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의 독서학습 - 서양미술사 ④]
제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술 중 VR 이란 기술이 있다. VR 은 Virtual Reality 라는 이름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실제 있는 것 처럼 눈앞에 펼쳐 보이는 기기이다. 오큘러스 리프트라고 하는 VR 회사는 페이스북에 2조 5천억원 가량에 인수되었다고도 하니 미래에 뭔가 삶을 크게 바꿔놓을 것만 같다. 가볍게 VR을 체험해보고자 한다면 구글에서 나온 카드보드를 이용하면 된다. 이는 약 3천원정도면 구입해서 스마트폰에 어플이나 유튜브를 띄워놓고 손쉽게 VR을 경험해 볼 수 있는데, 이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면 순식간에 파리의 에펠탑으로 가서 그 주변을 산책할 수도 있고, 아찔한 롤러코스트를 타며 스릴를 만끽할 수도 있다. 내가 고개를 돌리면 360도로 반응하는 화면이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그곳에 실제 있고, 본다라고 하는 착각에 몰입감 높은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다.
갑자기 VR에 대해 떠올리게 된 것은 중세를 넘어 르네상스 미술을 보게 된 사람들이 마치 이런 VR 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였다. 르네상스 예술의 문을 열었다고 까지 평가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조토 디 본도네... 이탈리아의 화가인 이 사람이 만든 그림은 놀랍다.
물론 지금에 와서 보면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곰브리치와 함께 한 시간여행속에서 이 미술이 사람들에게 보여졌을 상황을 떠올리니 그 당시 사람들이 받았을 충격이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분명히 2D 그림인데, 저 그림들은 조각상처럼 실제 벽 안쪽으로 조각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려진 것이다. 즉 3D 입체가 표현되었다.
이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나보다. 스마트폰을 써본 사람이 다시 폴더폰을 쓰기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조토 디 본도네와 그 이후의 화가들은 이와 같은 시도를 성화를 그릴 때에도 사용했다.
이제부터 나오는 그림속의 사람들은 '공간'속에 머무르게 되었다. 나무가 있고 담벼락이 있는 그런 공간속에 사람들이 배치가 되면서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하게 되었을거라며 곰브리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술이란 과학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중략) 어떤 한 방향으로의 새로운 발견은 다른 방향에서의 새로운 어려움을 낳는다. 중세의 화가들은 정확한 소묘의 규칙은 알지 못했으나 바로 이러한 결함이 그들로 하여금 완벽한 구성을 창출하기 위해서 그들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화면 전체에 인물을 배치할 수 있도록 허용했던 것이다. (중략) 현실세계를 거울과 같이 반영하는 그림을 그리는 새로운 관념이 채택되자마자 인물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그 이전처럼 용이하지 않았다. p.260
책장을 넘기다 너무도 충격적인 그림을 발견하였다. 한 수도원에 걸려 있는 벽화.. 그 그림은 매우 유명한 그림이기에 그리 새로울 것도 없었는데 나는 말할 수 없는 묘한 뭔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중요한 건 그림 자체보다도 그 그림이 그려져 있는 장소 때문이었다.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식당 벽화>
그렇다.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이다. 이 그림에 관련된 영화도 나올 정도로 유명하고 미술에서도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아지는 원근법에 대해 이야기 나올 때도 자주 등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장소가 식당이다.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공간과 함께 보면 건물의 벽이 그림안쪽으로 연장하여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 연장된 공간속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사를 한다. 수도사들이 저녁을 먹으러 식탁에 앉았을 때 그 벽쪽에도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사를 한다. 공간이 연장된 것처럼 보이기에 그들은 하나의 공간에서 그 사건속에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에 든다. 가상현실, VR 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쩌면 그 당시 예술가들은 가상현실 컨텐츠 제작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르네상스는 이처럼 현실 공간속에 가상현실 나타내 보이는 것으로 이어져 왔고, 심지어는 이탈리아와 피렌체의 돈 많은 가문은 화가를 사서 성인들과 함께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다.
언제나 성인 같은 생활만 할 수는 없는 거칠고 혼란한 생활 속에서 미술가의 기교를 빌어 만든 자신의 초상을 조용한 교회나 예배당에 걸어 성자나 천사들과 친숙하게 지내며 늘 기도드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다소의 위안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p.215
<티치아노, 성모와 성인들과 페사로 일가 중 일부 확대>
이 그림에는 성모와 베드로, 성 프란체스코 아래쪽의 페사로 가족이 기도하는 모습이 있다. 그 오른쪽에 한 여자아이가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을 빤히 쳐다본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여자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고 그녀 또한 나를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되는 순간 여기에 나오는 장면은 그저 평면에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평소에 경건한 삶을 살지 않더라도, 그림에 이렇게 그려놓는다면.. 그리고 그 그림을 사람들이 지나면서 계속 볼 수 있는 곳에 걸어놓는다면.. 그 사람은 이미지 마케팅에 성공하게 될 것이다.
단지 그림은 그림이지 뭐가 새로울 것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읽었던 한권의 책을 통해 화가들이 어떻게 세상을 표현하고 밝혀내려고 했는지 치열한 고민들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친구중에도 화가가 있는데, 그를 대단하게 보게 된 계기도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생각을 바꾸어주는 독서, 그런게 참된 독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의 생각을 깨주고, 성숙을 향해 가는 그런 독서를 계속 해나가려고 한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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