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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독서 휴식

[김성민의 독서휴식] 라플라스의 마녀 - 히가시노 게이고

[김성민의 독서휴식 - 라플라스의 마녀]



얼핏 보기에 아무 재능도 없고 

가치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중요한 구성 요소야. 인간은 원자야.  p.497



  소설 자체를 그다지 읽지 않던 사람이다보니 일본 소설은 더더욱 생소하다. 그러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기점으로 일본소설을 몇권 읽어보기 시작하다가 걸린게 이 작품이다. 그렇게 유명한 작가인지 몰랐다. 그런데 그의 데뷔 30주년 기념작이라고 떠들썩하게 광고가 되고 있는 것보니 그런데로 이름난 작가인듯 하다. 라고 생각하는 중에 작가에 대한 소개글을 보고 놀라게 되었다. 


  왠지모를 친숙해지는 지점이 있었는데, 누군가의 소개로 보았던 영화 '용의자 X의 헌신' 의 원작을 이 작가가 썼다는 사실이었다. 그 영화에는 수학자가 나오고 추리소설 장르의 비밀의 풀어내가는 재미를 주었던 영화로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다. 또 하나 더 놀라왔던 사실은 이 작가가 이공계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전자회사에서 엔지니어 출신으로 일을 하다가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하니,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반도체 회사에 근무하다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현재의 나와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작가처럼 글을 잘 쓴다 라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뭔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작가와 이 작품이 좀더 친밀하게 다가왔다. 그런 관계맺음이 책을 읽을 때 하나의 동기가 되는 것이리라. 


  자세히 스토리를 이야기하면 반전 가득한 이 소설을 아직 안 읽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에 간략히 배경설명과 인상깊었던 대화내용을 한번 말해보는 것으로 글을 정리하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단 한편도 읽어본적이 없기 때문에 - 용의자 X의 헌신이란 영화에서 살짝 맛만 봤다 - 그 이전 작품이 어떠했는지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며 여느 소설작가가 접근하기 어려울 것 같은 수학과 물리학 지질학 뇌과학 등등에 대한 내용을 소설적 요소를 섞어 기가막히게 구성해 내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작가가 지닌 이공계 배경이 소설을 쓰는데 큰 강점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역자 후기를 읽다보면 이 책의 제목이 '나비에 스토크스의 딸' 이라고 붙여질뻔했다고 한다. 라플라스도 그렇지만 나비에 스토크스도 사람이름이다. 왠지 '마녀' 라는 말이 붙은 지금의 제목이 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나비에든 라플라스든 대학 2,3학년 유체역학 시간에 엄청나게 우리들을 괴롭혔던 녀석이다. 편미분방정식으로 되어 있어 뭘 어쩌라고 하는건지 당황스러웠던 첫만남이 기억난다. 그래도 배운 풍월은 있어서인지 소설속에 그 이름들과 내용이 등장했을 때 왠지 반갑기도 했다. 소설을 읽어나가며 모르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지만, 알면 도움이 될 것 같은 개념 두가지 정도만 말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에 대한 것이다. 이 방정식을 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은 이 방정식을 풀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한다. 이게 세계 7대 난제중 하나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 문제를 풀게 된다면 100만불인가를 받을 수 있다고 하니 관심있는 분은 도전해보길 바란다. 어쨋든, 이게 뭘 말하는 것이냐하면 물이나 기체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수학적 공식이다. 물과 기체를 합해서 흐른다고 하여 '유체'라고 하는데 이 유체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층류(laminar flow)와 난류(tubulant flow)라고 하는데, 이중 두번째 난류라는 표현은 소설에 몇차례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름이 생소해서 그렇지 별것 아니다.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처음에 살짝 틀면 '쫄쫄쫄~' 하면서 곱게 내려오는 물(유체)의 흐름을 '층류' 라고 하는 것이고, 조금 더 세게 틀어 '콸콸콸~' 하게 나오는 것을 '난류'라고 한다.  층류는 방정식이 상당히 간단해서 풀 수 있고, 풀 수 있다는 말은 초기조건을 알면 다음 상황을 예측할 수가 있다. 그런데 자연계에 있어서 더 많이 존재하는 흐름은 '난류' 이다. 그런데, 그 난류를 나타내는 방정식이 그 악랄한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 이라는 것이고 그게 수학적 난제라는 말이다. 난제라고 하였으니 잘 안풀린다는 것이고, 만일 이 방정식을 풀게 된다면 유체의 흐름을 이용하는 모든 산업 - 예를 들면, 비행기 산업 - 등에 엄청난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 정도로 하고 두번째로 라플라스에 대한 것을 말해보겠다. 실은 공대에서는 라플라스 변환 이라는 것으로 더 많이 접했었는데, 여기서는 '라플라스의 악마' 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뭔가 우주에 대한 철학적 담론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라플라스(1749∼1827)가 살았을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관련된 생각을 담고 있다. 근대 이성주의가 팽배하였고, 뉴턴이후로 인간이 모든 세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반영이 라플라스에 까지 이르렀다고 보여진다. 물론 그 이성과 과학으로 저지른 1,2차 세계대전 후로 근대이성의 절대성에 회의가 찾아왔지만 말이다. 어쨋든,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개념은 당구대에서 당구공을 치는 지점과 속도 힘등을 알면 당구공을 치고나서 어디에 가 있을지 예측할 수 있는것과 같이 모든 자연계나 세상의 초기값을 알고 있다면 다음 순간이 어떻게 움직여질지 예측할 수 있는 존재, 그를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하였다. 이 소설에서는 악마가 아닌 '마녀' 이니 아마 그런 능력을 사용하는 존재가 여자가 아닐까 추측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혹은 그녀가 누구일지는 소설을 통해서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소설은 시작하자마자 한소녀가 엄마와 함께 시골길을 가다가 토네이도를 만나고, 그와중에 엄마는 죽고 소녀만 남겨진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때, 소설의 제목의 의미를 떠올려본다면, 라플라스의 악마가 토네이도를 보았다면, 토네이도가 어디로 움직여갈지 예측해서 그 사고를 면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도 예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일을 벌어지지 않았고, 소설은 수년이 지난 후 전혀 다른 배경의 등장인물들이 나오면서 이야기가 이어져 간다. 그러던 중 한 온천에서 황화수소 가스에 노출되어 사람이 죽는 사고가 벌어지는데, 이를 단순 사고가 아닐 것으로 생각하는 경찰과 황화수소 가스의 누출 경위등을 공식적으로 증언해줄 임무를 띤 지질학 교수가 합세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깊어져만 간다. 이때, 사건의 실마리가 풀어질 듯 하는 순간 교수가 한 말이 인상 깊었다. 



