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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본질게임] 시간을 볼 수 없는 시계

[김성민의 본질게임 - Hautlence 스위스 명품 시계]


가격은 우리돈 1500만원, 그러나 시간을 볼 수 없는 시계가 있다. 게다가 초등학교 문방구에서나 팔듯한 미로찾기 게임이 들어 있는 모양이다. '이런 걸 누가 사?' '혹시 그돈 주고 사는 사람은 돈자랑하려고 하는거 아니야?' 등등의 생각이 넘쳐나게 만드는 시계다. 이 시계가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이런 고가의 명품시계라는 것이 대중화되어 많이 팔리는 걸 목적으로 하지는 않을테니깐. 하지만, 문방구에서 천원짜리 미로찾기 게임을 보면서는 도무지 떠올리지 않았을 생각을 1500만원짜리 시계를 보면서 하게 된다. 


"과연 시계의 본질은 무엇일까?" 



 시계는 당연히 시간을 보기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답변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아니 말이 안되는 점이 있다.  첫째, 현재는 시계(특별히 손목시계)이외에도 시간을 알 수 있는 무수한 방법들이 있다. 시간을 알고 싶다면 스마트폰을 꺼내 보면 된다.  지하철이나 버스정류장에도 전광판 시계가 세계표준시각을 기준으로 한 정확한 시간을 알려준다. 이도저도 아니면 지나는 사람에게 잠시 물어보면 된다. 그리고, 단지 시간을 알려고 한다면 오천원도 안되는 아이들 전자캐릭터시계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시간을 보기 위해' 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다. 


 시계는 악세사리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라 보여진다. 흔히 시계는 남자 패션의 완성이라는 말도 이런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2년전 애플와치라는 이름으로 스마트와치를 선보였던 애플사는 시계의 본질을 '기기'로 보지 않고 '악세사리'로 보았기에 디자인이적 가치를 추구하는 전략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관점에서 아무리 잘 봐줄려고 해도 미로찾기 시계는 납득이 잘 안된다. 어쩌면 우리는 표면적인 이유에서 한걸음 더 들어가봐야 할지 모르겠다. 시간을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부터 말이다. 




  현대사회는 속도, 정확성, 효율을 중시해왔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남는 영화 장면중 하나가 '쉰들러 리스트'에서 유대인 랍비의 작업속도를 측정하려고 독일군 장교가 시계를 꺼내든 모습이다. 이는 과학적 관리법을 주창한 테일러에 의해 만들어진 효율의 극대화와 관련되어 있다. 작업을 잘게 나누고 시간을 측정하여 관리하면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이론에 근거하였는데, 눈부신 산업발전의 뒷편에는 테일러의 기여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독일군 장교의 시계는 랍비의 단위 제품을 생산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로 사용되었고, 우리시대 대부분의 시계는 이런 목적을 가지고 존재해왔는지 모른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출근전쟁, 유치원버스를 제시간에 태워보내려고 아이를 닥달하는 분주한 모습들.. 지나는 길목에 피어있는 꽃한송이 살펴볼 시간도 없이 목적지를 향해 가야만 하는 바쁜 일상. 이 모든 것들이 효율이라고 하는 독일군 장교의 시계로 부터 왔다고 본다. 


 그런데, 미로찾기 시계는 그런 익숙한 시계를 떠나 시간을 알게 하는 것이 아닌, 시간의 여유를 얻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시계를 만든 Hautlence사의 CEO도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reconnect를 위해 disconnect 할 수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라는 말을 하였다. 우리가 시간을 알고자 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었던게 아닌가. 그런면에서 우리를 쪼이고 밀어붙이는 시계가 아닌, 시간의 여유를 가져보라고 말하는 듯한 이 시계가 반가울 수 밖에 없다. 우리 속담에도 '바쁠 수록 돌아가라' 라는 아이러니 한 말이 있지 않은가. 어려서는 '아니 바쁘면 더 빨리 해야지... 왜 돌아가란 말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급하게 하다가 오히려 일을 망치는 경험이 여러번 쌓이면서 선조들의 지혜가 옳았음을 알게 된다. 


  내가 당장 1500만원짜리 시계를 사서 차고 다닐 수는 없지만, 내가 시계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시계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산다면 좀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한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