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의 본질게임 - 바둑의 본질]
왠지 온세상이 요상한 컴퓨터 한대 때문에 시끄러워진 것 같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갑작스러운 것도 아니다. 수년전부터 인간을 대신하는 로봇기자, 로봇애널리스트, 로봇 편집자 등이 꾸준히 발전되어 왔었다. 그런데, 뜨거운 물에 들어간 개구리가 펄쩍 튀어오르듯, 알파고의 바둑대결이 인공지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화들짝 끌어올린듯 하다.
많은 기사에서 예측하듯 현재는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조만간 여러 영역에서 인간의 직업을 대체하는 로봇들이 많이 나타날 것 같다. 로봇이 대체하지 못하는 인간의 영역이 무엇일까? 누군가는 모라벡의 역설을 들어 오랫동안 진화를 통해 축적된 자연스러운 인간의 움직임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래도 가장 일반적으로 이야기 되는 '감성'과 '창의성'의 영역이 아닐까? 하긴 소프트뱅크의 '페퍼'같은 사람의 감정을 읽는 로봇이 나오기도 했으니 이 말도 언제까지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다.
어쨋든, 아직까지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창의성. 그 창의적 사고능력을 키우기 위해 바둑에 대한 본질게임을 이번 포스팅으로 해보고자 한다.
어려서 바둑책을 몇권사서 퀴즈풀이하며 놀고 기원에 몇번 들락날락했던 경험으로 짜투리 지식이 있어서인지, 이번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는 정말 흥미롭게 한수 한수를 지켜보았다. 특히 강의가 없던 10일에는 2국 전체를 실시간 생중계로 볼 수 있었다.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2국 경기 中>
해설하는 내용도 들으면서 옛날 바둑돌로 알까기 하던 추억도 떠올리며 30여분 지났을 시점에 실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해설자들이 하나같이 알파고가 실수한것 같다며 전혀 있을 수 없는 수고, 아마도 이렇게 놓으면 바둑 스승님이 혼을 낼만한 수라는 어처구니 없어보이는 수에 이세돌 9단이 장고에 들어간 것이었다.
위 사진이 바로 문제의 37번 수이다. 우측 중앙변에 놓인 소위 해설자들이 말하는 '어깨집는수' 라는 알파고의 검은 바둑돌. 이세돌은 이 바둑돌을 받고 잠시 자리를 비우기도 하며 돌아와서도 한참을 고민에 빠진다. 나중에 이때 시간을 확인해보니 무려 '15분 37초' 라는 시간을 사용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바둑의 중반을 지났을 무렵 그곳 37번에 두었던 알파고의 수는 빛을 발하기 시작하며 원래 그곳이 자신의 자리인마냥 그 위용을 뽐내었다. 그 전과 이후로도 알파고는 보통 프로기사들이라면 절대 두지 않을 것 같은 곳에 전혀 예측되지 않는 타이밍에 실수 같은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 실수같은 돌을 디딤돌 삼아 이세돌9단에게 불계승을 거둬들였다.
바둑의 돌이 하나하나 놓이고 그것이 이어질 때 바둑이 '진행'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나같은 초보에게는 그냥 검은색과 흰색돌로만 보이는 바둑판을 전투의 격전지로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 상대가 지키고 있는 성에 공격해서 처들어가거나 게릴라전을 한다는 둥 뭔가 스펙타클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말이다. 그래서 바둑이 두터우니 기세가 있다느니 기풍이 어떻다느니 이야기하는데 생각해보면 알파고에게는 이런것들이 모두 무의미했다. 알파고는 그저 이기는 수를 둘 뿐이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볼 수 있겠다. 바둑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만약 알파고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가 알파고에게 두터움에 대해 가르치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최신 프로들의 기풍을 알려주려고 했다면? 어쩌면 그런 알파고였다면 이세돌이 쉽게 이겨버렸을런지도 모른다. 하사비스는 알파고에게 바둑의 가장 간단한 룰, 이기는 룰을 던져주고 스스로 그 룰에 맞도록 학습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우승의 판가름은 상대보다 많은 '집수'였다. 중국식 룰에 따르면 뒤에 하는 백을 잡은 사람이 7.5집을 최종결과에 플러스 해서 비교하는 것이라 한다. 알파고는 흑을 잡았을 때 집수에서 8집만 백보다 더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또한 최종 결과가 10집차이로 이기나 1집 차이로 이기나 알파고에게는 모두 이기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패가 만들어졌을 때 그냥 거기서 발을 빼는 행태나, 기존 프로기사들이 전혀 두지 않는 실수 같은 수를 두는 것도 이해가 된다. 알파고는 기풍을 뽐내는 것이 아닌, 단지 집수를 늘리는 철저한 계산에 의해서 한수 한수 응대했다. 그것도 수십수 차이가 아니라 한수로 이기더라도 확실한 승리의 수를 놓는 방식으로 말이다.
궂이 '누가 이기더라도 인간의 승리다' 라는 말에 동의를 한다고 한면 나는 알파고의 개발자 하사비스가 알파고 알고리즘에 바둑의 본질인 '집수'의 개념으로 훈련시킨 창의성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제 알파고는 다양한 영역으로 그 능력을 넓혀갈 것이다. 이 때 역시 훈련되는 방식에는 그 업에 있어서의 '본질'이 핵심이 될 것이다. 주식투자의 본질은? 날씨예보의 본질은? 사교육의 본질은? 심지어 국회의원의 본질은? 그 본질만 정확히 짚어내면 알파고는 그 알고리즘에 맞춰 훈련하고, 새로운 영역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역량을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바둑처럼 학습한다면 말이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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