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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독서경영] 음식의 언어 - 댄 주래프스키

[김성민의 독서경영 - 음식을 통해 세상을 알다]


케첩에 얽힌 사연은 ... 결국 세계화의 이야기이며, 

하나의 세계적 강대국이 

몇 세기에 걸쳐 세계를 지배해온 이야기다.  p.124



 외국에서 건배를 할 때 '토스트' 라고 하는 이유는?  케첩이 중국말이라는 것이 사실? 덴푸라가 포르투칼에서 온 말로 영국의 피시앤칩스와 사촌이라고? 메뉴판만 보면 그 식당의 품격을 알 수 있다? 더 맛있는 음식 이름이 있다? 마카롱과 마카로니의 역사?  읽어갈 수록 흥미로운 이야기에 빠져드는 책이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나름 재미있게 읽었던 이 책에 나오는 작가의 몇가지 통찰과 읽기 어려웠던 부분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저자는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스탠포드 대학 언어학 교수이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이책을 읽기 시작하는 사람에게 있어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책의 제목에 '음식'이 들어가 있기에 이 책은 서점의 요리와 음식관련한 곳에 분류가 되어 있고 그런 종류의 책들이 갖는 일반적인 형태에 대한 선입관을 가지고 본다면 당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언어학을 가르치면서도 음식 덕후로 보인다.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으로 부터 시작해 골목골목의 음식점과 아이스크림 가게등을 책에서 구체적으로 탐색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그곳에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어린시절 샌프란시스코의 들어선 가게들의 모습도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과연 언어학자가 음식을 이야기한다면 뭘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며 보는데 예상치 못하게 흥미롭다.  


  딸아이가 이렇게 묻는 장면으로 책은 시작한다. "아빠? 왜 케첩은 항상 '토마토 케첩' 이라고 앞에 토마토가 붙어요?"  이 질문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먼저는 케첩은 당연히 토마토로 만들어지는게 아니냐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케첩은  Ke - Chaip 으로 발음되는 중국말로 생선젓갈이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겠다. 어떻게 Ke-Chaip 이 지금 우리가 서양식 패스트푸드를 먹으면 항상 빠지지 않는 그 토마토 케첩으로 이어졌는지.. 그 과정이 무엇인지가 궁금할 수 있다. 이 책의 앞부분의 가장 버라이어티 한 장면은 생선젓갈이 서양식 케첩이 되기까지의 역사적 변화과정이다.  그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찰스 만이 자신의 저서 <1493년>에서 주장했듯이, 유럽이 신세계를 그토록 맹렬하게 식민지화하고 수탈한 이유는 아시아 수출품에 대한 유럽의 욕망이자, 은을 향한 중국인들의 욕망 때문이었다. 만의 문장을 빌리면, 서구의 입맛과 동양의 생산물의 만남은 우리의 현대적인 “전 세계에 걸친 상호 연관된 문명”을 창조한 것이다. p.123


케첩에 얽힌 사연은 (중략) 결국 세계화의 이야기이며, 하나의 세계적 강대국이 몇 세기에 걸쳐 세계를 지배해온 이야기다.  p.124


그리고 이어서 그것이 세계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작가의 통찰을 전해준다. 이미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치밀한 근거를 가지고 변천사를 설명해왔기에 작가의 주장은 엄청난 설득력을 가지고 전해진다. 


 또한 이 책은 역사적 맥락만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 메뉴판이나 과자봉지에 있는 문구들을 통해 그것을 작성한 사람의 심리와 실제 그 요리의 가치등을 밝혀내고 있다. 


