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경영/독서경영_자기경영

[김성민의 독서경영] 아날로그의 반격 - 데이비드 색스

[김성민의 독서경영 - 아날로그의 반격]


“가르침과 배움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입니다.” 

<스탠퍼드대 교육학 교수 래리 큐번>

  p.360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말은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면서 쉽게 외면받는 것 같다. 관계보다는 '지식의 전달' 이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컨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피교육생에게 주는 것으로 교육의 직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그런 방향말이다. 강의를 하면서 나는 '관계'에 얼마나 신경을 써왔을지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이 책은 매우 뻔한 책인듯 하면서도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저자가 주장하는 거라면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정도. 그러나 레코드판과 사진, 몰스킨 노트, 서점, 보드게임에서 취재한 인터뷰들을 그저 나열하여 서술하고 있을 뿐인 이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잊고 있던 아날로그의 힘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것은 저자가 이야기한바와 같이 단지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때문은 아닌것 같다. 나는 이것이 디지털의 언캐니밸리라고 생각한다. 로봇의 언캐니 밸리(로봇이 인간과 닮아갈때 점차 호감이 증가하다가 갑자기 비호감으로 바뀌는 발전구간)와 같이 발전의 과정속에 아날로그에 미치지 못하는 특성때문에 디지털을 밀어내고자 하는 심리적 상태가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여전히 디지털이 극도로 발전을 하게 되면 (예를 들어 촉감까지도 가상현실속에서 느낄 수 있을 정도) 그때도 아날로그를 찾을지 궁금하다. 


그러나, 그와는 별도로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삶에는 몇가지 변화가 있었다. 먼저는 그동안 구입희망리스트에 넣어놓고만 있었던 보드게임 '카탄의 개척자'를 사서 아이들과 주말에 5시간 정도를 양과 철광석을 거래하면서 보냈다는 사실이다. 또한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 과학잡지를 정기구독 신청하게 되었다. 순전 이 책을 읽다가 갑자기 저지른 일이다. 멀리 외국에 있다가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지인을 만나러 백화점에 갔던 경험도 내게는 특별했다. 물건을 사러 간것은 아니지만, 모임장소를 찾아가는 중에 발견한 Dyson 매장에서 Air multiplier (일명, 날개없는 선풍기)를 여러대 직접 만져보고 바람세기를 비교해보고 했다. 이것은 그 상품에 대한 인터넷 리뷰를 수십편 보는 것보다도 더 강렬한 경험이었다.


저자는 아날로그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분야를 하나씩 지정하여 파헤쳐가고 있었다. 가장 처음에 나온 것이 LP의 부활인데 실은 가장 공감이 안되는 내용이었다. 물론 LP 팬들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디지털 음악보다 LP와 고가의 오디오시스템을 통한 음악이 더 좋겠지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멜론이나 벅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서 원하는 음악을 어디든 이동하며 자유롭게 듣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LP라든지 눈에 보이는 형태의 아날로그를 '소유'함에는 비용이 크게 발생한다. 어쩌면 가진자들만이 누리는 일명 귀족문화의 한 단면에 대한 것은 아닐까? 대표적으로 몰스킨에 대해 다룬 두번째 장도 그러했다. 그냥 종이노트일 뿐인데, '몰스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유로 창의성이 쏟아져나올것 같은 고가 프리미엄 제품이 된다. 종이에 직접 펜으로 적는 아날로그 표현방식이 디지털에 비해 갖는 장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2장의 서술방식은 몰스킨이라고 하는 브랜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서 왠지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 사이에 조성된 뭔가 있어보이도록 치장한 사치품으로서의 아날로그를 소개하는 듯하여 불편한 감이 있었다. 


그러던 중 책의 뒤부분으로 갈 수록 아날로그가 지닌 '기능'에 좀더 초점을 맞추면서 공감을 가지며 읽게 되었다. 내가 보드게임을 사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책의 초반을 지나 중반을 넘어서면서였다. 우리는 디지털 세상에서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얼마나 악의적인 댓글이 범람하는지를 경험을 통해 안다. 만약 서로 만나서 눈앞에 대면하며 이야기했다면 그정도 단어와 표현은 절대 쓰지 않았을 말도 보이지 않는 디지털공간에서는 아무 거리낌없이 주고받는 것 말이다. 디지털은 평소에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억압된 생각을 해방시켜주는 자유로운 배출구인가? 아니면 사람이 앞에 없다고 해서 거칠게 분노를 증폭시켜주는 왜곡된 현실감각을 키우는 잘못된 공간인가?  어쨋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을 앞에 두고는 인터넷의 공간과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달라진 '관계'의 공간속에서 서로가 다양한 학습과 배움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컴퓨터화면을 보면서 '마블' 게임을 하는 것과 직접 보드판을 꺼내어 모노폴리나 부르마블을 하는 경우의 차이일 것이다. 


“우리는 독자가 잡지를 끝까지 읽고 나서 느끼는 더 스마트해지는 듯한 느낌을 팝니다. 그건 일종의 카타르시스죠” p.213


내가 아이들을 위한 과학잡지를 정기구독하게 된 이유가 바로 '완독 가능성'때문이었다. 어린시절 생각해보면 보물섬을 한권 다 읽고 다음호가 올때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그 설레임은 고학년으로 올라가서 학생과학이라는 잡지로 이어졌는데,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들이 잡지 한권안에 골고루 정리가 되어 있어서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나는 뭔가 더 많이 알게 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한시간동안 서핑을 하며 무수한 블로그 글을 읽는다고해도 그때의 그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냥 시간을 보냈다라는 느낌밖에는.


