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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독서경영] 메트릭스 세계를 꿈꾸다 - 호모데우스 / 유발 하라리

[김성민의 독서경영 - 호모데우스]


호모 사피엔스는 한물간 알고리즘이다. 

인간이 닭보다 우월한 점이 무엇인가? 

정보 흐름의 패턴이 

닭들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사실밖에 

더 있는가. p.522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던 그의 첫 책 '사피엔스'의 후광을 입고 등장한 '호모데우스'는 책이 나온지 두어달 정도만에 국내에서만 10만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600페이지 가량 되는 분량의 책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행보가 아닐까 싶다. '신이 된 인간'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호모데우스'를 읽기 전에는 인간 지성의 확대로 인해 인간성을 최대로 발전시켜 신과같은 위치에 도달해 있게 되는 미래를 그려놓고 있겠다 하는 예상을 했었다. 그러나 그런 예상은 모두 틀렸다. 


  오히려 반대다. 이글 첫머리에 인용한 문장과 같이 하라리는 인간을 닭과 비교해 정보 데이터 패턴이 복잡하다는 것밖에는 차이가 없는 존재로 격하시켜 버렸다. 전작 '사피엔스' 가 인간에 관한 책이었다면, 이 책에서는 인간이 동물들을 지배하는 절대적 위치에 도달한 '사피엔스' 종이 되었듯, 인간 이후, 사피엔스 이후의 인간을 지배하게 될 존재인 '호모 데우스'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호모데우스는 '데이터' 이다.


 하라리는 이 결론을 설득력있게 엄연한 사실로 이해시키기 위해 아주 긴 여정을 거친다. 


 1부가 시작하기 전, 1장에서는 인간이 역사속에서 가난, 질병, 전쟁으로 고통받았지만 과학 발전과 사회 시스템 변화로 인해 풍요와 건강,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설탕이 화약보다 위험하게 되었다는 말로 요약되었다.  


"2012년 전 세계 사망자 수는 약 5,600만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62만명이 폭력으로 죽었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이 12만명, 범죄로 죽은 사람이 50만명이었다). 반면 80만 명이 자살했고, 150만 명이 당뇨병으로 죽었다. 현재 설탕은 화약보다 위험하다." p.32


 그리고 행복과 불멸을 거머쥐게 된 사피엔스가 다음으로 신이 되고자 할 것이라는 운을 띄운다. 여기까지만 해도 대략 이 책을 읽기전의 내 생각이 맞구나 했다. 그러나 이건 그저 떡밥이었다. 1장에 나오는 '잔디' 이야기도 그랬다. 4페이지를 걸쳐 잔디의 유래와 역사를 이야기한다. 아주 흥미로울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인데 전체 맥락에서는 왜 이야기가 되고 있는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인류는 이런 식으로 잔디를 정치권력, 사회적 지위, 경제적 부와 동일시하게 되었다. (중략)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처럼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에서 해방되어 다른 운명을 상상하기 위해서이다. p.96,98


 가만히 살펴보니 하라리는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사실을 독자에게 알게 하려고 했던게 아니었다. 잔디가 어떻게 시작하였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게 되었을 때 우리가 새집을 얻어 앞마당에 잔디를 깔지 말지를 고민하게 되고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과거를 제대로 앎으로써 그것으로 부터 '해방' 되어야 함을 주장하기 위해 잔디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이제 1부와 2부의 인류의 벌거벗은 참 모습을 찾아가보는 장대한 여행을 시작해도 되는 타당한 이유가 생기게 된 것이다. '해방' 이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 인류는 어떠한 생각의 틀에 갇혀 있는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하라리는 철저히 그것들을 깨 부수는데 이 책의 절반 이상을 사용하고 있다고 보면 가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1부 호모사피엔스 세계를 정복하다 에서의 한문장을 꼽는다면 이것이 되겠다. 


