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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독서 휴식

[김성민의 독서휴식] 채식주의자 - 한강

[김성민의 독서휴식 - 채식주의자]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p.197




   맨부커 상인가를 받았다더라, 번역한 사람이 외국인인것 때문에 기사에 많이 오르내리더라. 좀 깨름직한 내용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도대체 뭐길래?  난 사전에 그 어떤 배경지식도.. 줄거리도 모른채 우연히 도서관에서 신착도서코너를 지나다가 보이길래 호기심에 집어들었고, 그냥 분위기 파악(?)만 하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앞부분을 읽기 시작하다가 그냥 마지막까지 정주행해버렸다. 


   처음 이 책 옆면을 보니, 책장 사이에 회색페이지 두 부분이 가늘게 보이면서 전체를 세부분으로 나누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첫번째 시작 부분을 보니 제목이 '채식주의자' 라고 적혀 있었고, 두번째 시작부분에는 '몽고반점' 이 보였다. 세번째는 보지도 않았다. 그냥 그 순간 이렇게 생각이 들었다. 아하 이건 단편  세개가 묶여 있는 책이구나, 그럼  맨부커상을 받았다는 그 내용은 첫번째 부분이겠네.  그런데, 책 표지에는 이 책의 저자인 한강 이름 옆에 '연작소설' 이라고 적혀 있었다. 연작소설?  그게 뭐지? 그게 뭘 뜻하는지는 첫번째 소설 '채식주의자'를 다 읽고 두번째 '몽고반점'을 두어장 넘기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다른 소설인줄 알았더니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었다. 즉, 세개의 소설은 각자 독립적으로도 하나의 작품으로 볼 수 있으나 또한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알았다. 이런게 연작소설이라는 거구나.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첫번째 '채식주의자'를 읽을 때는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일까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게 연결된다면 두번째 '몽고반점'은 뭐란 말인가? 정말 혼란스러웠다. 형부와 처제가 정말 찐한 예술을 찍다가 아내한테 걸리고 마는 그런 이야기? 인간의 욕망과 예술적 열정, 그리고 사회적 시선이 함께 충돌하면서 뭐라 말하기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3부 '나무 불꽃'을 읽으며 숙연해졌다. 


  채식주의자는 단지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회적 시선속에 부당한 폭력을 당하고 있는 그 누구도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성애나 특이한 종교를 가진 사람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주인공의 상황속에 들어가 본적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 나는 카페인이 머리에 나쁘다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난 이후로 콜라와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피자나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항상 따로 '음료는 사이다로 주세요' 라고 했고, 대학때나 회사초년때 다들 자판기커피로 가서 밀크커피를 뽑아 마실 때 나는 율무차나 코코아를 뽑곤 했다. 그럴 때 받았던 주변의 눈치는 '왜 그렇게 유난을 떠니, 그냥 남들처럼 똑같은 걸 해' 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또한 종교적 이유든 건강상의 이유든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채식주의자를 선언한 주인공이 겪었던 상황만큼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사회를 살고 있다. 내가 불편하니 네가 바꿔라. 네가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거북하니 제발 바꿔라. 그것은 상대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아닌 내가 편한 방식으로 상대를 바꿔놓으려는 폭력이 된다. 결국 영혜가 마지막 까지 기대하고 있던 언니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며 입을 닫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영혜의 앙상한 손을 잡고 말했다.

지금 넌 제대로 걷지도 못하잖아. 링거라도 맞으니까 버티는 거지…… 집에 오면 밥을 먹을 거니? 먹는다고 약속하면 퇴원시켜줄게.

그때 영혜의 눈에서 빛이 꺼진 것을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중략)

…. 언니도 똑같구나.

그게 무슨 소리야. 난 …….

아무도 날 이해 못해….. 의사도, 간호사도, 다 똑같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 약만 주고, 주사를 찌르는 거지.    p.190



 그런면에서 2부에 나온 형부인 '그'는 영혜에게 "왜 고기를 안 먹는거지? 언제나 궁금했는데, 묻지 못했어" 라며 유일하게 마음을 열어놓고 듣고자 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아내에게 간략한 줄거리를 이야기해줬다. 2부의 이야기도 꺼내지 않은 상황에서 1부 이야기만 듣고 '그건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 같은데'라는 피드백이 돌아왔다. 조금 정신 차리고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한강 작가가 어떤 언어의 마법을 걸었는지, 책을 읽어내려가다보면 이 상황이 정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구나 하는 너무도 공감가는 이야기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결과 자체만 놓고보면 말도 안되는 2부 몽고반점에서 조차도 등장인물들의 내면의 갈등과 번민, 그리고 주저함과 흥분됨의 감정선이 아주 세밀하게 전달됨으로써 왠지 그 상황에서는 나라도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몰입을 자아내게 했다. 


  그래서인가.. 3부를 읽을 때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 주변에 관계를 맺고 있는 그녀들이 오버랩되었다.  20년 넘게 정신병원에 입원해 계신 첫째 외삼촌을 뒷바라지 하시는 어머니, 일 때문이라는 핑계로 다정한 데이트 시간 제대로 못가져본 무심한 남편의 아내..  '그녀'의 어렸을 때의 아픔, 현실이라는 곳에서의 책임감을 지니고 억척같이 살아가는 동안 잊었던 자기 자신.. '그녀'는 문득 왕십리 역 승강장에서 작은 풀잎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량한 인간임을 믿었으며, 그 믿음대로 누구에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성실했고, 나름대로 성공했으며,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락한 가건물과 웃자란 풀들 앞에서 그녀는 단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p.197



  그녀가 정신병원 병동안에서 동생 영혜의 변화를 기대하며 떠올리는 자신 내면의 부대낌의 말들은 너무 슬프게 다가왔다. 그저 소설속 한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혹시 내 주변 '그녀'들의 소리없는 외침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주말에 어머니댁에 갈 일이 있었다. 평소 다정다감한 아들을 기대하시던 어머니에게 아주 무뚝뚝한 아들로 포지셔닝(?)을 해왔는데, 그날은 왠지 ... 하는 마음에 다가가 텃밭을 일구시고 계시던 그녀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평소 소설을 거의 안 읽다가 요즘들어 몇편을 읽었을 뿐이다. 소설 자체의 속성이 그런지, 아니면 이 소설이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며 나의 마음을 성찰하고 주변을 돌아보게 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경험은 순전히 개인적인 것일 수 있어서 누군가에게 추천한다는 말은 쉽게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상 받은 작품이라고 하니 보편적 차원에서 독자에게 전해줄 뭔가가 있지 않겠는가?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