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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독서 휴식

[김성민의 독서휴식]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 야기사와 사토시

[김성민의 독서휴식 -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나도 대단하게 뭘 많이 아는 건 아니거든요. 

그보다 한 권의 책과 만나서 

그것으로 인해 얼마만큼 

마음이 움직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  p.134



 지난번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나서 꼭 한번은 일본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도 독서경영포럼의 100회 기념모임에서 있었던 책 나눔 행사에서 선택했던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그 때 나는 진행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책을 선택하는 차례에 다른 회원들에게 양보를 하게 되었는데, 마지막에 가보니 남아 있는 서너권의 책 중에서 선택하게 된 책이다. 책의 주인은 따로 있었던 것일까? 모든 회원들의 선택에서 외면을 받았던 이 책이 나에게 들어온 것은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게 내 방 책장 한구석에 꼽혀 있던 이 책은 때를 잘 만나서인지 읽혀지게 되었고, 그것이 삶의 소소한 변화로 이어진게 아닐까 싶다. 마치 소설의 주인공인 다카코처럼 말이다. 


  다카코는 직장에서 사귄 남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 사실 배신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냥 남자는 다카코를 엔조이 대상으로 여겼고, 다카코는 진지하게 연애를 했던 것 - 실연의 아픔을 부둥켜 안은채 회사까지 사표를 내게 된다. 한달인가를 방구석에서 폐인생활을 하다가 십여년간 연락 하지 않고 지냈던 외삼촌으로 부터 연락을 받고 모리사키 서점 2층에 들어와 살게 된다. 모리사키 서점에 처음 들어섰을 때 다카코는 결코 그곳을 반기지 않았다. 책 먼지 풀풀 날리고, 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땀흘리며 책을 옮겨야 했던 귀찮은 곳.. 그저 월세비를 아낄 수 있고 고향에 내려가지 않아도 될 빌미를 얻을 수 있는 곳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소설이 끝날 무렵에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며 모리사키 서점을 나서게 된다. 



나는 “건강하세요!”하고 외치고는 발길을 돌려 이미 사람들로 넘치는 야스쿠니 거리로 들어섰다.

길을 가는 사람들은 꺽꺽 울면서 걸어가는 나를 보고 참 이상한 여자군, 하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조금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지금 나는 울고 싶어서 울고 있는 것이고 이 눈물은 지금까지 흘린 눈물 중에서 가장 행복한 눈물이니까. p.103



어떤 일이 모리사키 서점에서 있었던 것일까? 사실을 알아보면 그리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벌어질 법한 일들이 다카코 주변에 일어났고, 그런 상황들로 인해서 서서히 다카코 마음속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람들' 과 '책들'이 있었다. 

첫번째 사람은 바로 모리사키 서점의 주인장인 삼촌이다. 매일같이 서점 2층에서 잠만자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 다카코에게 어느날 찾아와 이런 대화를 한다. 



“나는 ……,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데 … …. "

외삼촌은 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렇지 않아. 인생이란 가끔 멈춰 서보는 것도 중요해. 지금 이러고 있는 건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서의 짧은 휴식 같은 거라고 생각해. 여기는 항구고 너라는 배는 잠시 닻을 내린 것 뿐이야. 그러니 잘 쉬고 나서 다시 출항하면 되지.”   p.50



삼촌은 그녀의 멘토와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삼촌 역시도 인생의 의미를 찾아서 오랫동안 방랑을 했던 존재.. 그렇기 때문에 방황하고 있는 지금의 다카코를 누구보다도 이해하고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었다. 삼촌의 말은 청년시절 한번쯤은 방황을 해봤을 우리들 모두에게 주는 위로와 격려의 말로 들려졌다. 만약, 인생에서 방황하게 되는 시기가 있을 때에라도 잠시 닻을 내리는 시기임을 인정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그래서 자신에게 좀 너그러워질 수 있다면 ...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두번째 사람은 근처 카페에 끌려가다시피 들렸다가 만나게 된 자기 또래의 여자 아르바이트생.. 거기에 독서 이야기가 나온다. 