우리가 세계를 정복한 주요 요인은 여럿이 소통하는 능력이었다. p.187


 하라리는 매머드나 잡고 하던 인류가 2만년만에 우주선을 쏘아올리는 존재가 된 이유를 소통능력이라고 하였다. 이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하라리는 인간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의식과 감정, 자유의지까지 없애는 작업을 시도한다. 그 작업을 위해 사용한 칼은 '생명과학' 인데 아마도 자신만을 위해 특수 제작된 도구로 보여진다. 


 여기서 결론적으로 '의미의 그물망' 이라는 용어로 인류 역사속에 인간이 서로 단결하고 국가를 세우고 같은 뜻을 품고 했던 '허구'에 대한 폭로가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이 공동의 이야기망을 함께 짤 때 의미가 생겨난다. (중략) 왜 이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의미있는 일로 생각할까? 그들의 친구와 이웃들도 같은 견해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믿음을 강화하면서 자기 영속적인 고리를 만든다. (중략)

그런데 몇십 년, 몇백 년이 지나면 의미의 그물망이 풀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그물망이 만들어진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의 그물망들이 생기고 풀리는 것을 지켜보고, 한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 후손에 이르러 완전히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p.207


 그렇다. 하라리는 인류가 간직해온 의미의 그물망으로 종교, 국가, 이데올로기, 화폐, 법인, 제도, 브랜드 등을 끊임없이 쏟아내면서 그것들이 허구임을 이야기 한다. 이것은 본격적으로 2부에서 이어지고 있다.


2부 : 호모사피엔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다 에서는 앞서 나온 의미의 그물망을 좀더 깊이 파헤치며 독자로 하여금 하라리의 주장을 확신으로 받아들이게끔 만드는데 공을 드리고 있다. 


허구적 신화를 의존하지 않고는 대중을 효과적으로 조직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허구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실제를 고집한다면 그를 따를 사람이 별로없을 것이다. p.237

허구는 나쁜 것이 아니다. 허구는 꼭 필요하다. 돈, 국가, 기업 같은 허구적 실체에 대한 널리 통용되는 이야기가 없다면 복잡한 인간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중략) 우리는 우리를 도우라고 그것들을 발명했다. 그런데 왜 그것들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희생하는가?  p.247


 의미의 그물망으로 모두가 같은 생각을 지닌한 그것이 실제하지 않아도 실제로 작동하는 것이 됨을 여러가지 사례로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돈'이 되겠다. 돈은 그저 종이 조각밖에 안되는 것이 내가 만원짜리 종이를 가지고 빵가게에 가면 가게 아줌마가 그것을 받고 만원어치 빵을 건네주는데, 가게 아줌마도 그 돈의 가치를 믿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돈에 가치가 부여되어 있다는 '의미'를 빵가게 아줌마가 저녁반찬하려고 산 고등어를 파는 생선가게 아저씨도 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 하고 이렇게 확장되다보면 전세계 사람들이 같은 의미의 그물에 걸려 있음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하라리에게 있어 이게 돈 이야기로 끝나지 않음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중세의 종교를 이어받은 근대는 '자본주의 교'를 태동시키고 모두가 그 자본주의의 망령을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근대는 놀랍도록 간단한 계약이다. 계약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이다. 즉 인간은 힘을 가지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하는 데 동의한다는 것이다. p.277


 근대의 모습을 기술하는 하라리의 통찰력은 대단하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생각의 당연함을 집단 전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그물망으로 해석하면서 사회 변동이 개개인의 가치와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을 기가막히게 설명하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사회는 개인의 욕망을 억제해 어떤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파이의 크기가 고정되어 있던 때에는 사회 화합을 위해 그 욕망을 제어해야 했다. 욕심은 나쁜 것이었다. 그런데 근대에 와서 세계가 거꾸로 뒤집혔다. 근대는 인간집단에게 평형 상태가 혼돈보다 훨씬 더 무섭고, 탐욕은 성장의 원동력이므로 선한 힘이라는 확신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더 많이 원하라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탐욕을 억제하던 오래된 규율들을 없애버렸다. p.303


