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의 독서학습 - 서양미술사 ②]
미술의 모든 역사는
기술적인 숙련에 관한 진보의 이야기가 아니라
변화하는 생각과 요구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p.44
1년은 지난 이야기다. 둘째아이가 유치원을 가기 싫어하는 것이었다. 그맘때 아이들이 좋다가도 싫고 싫다가도 좋고 하는게 아닌가 싶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 왜 가기 싫은지를 물어보니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이 입에서 나왔다. 그중의 한가지 사례가 그림에 대한 것이었다. 미술창작 시간에 자신이 그림을 그렸는데 선생님이 '너 왜그렇게 못그리니?' 하면서 그린 그림을 찢어버렸다고 한다. 말이 안나오는 상황이어서 우리 부부는 고민에 빠졌다. 이런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 맡겨놓은 죄인이라고, 혹시 잘못이야기했다가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닌지? 혹시나 아이가 과민반응해서 괜한이야기를 한것은 아닌지? 아냐, 그래도 원장에게 이야기해서 조치를 취하는게 좋은거야? 아니, 아니지.. 살다보면 이런일 저런일 좌절도 겪고 그러는거 아니겠어? 이 일을 통해 뭔가 배우는것도 있을꺼야.. 등등 여러가지 생각들이 오고갔다. 그러다가 아이가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아팠고 유치원을 더이상 못나가게 되면서 그 유치원을 그만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몇달 뒤에 다른 엄마들로 부터 들려온 이야기로는 그반 선생님은 어떤 이유엔지 그만 두게 되었다고 한다. 소위 짤렸다 라고도 이야기가 되었다. 참으로 씁쓸한 상황이었다.
미술을 잘 그렸다 혹은 못그렸다 라고 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아니, 미술을 잘그렸다 못그렸다 라는 말은 과연 할 수 있는 것일까? 서양미술사 책을 읽는 중에 불현듯 1년이 넘은 이야기가 떠오른데에는 그 당시 아들이 겪었을 아픔과 함께 부모로서의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였던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기전에는 나 역시 잘 그린 그림, 못그린 그림으로 분류하곤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분류에 대한 기준을 나름 가지고 있었던 것도 같다. 소위 화실에 있는 아그립바라는 이름의 그리스인인지 로마인인지 하는 사람의 얼굴상을 보여지는 그대로 사진처럼 똑같이 그릴 수 있으면 그건 잘 그린 그림이고, 형태가 무너지거나 비율이 안맞거나 하면 못그렸다고 하는 생각.. 또 한가지는 아주 오래전 사람들. 혹은 원시인들은 미술에 뛰어나지 못했다거나 하는 막연한 추측도 나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게 그게 아니었다. 1장 신비에 쌓인 기원과 2장 영원을 위한 미술에는 고대 원시인들의 미술과 3000년도 훨씬 전의 이집트 미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의 생각을 깨주기에 충분했다.
원시 부족이 만들어낸 분양은 현대의 어떤 장인의 솜씨보다 더욱 섬세한 모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나하나의 모양을 만들기 위해 솜씨좋은 그 사람은 얼마나 몰입하며 땀방울을 흘렸을까?
이집트 벽화중에 있는 새의 모습이다. 보통 이집트 그림에서 사람을 기형적으로 그려놓은것 때문에 이 당시 사람들이 미술솜씨가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을 하는데 곰브리치는 그 벽화그림중에 새 그림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모든 종류의 새와 물고기들을 어찌나 충실하게 그렸던지 지금도 동물학자들은 그들의 종(種)을 확인할 수 있다. p.57
이 정도로 사실적이며 섬세하게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왜 인체를 특이하게 그려냈겠는가? 라는 질문이 곰브리치가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관점의 전환이다.
우리의 것과 다른 것은 그들의 기술의 수준이 아니라 그들의 착상인 것이다. 처음부터 이것을 깨닫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p.44
그렇기에 미술을 볼 때는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맞춰 이 그림이 잘 그렸느냐, 못그렸는냐를 볼 것이 아니라, 이 미술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림을 이렇게 그렸을까?를 질문하는게 올바른 방향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둘째아이 유치원 선생님이 내 아이의 그림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봐줬으면 하는 기대처럼 말이다.
지나간 시간의 미숙함을 후회해봤자 더 얻어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배우고 새로 알게 된 지식을 통해 세상을 이전보다는 조금 더 바람직하게 바라보려고 하는 노력이 앞으로의 삶에 있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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