말하는 것을 통해 세상의 어둡고 불가능한 부분을 너무 일찍 알아버리는 의기소침한 인간으로 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잭스라는 가상현실속의 디지언트 AI 객체를 성장시키는 애나도 그런 고민들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이런 고백을 한다. 


잭스를 키우면서 애나가 얻은 교훈이 있다면, 지름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세계에서 이십 년 동안 살며 습득한 상식을 가르치고 싶다면, 그 일에 이십 년을 들여야 한다. 이에 상응하는 발견적 논리를 그보다 더 짧은 시간 내에 조합할 방도는 없다. 경험은 알고리즘적으로 압축할 수 없다. p.235


가상현실과 AI 에 대한 이야기인것 같지만 자녀교육에 있어 끊임없이 고민하는 부모의 심정을 담아 소설을 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단편인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에서는 상담가인 데이나를 통해 상담자의 질문법과 태도를 배우게 된다. 내담자에게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하고, 설령 어떤 내용을 전달하고자 할 때에도 강압적이지 않게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시하는 데이나를 그려낸 테드 창은 상담 관련 교육을 받은 사람인 듯 하다. 그런 데이나의 입을 통해 나온 이야기 중 하나를 가져와 보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세상을 이해하는 게 더 쉬워지니까. 그러다 보니, 가끔은 자기 자신을 비난하기도 해요. 비난받을 누군가가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모든 것이 우리의 통제하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p.436


 그녀는 상담자로서 정답과도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자신의 실수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는 다중우주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의 인터뷰를 통해 스스로의 말을 증명해내게 된다. 



그의 소설은 늘 인간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인인 나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부분도 있다. 결정론적 세상을 그린다거나,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반으로 쓴 내용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세상의 진실을 탐구해가며 생각해 보기에 더 없이 좋은 작가적 상상력을 펼쳐놓은 책이기에 추천하는 바이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