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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독서경영]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 채사장

[김성민의 독서경영 - 지대넓얕 제로]


"진리에 도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용기다. 여기서 말하는 용기란 내가 쥐고 있던 세계관을 내려놓을 용기를 말한다." p.24


 기승전 일원론,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렇다. 저자인 채사장은 역사 경제 정치 사회 등을 다룬 지대넓얕 1편과 철학 과학 예술 종교 를 다룬 지대넓얕 2편에 이어 0편 Zero 로 다시 찾아왔다. 보통은 3편이라고 했을 것을 0이라고 한것 부터 뭔가 특이하다. 0은 현실과 현실너머가 있기 이전의 상태, 보다 근원적인 것을 뜻하기도 하고, 빅뱅이 시작한 최초의 시점이거나,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을 내포하는 개념으로 썼을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저자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세상을 일원론으로 바라보는 채사장이 일원론 전도자가 되어 포교를 목적으로 쓴 것 같았다. 그는 결론에 해당하는 에필로그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이 책의 주제와 결론은 명확하다. 주제는 위대한 스승들의 거대 사상이고, 결론은 세계와 자아의 합일이다. p.546

이 하나의 주제를 말하기 위해 그는 138억년전 시작한 우주의 탄생에서 부터 시작하여, 생명의 시작, 인류의 진화 등을 이야기한 후, 축의 시대로 대표되는 BC5세기 부터의 사상가, 종교창시자들을 하나씩 짚어본다. 인도의 베다, 중국의 도교, 불교와 같은 동양사상과 플라톤으로 부터 시작하여 칸트로 이어지는 서양의 철학, 그리고 서양 정신의 두뿌리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기독교 등을 차례로 살펴본다. 어찌보면 전혀 비슷한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 사이에서 채사장은 한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하는데 이를 표로 정리한 것이 다음 그림이다. 


 

평소 접하지 못했던 베다의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 기타 등을 요약된 내용으로 들을 수 있어서 흥미로왔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일원론 중심으로 설명하는 저자의 주장에 어느순간 의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양식 이원론에 익숙하여 세계와 나를 분리해 보는 것을 당연시 여기며, 나라는 존재와는 별도로 세계는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잘못) 믿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모두가 깊은 사색과 묵상의 결과 범아일여, 일원론이 맞다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채사장 역시 그것을 깨달은 사람이고 그 지위에서 독자들을 가르치고자 한다. 그는 수많은 사상사적인 이야기들을 일원론으로 치환해 설명한 후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제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세계 바깥은 내가 상상하는 세계가 아니다. 단단하고 안정적이며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이 아름다운 눈앞의 세계는 세계의 실채가 아니라 나의 의식 능력이 만들어낸 내 의식 안의 세계다. (중략) 우파니샤드의 범아일여, 노자의 도와 덕, 불교의 일체유심조, 칸트의 관념론,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탄생한 위대한 스승들은 궁극에서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p.470

책을 읽으며 흥미롭고 재미있기도 했지만 어디선가 불편한 감정이 문득문득 들었던 이유를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저자는 독자가 알지 못했을 것으로 보이는 정보를 알려주고 독자로 하여금 판단하게끔 하는 것이 아닌 애초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계속 유도해왔던 것이다. 이를 위해 양자물리학의 이중슬롯실험등의 관찰자 효과를 언급하거나, 물체는 99.999% 비어있지만 우리가 물체를 만질 수 있는 것은 전자기적 반발력에 의한 것일 뿐이라는 과학적 현상도 활용하였다. 사이비 자기계발서에서 단골손님으로 사용하는 테마를 거의 같은 방식으로 건들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인류의 위대한 스승은 예수였다. 하지만 저자가 이미 할말을 다 해서였을까? 아니면 구색을 맞추기 위해 등장시켰을 뿐이어서일까? 오랫동안 성경을 읽어왔고 기독교 인으로 살아왔던 나의 눈에 허술한 구석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물론 기독교인의 시선과 패러다임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내용의 사실관계 부분이다. 채사장은 아마도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적이 없을 것만 같았다. 성경에 관련해서 이야기한 책(아마도 자신의 일원론 주장을 뒷받침해주기에 적합한 책들만) 들을 참고하면서 그것을 쉽게 풀어 전달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가 보는 예수는 삶에 발을 딛고 실천적이며 '혁명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인류의 스승정도로만 보고 있다. 그는 예수와 함께 했던 그의 제자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 의해 쓰여진 4복음서를 읽어보지 않았던것이 틀림없다. 그랬기에 지금의 기독교는 예수의 의도와는 달리 바울에 의해서 모든 것이 세워졌다는 그 일면만을 믿고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어쨋든, 이책에서 기독교에 관한 것은 그리 중요한것은 아니다.  예수나 바울 등은 안중에 없다. 역사속에서 범아일여로 설명될 만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주장을 가져와 설명할 뿐이다. '보라, 기독교도 결국 일원론으로 귀결되지 않는가' 하며 말이다. 즉, 채사장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근거들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이 책을 읽었기에 그렇게 보였는데, 과연 불교인 혹은 인도인들이 이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과연 채사장이 말하는 불교와 베다에 대한 내용을 모두 긍정할 수 있을까? 

아쉬운 것은 이거다. 채사장은 책의 첫머리에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용기라고 말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내려놓는 용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채사장은 시종일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일원론의 세계관을 내려놓질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내려놓았을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책에서는 자신의 세계관을 고집하고,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방식으로 써내려갔다는 느낌이다. 

오랫동안 팟케스트 지대넓얕의 애청자였다. 내가 그 방송을 좋아했던 이유중 하나는 서로다른 입장과 캐릭터를 가진 4명의 패널들의 허심탄회한 토론때문이었다.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지만 서로가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견제도 하는 도중, 조금씩 배우고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래서 그게 좋아보여 나는 내가 있는 지역에 지대넓얕 독서모임을 만들어 4년간 매달 새로운 책으로 만남을 가지고 있다. 나의 것을 주장하지 않고 서로의 생각과 경험, 정보를 나누는 것은 매우 건전하며 삶에 있어서 중요한 자극제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지대넓얕 팟케스트와  채사장 혼자서 쓴 지대넓얕 책은 다르다. 그는 자신의 입장에서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지만, 이제는 혼자서 이야기 하기에 그 어떤 제동장치가 없는 것 같다. 급기야 '내가 아는 것이 진리다. 나의 이야기를 들으라' 라며 역사의 위대한 스승들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다.  


오늘 리뷰는 비판적인 입장에서 쓴것 같다. 하지만, 채사장의 강점은 어렵고 장황한 이야기를 쉽게 요약해 전달한다는 점이다. 그 어디에서 138억년 우주의 역사와 생명진화, 세계의 3대종교와 동서양의 철학을 책 한권으로 접하겠는가. 평소 과학이나 사상사적인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접근하여 넓고 얕은 지식을 얻을 수 있기에 그런 목적에서 책을 찾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