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의 독서휴식 - 나무처럼 자라는 집]
여백은 채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쉴 수 있는 가능성을 주는 곳입니다. p.170
오래전 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왔을 때가 생각난다. 물론 여행이라는 새로운 장소에서의 경험은 그 자체만으로 신선하고 많은 것을 얻는 시간이 되었지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행으로 부터 돌아와서의 경험이었다. 약 열흘 간의 여행 이후 내가 살던 봉천동 남부순환로 길을 거닐며 거리의 모습속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꼈던 것이다.
알자스 로렌 지방의 자연과 함께 어울리던 동화속에 나올법한 그런 집들을 보고 다녔고, 프랑스 파리의 수백년도 더 되었을 건물들 사이로 맥도널드 가게가 아주 작은 간판을 걸고 숨어 있는 듯 존재하던 그 거리에서의 익숙함에 있었던 귀국후 첫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대입구역 사거리를 나섰을 때 그곳에 있는 건물들에서는 건축물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건물을 뒤덮고 있는 제각각 디자인의 수많은 간판들이었다. 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정신이 어질어질 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저렇게 간판이 많으면 건물 뼈대만 만들어놓고 간판으로 마감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20여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거리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다.
여행을 다니며 보았던 아름다운 집들의 모습에 대해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은 정서가 다를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살다보면 다 익숙해져서 별로 그럴것도 없지 않겠는가 하는 반박도 있겠지만, 자연과 이웃하고 어울리는 모습을 30년 넘게 보고 자란 사람과 개발 논리에 의해서 자연을 정복하고 파괴했던 모습만을 보면서 서른에 접어든 사람이 환경을 대하는 태도는 자연스레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임형남 건축가가 쓴 이 책을 읽으면서 멀리 유럽까지 가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도 이런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늘 공간속에 살아가고 그 공간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면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어떠한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철학을 기반으로 우리나라를 돌아다니며 보았던 집들에 대해 1부에서 에세이로 전하고 있고, 2부에서는 상산이라는 마을에서 가족이 함께 살 집을 짓고자 하는 김선생의 의뢰를 받아 건축을 하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중 몇가지 인상깊었던 구절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탁자 위의 사과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초록색도 있었고 파란색도 있었고 보라색도 있었습니다. 생생한 사과를 그리기 위해서 그 안에 있는 많은 색들을 안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러나 사과는 쉽게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p.12
주체와 대상간의 교감이 이루어지지 앉는 볼거리는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고 압도는 하지만 공허합니다. 그 어떤 교리도 형태의 완벽성도 그리고 아름다운 비례도 사람이 담기지 못하고 사람과의 편안한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종이조각이나 박제된 유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p.32
익명성에 기대어 김대리, 최과장, 박부장, 그런 호칭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중략) 이제는 집도 사람도 다시 자신만의 이름을 찾아야 합니다. 집은 ‘껍질’이기도 하고, ‘재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입니다. p.82
‘요즘의 집’의 문제를 적어나가자면 한없이 나오겠지만 그 중 하나가 ‘거리’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람 사이가 너무 좁아졌습니다. (중략) 모두 모여 한 곳만 응시하고 산다고 사람들이 가까워지고 행복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의 거리는 지켜져야 합니다. 가족끼리의, 이웃간의 일정한 거리. 그 거리는 사람 사이의 예의 혹은 친밀함의 정도입니다. p.119
무엇을 안다는 것은 전체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는 것인데 때로는 부분만을 몇 개 취해서 그 인상만을 몇 개 앨범에 수납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연히 잡힌 인상이 대상에 대한 인식으로 굳어지는 것입니다.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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