 소비가 미덕이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절약이 미덕이었다. 아껴서 은행에 예금을 하는 것이 잘 사는 사람들의 습관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금리 제로 시대에 있어서 은행에 돈을 넣어만 두는 것은 땅을 파고 묻어둔 세번째 종이 혼났던 것과 같이 악하고 미련한 짓이라고 인식된다. 소비하되 없어질 것이 아니라 계속 남겨질 것, 경험에 투자하고 소비하라고 이야기한다. 가치의 전도가 발생한 것이다. 오래도록 중요하다고 여겨져왔던 것들이 시대가 바뀌고 더이상 눈길을 줘선 안되는 것이 되었다. 지하철에서 호통치는 나이든 어르신을 만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현재 젊은 세대의 가치가 달라서임을 쉽게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힘을 얻은 대가로 의미를 포기한 인간은 우주에서의 존재의미가 없이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 것이 '인본주의'라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절대적인 '보편'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이 사라진 세상에 가장 중요한것은 개개인 내면의 음성, 경험, 자유의지 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장대한 우주적 계획이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했다면, 인본주의는 역할을 뒤집어 인간의 경험이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한다. p.307

윤리학에서 인본주의의 모토는 ‘좋게 느껴지면 해라’이다. 

정치학에서 인본주의는 ‘유권자가 가장 잘 안다’고 가르친다. 

미학에서 인본주의는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p.319

경제학에서 인본주의는 ‘고객은 항상 옳다’ 

교육에서 인본주의는 ‘스스로 생각하라’


 하라리가 말한 바를 따라 보자면 지금은 자유주의 인본주의가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고대 플라톤의 '국가' 에 나오는 소수 특별한 사람에 의한 정치 '엘리트 주의' 대신에 우리는 모두가 한표씩 행사하는 '민주주의'가 더욱 가치있고 올바른 정치제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본주의교를 넘어 인본주의교를 따르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하라리는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라리의 입장을 따라 오다보면 알게 되는 사실은 이것이 절대적으로 올바르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모두가 지닌 의미의 그물망에 맞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가변적이며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3부에서 전개될 미래적 상황을 이해하는 토대로서 언급했다고 볼 수 있다. 


 2부에서는 특별히 자유주의 인본주의, 사회주의 인본주의, 진화론적 인본주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하라리가 지지하고 있는 입장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정리해보자면, 유발 하라리는 철저한 진화론적 역사학자이다. 게다가 유물론자이다. (인간에게 영혼도 의식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역사에 있어서 종교, 과학, 인본주의, 자유주의 등 모든 것은 인간 진화 단계에서 나온 우연적 결과물로 보고 그것이 절대화된 어떤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유발 하라리가 주창하는 것은 아돌프 히틀러의 주장과 유사하다. 실제로 그는 히틀러가 추구한 진화론적 인본주의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 

 물론 히틀러는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언급을 하지만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입장의 근본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책 전체를 통해서 알 수있다. 


나치즘의 공포 대문에 진화론적 인본주의의 통찰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모든 진화론적 인본주의자가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며, 인류가 더 진화할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 세력이 반드시 경찰국가와 강제노동수용소의 설치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중략) 진화론적 인본주의는 근대 문화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21세기의 형성에는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p.356


이런 그가 생각하는 진화적 세상에서의 사피엔스 이후는 어떻게 펼쳐질까? 그것이 3부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자,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3부 : 호모 사피엔스 지배력을 잃다.  일단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래의 주인공은 더 이상 사피엔스가 아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지만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궁극적으로는 '데이터'라는 말을 하고 있다. 


하라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그의 생각의 근간을 이루는 생명과학이라고 하는 차고넘치는 증거들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야기 한다. 영혼도 없고, 의식도 없고, 자유의지도 없다고..