“으음, 글쎄요. 나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에게 내 의견을 말하는 걸 두려워하는, 아주 말없는 아이였어요. 마음속은 온통 부정적인 감정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었고요. 그런 나 자신의 모습이 몹시 싫었는데…… 그럴 때 우연히 언니가 갖고 있던 다자이 오사무의 ‘여학생’ 이란 책을 읽게 됐고, 그것이 제 독서인생의 시작점이 되었어요."

“그래? 인생의 어딘가에서  우연히 책을 만나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한 사람이 독서광이 되는거구나.”  p.62



소설책을 읽는 다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해오고 있었다. 아마도 대학때 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듯 싶다. 동아리 모임에서 만난 동양사학과의 한 선배가 소설이나 그런건 언제든 읽을 수 있는 거야. 그러나 이런 책 - 원론에 가까운 지식서적 - 은 이 때 아니면 못 읽지 라고 했던 말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게 아닌가 싶다. 그 이후로도 경제경영서를 중심으로 읽었지 소설 하면 그저 취미로 읽는 독서정도로 치부했었던 듯 하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 예기치 못한 감동과 정서의 변화, 그리고 사람들이 숨쉬고 살아가는 세상을 알게 된다. 그것은 어떤 실용서나 자기개발서도 주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잠잠히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의 삶의 이야기에 몰입해 갈 때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게 되고, 울타리처럼 닫혀 있던 나의 인생의 지평이 넓혀지는 느낌을 소설에서 경험케 되니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다카코는 자신도 모리사키 서점의 2층에서 먼지 풀풀 날리는 책들 사이에서 한권의 책을 만나게 되고 그것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과거로 부터 탈출해 새로운 미래를 향해 현재를 살아가게 힘을 실어주게 된다. 어쩌면 지식을 얻는 것은 부차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 대목을 읽으며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큰 특혜가 아닐까.  


삼촌은 또 이런 말을 한다. 



“그래, 여기야. 우리의 작고 남루한 모리사키 서점. 큰 뜻을 품고 세계로 뛰쳐나갔는데 결국 도달한 곳이 내가 어린 시절부터 익히 알아왔던 장소라니, 웃기지?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려서 이곳으로 돌아온 거야. 그때는 장소의 문제만이 아니라는걸 나도 잘 알고 있었어. 그래, 그건 마음의 문제야.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자신의 마음에 거리끼는 게 없다면 그곳이 바로 자신이 있을 장소야. 그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내 인생의 전반부가 지나갔어. 그리고 나는 이제 가장 마음에 드는 항구로 돌아와 거기에 닻을 내리기로 결정한 거야. 나에게 이곳은 신성한 곳이고 가장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장소야.” p.78



누구에게도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 성인이 되어 가정을 갖게 되면서 더욱 그런것 같다 - 말하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 그저 혼자 내적으로 삼키면서.. 어쩌면 나의 인생을 되짚어 복기해볼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을른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설속의 인물들을 통해서 내가 했어야 할 생각들이 무엇이었을지를 보게 된다. 자기개발서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십시오' 라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다. 그냥 보여주고, 이야기해준다. 그치만 내가 생각하게 되고 공감하게 된다. 이것이 스토리가 지닌 힘일 것이다.  메마른 정서에 물을 주기 위해서라도 가끔 소설을 읽어볼까 한다. 



이 책은 총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모리사키서점에서 과거의 상처를 모두 지우고 독립을 하게 되는 시점까지를 다루었고, 2부는 외삼촌의 집나갔던 아내, 외숙모가 돌아오면서 외숙모와 다카코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가슴아팠던 삶을 살아온 외숙모의 내면과 현실의 문제. 갈등들을 보게 된다. 하지만 2부는 내겐 좀 쉽지 않은 이야기였다. 어쩌면 여성 독자라면 좀더 공감하면서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가볍게 일본 소설을 접하고자 하는 분들, 그리고 독서에 대해서 좀 자극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 실연의 아픔을 당한 사람.. 그런 분들이 읽는다면 좀더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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