일순 머리를 스친 것은 그 청년이 이번 사고를 일으킨 게 아닌가, 하는 상상이었다. 그렇다고 하면 마도카가 사고가 일어난 장소를 알아보고 다닌것도 설명이 된다. 하지만, 하고 아오에 자신의 지식이 즉각 그런 상상을 부정했다. 그런 일은 있을 리 없다. p.145



  우리는 지금까지 쌓아왔던 지식이 더 많은 것을 보게 해줄 것이라고 믿지만, 어쩌면 세상을 해석하는 한쪽 방향의 지식만 갖추게 되어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의 저주라고 하는 표현처럼 너무 많은 지식은 오히려 창의적 사고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실은 그것이 지식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을 대하는 태도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도 싶다. 지질학 교수인 아오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절대적으로 생각하여 다른 가능성을 계속 닫아버리고 만다. 만일 내가 획득한 지식의 기반이 때론 불충분하거나 완전하지 않음을 인정할 수 있다면, 새로운 가능성과 생각에 열려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은 끝까지 의문점을 남겨둔채 비밀을 향해 다가서게 되고, 마지막으로 갈 수록 8년에 걸친 과거의 비밀이 낫낫히 벗겨지게 된다. 그 결정적인 순간에 2명의 인물이 서로 자신의 주장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던지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웃기는 소리를 하는구나, 그렇다면 좀 물어보겠는데, 진실이란게 뭐지? 그걸 누가 판정하는 건데? 결국은 기록된 것만이 진실이야. (중략) 진실이라는 단어로는 알아듣기 힘들다면 역사라고 말을 바꿔도 좋아. 그런 인간들은 태어나든 태어나지 않았든 이 세상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해. 너희도 마찬가지였어. 이 세상에 없어도 무방한 인간들이었단 말이야.”  - 아마카스 사이세이  p.489



“당신은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중 가장 큰 잘못이 무엇인지 알려줄께. (중략) 이 세상은 몇몇 천재들이나 당신 같은 미친 인간들로만 움직여지는 게 아니야. 얼핏 보기에 아무 재능도 없고 가치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중요한 구성 요소야. 인간은 원자야. (중략) 이 세상에 존재 의이가 없는 개체 따위는 없어, 단 한 개도.”  - 겐토  p.497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만한 책이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과학지식을 동원하여 읽어내려가면 더욱 흥미진진할 것이라 생각한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취미삼아 재미로 읽을 때 소설만한것도 없는 것 같다. 추천한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