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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독서 학습

[김성민의 독서학습] 서양미술사 - E.H.곰브리치 (다섯번째)

[김성민의 독서학습 - 서양미술사 ⑤]


미술이 번창하기 위해서는 

왕립 기관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그 시대 미술가들의 그림과 조각을 기꺼이 사려고 하는 

구매자들이 많아야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p.480


 르네상스 이후 미술은 이전과는 다른 것에 관심을 집중시키게 되었다. 생각과 의미의 전달에서 사실적이고 실제적인 표현이 강조되었다. 가상현실같이 실제 공간상에 존재한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단축법과 원근법등의 기술들이 생겨났다. 곰브리치의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여기까지 읽는데도 너무 놀라왔다. 그런데, 16세기 초 베네치아와 북부 이탈리아 그림이라며 소개한 조르조네의 그림을 보면서 또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다지 대단할 것 같지 않았던 이 그림에 대한 진가를 발견한 것은 곰브리치가 이 그림에 대해 설명해주면서였다. 바로 이런 내용이었다. 


인물들이 특별히 세심하게 그려진 것도 아니고 구도에서도 별다른 기교가 엿보이진 않지만 이 그림은 분명히 화면 전체에 스며있는 빛과 공기에 의해서 하나의 전체로 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뇌우의 섬뜩한 빛이 그림 전체를 지배한다. 또한 이 그림이 그 시초일 듯 싶은데, 그림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움직이고 있는 무대가 되는 풍경이 이제는 단순한 배경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풍경은 그 나름대로 그림의 진정한 주제가 되고 있다.  p.331

 

 르네상스가 도래하고 나타난 작품들에서 배경은 공간과 실제속에 있는 주인공들을 묘사하기 위한 조연역할을 하였다. 그냥 병품이라고 해도 크게 상관없는 위치였다고 보인다. 그런데, 조르조네의 그림속에 나타난 먹구름과 번개는 전경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배경과 사람들이 상호 관계를 맺으며 하나가 거대한 서사의 일부분이 되는 것 같이 보였다. 


  내가 이 부분을 읽으며 너무 놀라왔던 것은 그동안 이런 방식으로 그림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만일 미술관에 가서 이와같은 작품들을 보게 된다면 그림을 좀더 공감하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16세기 후반으로 가면 매너리즘(Mannerism) 이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가 흔히 일을 너무 오래 하다보면 비슷한 방식으로 해나가는 것을 보고 매너리즘에 빠졌다라고 말하는데, 그때 쓰이는 표현이 미술사에서 나온 말인지 처음알게 되었다. 


그들은 미켈란제로의 나체상들을 그대로 베껴서 그것이 그들의 그림에 어울리든 안 어울리든 상관없이 그림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한 결과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울 때가 많았다. 예를 들면 성경 이야기를 그린 장면에 젊은 운동 선수들같은 우람한 체격의 나체 인물들이 가득 등장했다. 그 당시의 젊은 미술가들이 미켈란제로의 작품의 유행에 휩싸여 단순히 그의 수법(manner)만을 모방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보는 후대의 비평가들은 그 시기를 가리켜 매너리즘(Mannerism) 시대라고 불렀다.   p.361


  이런 매너리즘은 비단 미술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성공기업의 저주는 자신이 성공한 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같은 방식으로만 하다가 회사를 망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매너리즘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창의성도 마찬가지다. 이러이러한것이 창의적이다 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 창의적인 것들이 나오게 된 배경과 처음의 참신성의 본질을 생각지 않고 형식적인 manner 만을 따라가게 될 때 우리는 구태의연한 고정관념에 빠지게 된다. 

  이와 연관된 내용이 최근 디자인씽킹에 대한 책을 보다가 발견한 한 영국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프레디 요너라고 하는 이 디자이너는 2007년 런던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하였고 아주 엉뚱한 제품을 디자인한 것으로 화제다. 그 제품들이란 다음과 같이 모두 황당한 것들이다. 

1. 1년 내내 쓸 수 있는 립스틱 (길이가 거의 1m 가량)

2. 인간의 눈으로 읽기 불가능한 초 단위의소수점 이하 여섯 자리를 표시해 주는 시계

3. 토스트가 다 되면 5m 높이로 튕겨내는 토스터기 

  프레디 요너는 이런 말도 안되는 제품을 디자인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일을 꼭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어떤 기술을 사용하는 형식이 가능하다고 하여 본질을 외면한채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는 세태 풍자의 제품이 아니었을까 한다. 


  미술도 그렇지만, 과학의 분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최근 무수히 많은 IoT 관련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가능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Wifi 나 블루투스와 연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무엇이 가치가 있고 사람들을 위하는 기술인지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본다. 


  미술을 본다는 것은 이와 같이 사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눈을 연습해볼 수 있는 좋은 학습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종종 미술 전시회가 있으면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