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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독서 휴식

[김성민의 독서휴식]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김성민의 독서휴식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상상력과 대척점에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효율’입니다. 

수만명에 달하는 후쿠시마 사람들을 고향 땅에서 몰아낸 것도 

애초의 원인을 따져보면 바로 그 ‘효율’입니다. p.228



 평소 소설을 잘 읽지 않는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존재는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저 일본의 좀 알려진 작가, 정도로 생각하면서 이 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그런데, 글이라는게 참 이상한게 이미 수년전에 쓰여진 글일 것이고, 한국도 아닌 일본, 어쩌면 세계를 돌아다니며 어떤 카페에서 끄적였을 수도 있을 그런 글이 오늘 대한민국에 사는 나에게 그대로 와 닿는다. 무라카미의 다른 작품은 읽어보지 않았기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은 그가 누군가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듯이 글을 써내려간다. 그렇기 때문에 무라카미를 만나 꼼짝없이 붙잡혀 이야기를 듣는 심정.. 그렇지만 계속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그런 책이다.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소설가'를 이야기해보는게 어떨까라며 자기자신이 소설가가 된 여정을 그리면서 글이 시작한다. 밑도 끝도 없이 젊은 시절 야구장에서 홈런볼을 잡았을 때 '소설을 써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고, 가게일을 하면서 밤늦게 시간을 내어 쓴 소설이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면서 소설가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는 그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이야기로 들렸다. 한번도 소설을 쓰는 법에 대해 교육을 받았던 적이 없던 그가 소설을 쓸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뭔가 소설로서 읽혀질만한 내용으로 전달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가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그의 어린시절 틈만나면 하던 독서활동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짧은 영어실력으로 외국소설 찾아서 읽어대었던 이야기하며, 그것이 고스란히 무라카미의 문체나 이야기를 구성하는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몇가지 책 속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내용을 적어보기로 한다.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는 데는 우선 출발점으로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간다’는 것보다 오히려 ‘나에게서 무언가를 마이너스 해간다’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p.105



독창적인 생각.. 그저 아류가 아니라 나만의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마이너스' 가 중요하다고 한다. 일면 당연한 말일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너무나도 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고, 어떤 생각을 하나 하면 그것이 나의 고유한 생각이라기 보다는 주변의 무수한 영향속에서 각인된 생각일 때가 많다. 물론 자신의 온전한 고유한 생각이 뭘지는 좀더 생각해 볼 만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E. T.>에서 E. T. 가 창고의 잡동사니를 쓸어 모아 그걸로 즉성 통신 장치를 만들어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기억나시는지요. 우산이라든가 전기스탠드라든가 식기라든가 전축 등등, (중략)  영화관에서 그 장면을 보고 크게 감탄했었는데, 뛰어난 소설이란 분명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재료 그 자체의 질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거기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매직magic’입니다. 일상적이고 소박한 재료밖에 없더라도, 간단하고 평이한 말밖에 쓰지 않더라도, 만일 거기에 매직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것에서도 놀랍도록 세련된 장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p.129


그러나 어떻든 우리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창고’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매직을 구사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실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E. T. 가 훌쩍 찾아와 “미안하지만 너의 창고 속 물건 몇 가지를 쓰게 해주겠니?”라고 말했을 때, “좋아, 뭐든 마음대로 써”라고 덜컹 문을 열어 보여줄 만한 ‘잡동사니’의 재고를 상비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p.129



생각해보면 그렇다. 어떠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는 것일지라도 그 구성성분은 모두가 다 아는 그런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음악이라고 하더라도 도레미파솔라시도와 사분음표 팔분음표등의 박자를 조합한게 아닌가. 창조성이라고 말하는 것도 어쩌면 이렇게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나오니, 새롭게 조합할 수 있는 능력이 창조성의 단면일지도 모르겠다. 이에 더나아가 무라카미는 창고가 비어있어 아무런 조합을 할 수 없게 되는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잡동사니'는 새로운 것을 만들 재료가 된다.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인터넷에 떠도는 방랑자 정보와는 다르게 책이라는 것은 그래도 나라는 창고안의 잡동사니로서의 역할을 좀더 잘 해줄 것만 같다. 



장편 소설을 다 쓰고 난 작가는 대부분 흥분 상태로 뇌가 달아올라 반쯤 제정신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정신인 사람은 장편소설 같은 건 일단 쓸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제정신이 아닌 것 자체에는 딱히 문제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어느 정도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건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인간에게 제정신인 인간의 의견은 대체적으로 중요한 것입닙다.  p. 162



비판받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었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동일한 일이 벌어진다.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상대가 적극적으로 흥분하며 반응해주지 않을 때의 서운함. 내가 만든 요리를 시쿤둥하게 먹는 상대방을 볼 때 속에서 부터 올라오는 그 무엇..  무라카미도 이런 비판에 대해서 그리 달가와하지 않았던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이렇게 그 순간을 잘 묘사하고 있는게 아닐까. 30년 넘게 소설을 쓰고 편집자나 아내로 부터 1차 평가를 받게 되면서 얼마나 많은 비판을 접했을까. 그의 세월을 두고 쌓아온 지혜에 따르면, 나는 제정신이 아니고 그나마 상대는 제정신이니깐 그의 의견을 듣는 것은 중요하다는 말이다. 앞으로 나의 창의적 결과물. 그것이 강의가 되었던 책이 되었던.. 말이 되었건 그런것에 대한 비판을 이런 대인배 같은 태도로 받아들인다면 관계에 있어서의 갈등은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긴 세월 동안 창작 활동을 이어가려면 (중략) 지속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면 지속력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단 한가지, 아주 심플합니다. - 기초 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할 것.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들 것.  p.181



  오랜동안 지적 생활을 해온 분들은 항상 육체적 건강을 꼭 말하고 있다. 실제로 무라카미는 자신이 하루도 빼먹지 않고 1시간씩 달리기를 하거나 수영을 한다고 말한다. 정말 몸이 힘들고 하더라도 이것이 나의 생에 숙명이라고 생각하면서 달리기를 한다고 하니, 운동에 관한한 그의 철저한 습관은 놀랍기만 하다. 소설가하면 타이핑을 칠 수 있는 손가락 힘만 있으면 된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데, 육체적 강건함이 생각의 자유로움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몸이 불편하면 아무래도 생각의 제약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요 며칠 미열과 몸살기때문에 뭐 하나 제대로 못하고 있는 나의 상황을 보면 이 말이 더욱 강렬히 다가온다. 



소설가의 기본은 이야기를 하는 것tell a story입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의식의 하부에 스스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중략) 큼직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수록 작가는 좀 더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p.188



비단 소설가뿐일까? 강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깊이 나의 내면속에 내려가봐야 그곳에서 나를 직면하고 나의 의식이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강의가 되고 이야기가 되고 글이 되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 시기에는 그런 ‘공리적’ 시스템이 분명 잘 돌아갔습니다. 사회 전체의 목적이나 목표가 대체적으로 자명했던 ‘Go, Go!’의 시대에는 그런 방식이 적합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전후의 부흥기가 끝나면서 고도 경제성장은 과거의 일이 되고, 거품경제가 어이없이 파탄이 나버린 뒤, 그런 ‘모두 함께 선단을 짜고 목적지를 향해 일념으로 돌진하자’는 식의 사회 시스템은 그 역할이 이미 끝나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목적지는 더 이상 단일한 시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p.216



이웃나라 일본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 말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소설도 가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무라카미의 1Q84 부터 한번 손에 들어봐야지 싶다.  소설가 지망생이 꼭 아니더라도 크리에이티브 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번 자서전은 좋은 통찰을 제공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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