요즘의 폼 나는 메뉴는 가볍고 간결하며, 싸구려 충전용 형용사나 ‘진짜’ 재료를 쓴다는 끝없는 변명을 담고 있지 않다. 당신의 지위가 높다는 것을 보여줄 때는 말이든 음식이든 적게 쓸수록 더 좋다. p..48


여러분과 나는 포테이토칩이 실제로는 건강식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중략) 언어에 드러나 있는 증거들은 포테이토칩 광고업자도 자기들 제품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와 마찬가지로 알고 있음을, 또 우리가 그 사실을 안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음을 입증해준다.  p.212


  이런 이야기의 근거로 메뉴에 쓰여 있는 형용사 표현이 중독을 강조하느냐, 섹스어필을 하느냐에 따라 고급 음식점과 저급 음식으로 나뉘어진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맛집 블로그 리뷰를 분석해서 사람들은 식당의 어떤점때문에 평점을 높게 주거나 악플을 달거나 하는 것을 보여준다. 한가지 의미있는 내용은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음식점의 음식 자체가 아니라 종업원의 태도, 오래 기다림, 냉방이나 난방등의 불편한 환경등에 영향을 받는 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디저트의 중요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 말도 나온다. 


리뷰에서 디저트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수록 그들이 그 레스토랑에 매기는 평점은 높은 편이다. p.200


  만일 요식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귀담아 들어야 할 말로 보인다. 


 책이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1부에 가장 몰입이 잘 되었고, 2부로 가면서 읽어내려가기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일단 나오는 음식자체가 서양식 요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음식을 떠올릴 수가 없으니 말하는 맥락이 안그려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세부적인 음식이름에 대한 언어적 관점보다는 저자가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통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큰 맥락을 생각해가면서 세부내용은 대략 스킵을 하며 읽는 것도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내 머리속에 충격을 주었던 한가지 내용을 공유하고 마치고자 한다. 그것은 고정관념에 대한 내용이다. 


이 두가지 발명(통조림, 냉장법)으로, 소금은 이제 식품 저장용으로서의 중요성이 점점 줄어들었다. (중략) 그러나 우리는 자라면서 짠 음식에 익숙해져버렸다. (중략) 지금같은 여건에도 우리는 그런 염장식품을 계속 먹는다. 베이컨은 “냉장고의 시대에는 실질적인 효용이 없고 단지 쾌감을 줄 뿐이지만, 그것은 절대 과소평가될 수 없는 쾌감이다”  p.246


외국 레스토랑에서는 샐러드를 먹을 수 있지만, 전통적으로는 중국에서 당근이나 셀러리나 벨 후추를 날것으로 우적우적 씹어 먹는 광경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오리 뇌수를 먹는 광경처럼 괴상해 보였을 것이다. p.340 


우리가 어떤 음식이 맛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서울 사람들은 순대를 소금에 찍어먹어야 한다고 하지만, 부산 사람들은 순대는 당연히 막장에 찍어 먹는 거라고 생각한다. 유럽의 아주 비싼 고급 치즈일 수록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한다. 누구는 삭힌 홍어가 없으면 잔치도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는 반면, 냄새조차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절대적인 맛의 음식이라는 것이 있을까? 저자는 소금이 저장법으로 오랜 역사속에 사용되다가 저장기법으로 사용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와서도 그동안의 익숙한 맛때문에 사람들이 소금의 쾌감을 찾게 되었다고 말한다. 어쩌면 절대적인 맛이란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익숙한 것에 대한.. 혹은 희소한 것에 대해 가치를 매기는 과정이 맛의 차별을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현대에 와서 식탁에서 익숙하게 먹는 샐러드라는 것은 가까운 중국문화권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광경이었을 거라는 말에도 충격이었다. 세계화 속에서 우리는 이리저리 섞이고 익숙해지면서, 적어도 음식에 있어서는 우리 고유의 것이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기 힘든 상황에 온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그런 내 생각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은 우리 모두가 이민자라는 사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문화도 고립된 섬이 아니며, 문화와 민족과 종교 사이의 혼란스럽고 골치 아픈 경계에서 어떤 훌륭한 특성이 창조된다. p.98


앞으로 음식을 먹을 때조차도 페르시아나 지중해로 부터 시작한 역사의 큰 흐름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독서였다고 자부한다.  읽기는 쉽지 않을 수 있으나 인생의 '맛'을 다양하게 느끼며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