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의 독서학습 - 음악본능]
“음들을 다루는 것에서는
내가 다른 피아니스트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
음들 사이의 여백 - 거기에
예술이 깃든다!”
<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 > p.419
내 방 한구석에는 어쿠스틱 기타 한대가 놓여있다. 잘은 못치지만 그래도 제일 자신있는 악기라면 기타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나름 '기타스쿨' 이라는 것을 여섯차례 정도 열면서 50여명 가까운 제자(?)들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공대생으로 한참 미적분을 해대고 있어야 할 때 PC통신으로 찾게 된 기초 화성학 관련 내용들을 공부하곤 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되돌아볼 때 나의 기타수준은 여전히 초보티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느낀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나의 음악은 교회에서 부르던 가스펠이나 모던워십 계열의 찬양곡들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한줄기를 팠으면 모르겠는데, 그냥 남들앞에서 반주 정도 할만큼만 연습하고 노력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대학시절 당시 음정과 리듬에 대해서 공부하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순정율과 평균율의 차이에 대해서 피타고라스의 배음률에 대한 물리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것을 수학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너무 쉽게 읽혀졌다. 그러고 보니 이 책 저자 - 나와 참 닮았다. 음악을 감성적인 측면에서는 전혀 볼 생각이 없나보다. 그냥 음악의 요소들을 분석적으로 해부해가기 시작한다. 때론 진화생물학의 이론들을 가지고 오고, 심리학과 의학, 해부학, 물리학 등의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면서 음악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그러니깐 이런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다.
포트레셔는 실험의 결론을 이렇게 내렸다. 노래를 못하는 사람은 뇌에서 내고자 하는 음높이에 관한 정보를 근육에 내리는 운동 명령으로 정확하게 번역하지 못하기 때문에 노래를 못하는 것이다. 이 결론이 옳다면, 뇌에서 일어나는 ‘번역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 노래 연습의 목적이어야 할 것이다. p.209
위의 이야기는 음치가 노래를 못하는 이유에 대한 가설검증으로 부터 도출되었다. 심미적이고 예술적인 음악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 해줄 것을 기대했다면 많이 실망할 만한 책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에서 한가지 중요한 관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내게 익숙한 음악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고, 절대적인 음악체계가 아니라 오랫동안 학습되었고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생긴 고정관념이라는 것이었다.
우리의 청각은 한 옥타브 안에서 최대 350개의 음을 구분할 수 있지만, 서양음악에서는 한 옥타브 안에서 12개의 음만 사용한다. p.110
서양문화권에서도 피타고라스의 꿈과 현실은 불완전하게 일치한다. 그러므로 서양음계의 음들이 우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조화로운 진동을 일으킨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적어도 파텔의 견해에 따르면, 그 음들을 ‘학습된 소리 범주들’로 간주해야 한다. p.128
어린아이들은 어떤 언어라도 배울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음악 문화에 대해서도 개방적이다. 생후 처음 몇 년 동안의 학습은 주로 필요 없다고 판단되는 능력들을 버리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p.299
책의 중간쯤 서양의 12음계에서 도레미파솔라시도가 나오고 - 이 책은 QR코드를 통해서 책을 보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구성이 되어 있다 - 이어서 인도음악의 도레미가 나온다. 정말 이질적이다. 서양식 음계에 익숙한 내게는 그것이 이상하고 잘못되어 있으며 기괴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 실제로 음악이 아닌 음계만 들었을 뿐인데도 느낌이 이상하다. 그러나, 문득 위 글을 읽으며 그것이 내게 익숙한 방식으로 음악을 대하려고 하는 나의 고정관념이었음을 알게 된다.
어쩌면, 음악이 아니라 다른 신념체계들도 그렇지 않을까? 내게 언젠가 생성된 도식(Schema)이 나를 둘러싼 주변의 문화와 관습에 의해서 견고해지고 그것이 마치 절대적 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에는 이런 아주 심플한 비유로 우리 인식사이 깊게 뿌리박혀 있는 도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음악적 규칙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내면화되는 것일까? 대답은 결국 모든 것이 통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중략)
이를 눈 덮인 숲에 길이 나는 과정에 빗댈 수 있다. 숲을 통과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일단 누군가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면, 다른 이들이 그 흔적을 따라 걸어 넓은 길이 생긴다. 그리하여 결국엔 숲을 건너는 다수의 가능한 길 중에 소수만 남는다. p.278
이 책의 전반부에는 리듬, 박자, 코드패턴 등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고, 후반부에는 음악치료와 모차르트 효과에 대한 이야기, 과연 음악이 학습능력을 향상시킬 것인가? 라는 질문들을 하며 실용적인 측 면의 각종 실험 근거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모든 사람을 위해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질문들을 음악에다가도 던져봤던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만한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조율된 기타에 아름다운 소리가 나듯, 독서를 통하여 잘 조율된 생각을 지닐 수 있길 기대한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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