그래서 저자는 인터넷 신문들이 독자수를 더 많이 갖게 되었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그 신문사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으로 생각해보자면 실상은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버즈피드나 허핑턴포스트 같은 새로운 디지털 매체가 <뉴욕타임스>보다 많은 독자를 확보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들 독자의 충성도를 <뉴욕타임스> 독자들의 충성도와 진지하게 비교하기는 어렵다. 한쪽은 사람들이 신문사의 브랜드와 정체성을 믿고 꾸준히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곳이고, 다른 쪽은 사람들이 낚시성 헤드라인에 걸려서 그때그때 클릭하고 휙 훑어보는 곳이기 때문이다. p.221


디지털에 익숙한 내가 가장 많은 기사를 접하는 것은 페이스북과 네이버였다. 둘다 자체 기사를 발행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기사들이 링크와 링크를 타고 내게 전달되어 온 것뿐이니 내게는 어떤 매체에 대한 충성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충성도'를 모두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지는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단지 숫자만으로 디지털 세상을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는 말에는 동의가 되었다. 


책의 후반으로 가면서 아날로그가 지닌 '기능'의 탁월함이 보다 잘 부각된 것 같다. 특히 교육에 있어서의 아날로그와 물건을 팔고 사는 매장에 있어서의 오프라인 상점 부분이 그랬다.


“오늘날의 리테일은 둘러보기 위한 외출입니다. 리테일은 상품의 구매 장소라기보다는 공간에 대한 느낌과 경험이죠.”  <도나 파즈 코프먼> p.242


 한때는 온라인 판매만을 하는 델 컴퓨터가 비즈니스 성공사례로 꼽혔던 적도 있다. 그런데 요즘의 잘나가는 글로벌 기업들도 오프라인 매장을 내려고 하는 움직임이 빈번하다. 책에도 나오는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이다. 나도 맥 제품을 쓰고 있는 까닭에 맥쓰사라고 하는 카페에 가입해서 정보를 얻곤 하는데, 그곳에 회원들이 가장 불만스러워하는게 왜 일본에도 몇군데나 있는 애플스토어가 우리나라에는 들어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최근 압구정의 가로수길에 애플스토어가 오픈될 것이라는 소식이 일자 전국에 있는 애플 매니아들이 고대하는 분위기다. 온라인으로 모든 것을 할 것만 같이 인터넷에 들떠 있던 시대를 지나고 났더니 다시금 오프라인과 아날로그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아날로그에 대해서 가장 크게 공감된 부분은 교육 분야였다. 전자칠판이다 e-learning 이다 하면서 디지털화를 하는 것이 더 나은 미래 교육처럼 사람들이 생각해갈때 우리가 혹시 본질을 놓치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손가락 그림을 그리는 활동은 종이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키워줄 분만 아니라 젖은 물감이 팔에 떨어지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손가락으로 물감을 문질러서 색깔이 섞이는 것을 시각적으로 학습하게 해준다. 또한 물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며 공간 지각력도 배우게 된다. 만약 물감을 다른 아이에게 던져서 그 아이가 운다면 선생님은 왜 그게 좋지 않은 행동이고 왜 사과해야 하는지를 일러줌으로써 사회화를 학습시킬 것이다. (중략) 태블릿에서는 유리표면에 손가락 끝만 갖다 대는 것으로 축소된다. p.326


앞서 이야기한바와 같이 이것이 디지털의 언케니밸리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흙과 아스팔트 위에 발을 붙이고 있지, 아이패드위에 발을 올리고 있진 않다. 내가 숨쉬는 공기도 아날로그이고 내가 먹는 음식도 아날로그이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놓은 디지털 세상이라고 해도 그곳의 음식은 먹을 수도 소화시킬 수도 없지 않은가. 교육도 추상적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현실속에 나의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데 집중해야 함을 이 책을 읽으며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참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보드게임을 온라인 가격비교사이트에서 구입을 신청했고, 아이들에게 맞을 만한 적절한 잡지를 찾아보는 것도 포털의 검색기능을 이용했으며 정기구독신청도 내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하게 되었다. 백화점에 가서 모니터 스크린안에 있는 물건이 아닌 실제의 물건을 눈앞에 보며 백화점 특유의 향수냄새와 나를 대우해주는 분위기에 휩싸이기도 했으나 점심 식사 후 자리를 옮기며 커피숍을 찾을 때는 손안의 지도앱을 이용해 그것 또한 검색을 하였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뻔하게 아날로그가 좋다는 찬양 일색의 책인가 싶었지만, 읽고나니 인간의 삶이 아날로그냐 디지털이냐로 딱 떨어지게 분리될 수 없음을 더욱 인식하게 되었다. 

이 책의 원제가 'the Revenge of Analog' 로 아날로그의 복수 라는 의미일텐데, 실제로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복수'를 하는 아날로그라기 보다는 디지털로 충족되지 못하는 인간 삶의 풍성함을 다시 찾아갈 수 있도록 보완해주는 것이 아날로그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 아날로그를 향유하는데에도 여전히 우리는 디지털 채널을 이용하는 것도 자연스러울 것이다. 


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떠들썩한 요즈음, 한번은 뒤를 돌아보고 잊고 지냈던 가치를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독서였다고 생각한다. 이 가을 복잡하고 바쁜 현대인에게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