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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독서 학습

[김성민의 독서학습] 노벨상과 수리공 - 권오상

[김성민의 독서학습 - 노벨상과 수리공]


엔지니어는 그가 만든 물건이 실패했을 때 비로소 성장한다. 

그것도 예상을 벗어나서 완전히 제대로 실패했을 때 

더 많이 배우게 된다. p.160



 나는 이 책의 저자와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왔다. 현재는 학부제로 바뀌면서 과이름이 없어지고 '기계항공공학부'로 뭉뚱그려진 '기계설계학과'가 바로 내가 공부한 전공이다. 영어 이름에는 Mechanical Design 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어서 나름 디자이너라는 자부심에 들떠있었던 적도 있다. 


2학년이 끝나갈 때쯤에 있었던 내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는 작은 일화가 있다. 1학년은 대부분 물리나 화학, 수학등의 교양(?) 과목을 듣고  2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전공과목인 4대역학(고체,유체,열,동역학)을 배우게 되는데, 그해 가을쯤 한창 4대역학을 배우고 익혀서 시험도 치고 했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같이 몰려다니면서 우유팩을 차는 놀이를 했었는데 빙 둘러서서 동네제기처럼 우유팩을 많이 차는 게임이었다. 실력은 대단치 않아도 말빨은 살아 있어서 온갖 역학적인 원리를 우유팩 차기에 대입해서 분석을 하곤 했다. 한참 팩차기를 하던 중 한 친구가 하는 말이 "야~ 우리가 배운 것(4대역학)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지 않겠냐?" 라고 했고, 그 옆에 친구가 맞장구를 치며 "당연한거 아니야~ 못 파악할게 뭐 있냐. 다 알 수 있지" 라고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유치한 대화였지만, 그 당시 나는 그 친구들의 말에 어느정도 동조했던 것 같고, 얇팍한 자만심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읽어가면서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세상은 단순 물리법칙으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여자친구가 삐져 있을 때 그 감정의 복잡함을 어찌 4대역학이 분석해주겠느냔 말이다. 회사에 들어가 반도체 공정엔지니어로 있을 때 각종 화학물질이 반응을 통하여 미세회로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역학의 세계에서 경험하지 못한 화학이라는 신세계에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우물안 개구리였던 것이다.


이 책은 과학자는 위대하고 엔지니어는 과학자가 만들어놓은 법칙을 이용해서 뭔가 하는 하위의 직업이라고 하는 기존 인식을 완전히 뒤집고 싶어서 쓰여진 책이다. 다시 말해 엔지니어링이 얼마나 과학보다 앞서고 위대한지를 주장함으로써 엔지니어들의 사기를 끌어올려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장차 엔지니어와 공대쪽으로 진로를 정하고자 하는 학생에게나 이미 엔지니어로 전공을 정해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용도로써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선거에서 네거티브만 계속 하는 후보자가 지지를 얻지 못하듯이 책의 절반 이상을 '과학'에 대해 네거티브 입장에서 계속 엔지니어링이 더 위대하고 과학은 그렇지 못하다는 이야기로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균형을 잃은 면을 보인다. 특히 저자는 '영역으로의 엔지니어링이 있고 방식으로의 엔지니어링이 있다' 면서 영역이 아닌 '방식'으로서의 엔지니어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반면에 예술, 문학, 과학 등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영역의 울타리에 가둬두고 비판을 하고 있어 이 저자가 그동안 과학에 쌓인게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한쪽으로 쏠린듯 이어지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동안 조명받지 못한 엔지니어링의 가치와 중요성을 역사적인 시선과 의미적인 분석을 통해서 다양한 사례와 함께 잘 풀어내었다는 것이다. 엔지니어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책 속의 명언>


  • 화학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보일이 연금술사였다는 것은 금기시되지만 하나의 사실이다. (중략) 연금술이라고 하는 엔지니어링적인 시도가 없었다면 근대적인 의미의 화학은 생겨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화살표의 방향은 엔지니어링에서 과학으로 흐르고 있다. p.43
    ; 학문에 앞서 경험이 먼저했다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체역학이나 부력의 원리나 건축학이 발달하기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배를 만들어 타고 다니고 전쟁을 하고 위대한 건축물들을 지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학문에 적용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심리학이 있기 전에 사람의 심리가 먼저했고, 경제학이 발달하기 훨씬 이전부터 경제활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과학과 엔지니어링으로 이분화 해서 생각하는 것은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이런 학문적 영역 구분이 나온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이고 이전에는 과학을 하는 사람이 예술을 하고 철학을 하며 수학을 하고 공학을 했기 때문이다. 아르키메데스가 그랬고 다빈치가 그랬다. 그저 삶의 형태였고 무언가 만드는 과정에서 학문적인 정립이 이뤄졌다고 보는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 엔지니어는 그가 만든 물건이 실패했을 때 비로소 성장한다. 그것도 예상을 벗어나서 완전히 제대로 실패했을 때 더 많이 배우게 된다. p.160
    ; 이는 엔지니어 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싶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유명한 말이 있지만, 꼭 성공으로 귀결되지 않더라도 그속에서 성장이라는 노획물을 거머지게 될 것이다. 엔지니어링적으로 한 때 타코마 다리라고 하는 미국 워싱턴주에 세워진 현수교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 다리는 아주 멋지고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지어졌고, 완공식도 정부에서 나와 거창하게 가졌다. 그러나 몇달 안되어 그 엄청난 철근 콘크리트가 엿가락처럼 흐물거리면서 파괴되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으나 그 사건은 모든 건설자에게는 큰 충격과 학습이 되는 계기가 되었고, 타코마 다리를 붕괴시킨 주기적인 와류현상에 대해 대비하는 공법으로 향후 교량 및 건축은 발전해갈 수 있었다.  인생도 후회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후회 하지만 그것을 통해 성장할 수 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가다듬어 간다면 그 실패가 가치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 ‘엔지니어링은 무언가를 만드는 것’ 이다. p.67
    ; 저자는 엔지니어링란 무언가를 만드는 모든 행위 혹은 방식으로 정의를 내리고 이 책을 써내려간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엔지니어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한 단어를 더 붙여서 '가치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 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왜냐하면 숨쉬기를 통해 이산화탄소를 만들거나, 소화작용을 통해 메탄,암모니아를 만들거나.. 그런 것도 만들기이긴 하지만 엔지니어링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휴지를 줍는다거나 가족의 행복을 만들기 위해 여행을 간다거나, 연인끼리 서로 사랑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런것도 엔지니어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