오늘날 우리는 뇌 영상을 이용해 사람의 욕망과 결정을 본인이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예측할 수 있다. p.391


인본주의의 뿌리가 되었던 개인의 자유의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데 사용한 것이 바로 생명과학의 실험이었다. 그래서 3부 8장의 제목이 '실험실의 시한폭탄' 일 것이다. 그런데, 하라리의 논증의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는 실험들에 대한 해석은 과연 사실일까? 만약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설령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모습일지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하라리의 맞춤 주문한 도구일 뿐이다. 하라리는 역사학자이다. 그는 심리학과 생명과학, 정치학, 사회학, 종교학 등 다방면의 이야기를 꺼내놓지만 다른 분야는 그 분야의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와 자신의 통찰을 통해 잘 믹싱하여 이야기를 꺼내놓는데, 그것이 진짜와 같이 들리도록 이야기를 풀어내는 천부적인 스토리텔러이다. 그가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운 실험은 1980년대의 벤자민 리베의 실험과 2013년에 있었던 존 딜란 헤인즈의 실험에 기반한다. 그 실험은 모두 뇌의 신호와 함께 인간의 행동이 일어나는 순간의 시간차를 밝혀냈는데 인간 행동 이전에 뇌에서 그 행동이 일어나도록 하는 신호가 포착되었다는 것이 핵심적인 사실이다. 이 '시간차' 반응을 자유의지가 없다는 근거로 강력히 주장하고 있으니 그의 토대가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다. 영혼이 없다고 주장할 때에는 그저 논리적 논증만 할 뿐이다.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영혼의 존재는 진화론과 아귀가 맞지 않는다. 진화는 변화를 뜻하며, 영원히 지속되는 실체를 생산하지 못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지닌 것 가운데 인간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것은 유전자이고, 유전자 분자는 ‘영원한 것’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돌연변이의 운반체이다.  p.152


과학은 그 존재의 시작부터 신이라든지 영혼의 존재를 배재한 상태에서 관찰을 통해 자연계의 현상의 규칙성들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비트겐 슈타인이 말했듯이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왔던 것이 과학인데, 하라리는 그 과학을 토대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성급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가시광선밖에 볼 수 없는 눈으로 세상을 보니 자외선과 적외선은 관찰되지 않기에 그것이 없다고 하는 논리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며 읽고 있는 중 하라리도 나의 생각과 똑같은 비유를 자신의 논거를 확증시키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어쨋든 논란의 여지가 많은 토대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 이후로 나오는 3부의 내용은 역사서나 미래예측서라기 보다는 SF에 가깝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영혼과 자유의지가 있다는 신념속에 바라보더라도 하라리가 하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을 가지고 다가온다. 그중에 한 문장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21세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값진 자료는 아마 개인적 데이터베이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겨우 이메일 서비스와 웃긴 동영상을 제공받는 대가로 첨단 기술기업에게 그 데이터를 넘기고 있다. (중략) 
구글과 페이스북, 그밖의 다른 알고리즘들이 모든 것을 아는 신탁이 되면, 그 다음에는 대리인으로 진화하고 마침내 주권자로 진화할 것이다. p.467


 신탁 -> 대리인 -> 주권자 로의 진행은 지금 현실로 일어나고 있다. 마치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앞날을 예견했던바와 같이 현재로서는 매우 유사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다. 물론 마르크스의 예견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처럼 하라리의 주장도 현실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운전을 할 때 네비게이션에 의존한다. 도로 상황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바탕으로 A에서 B까지 가는 최단경로를 알고 있는 네비게이션은 우리에게 우회전을 하라, 좌회전을 하라 라고 '신탁'을 해준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신탁일 뿐 그것에 따르고 따르지 않고는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의 몫이기 때문에 주도권은 여전히 인간이 갖고 있다. 그러나 자율주행이 보편화되고 아니 법규화되었을 때 좌회전을 하라 우회전을 하라라고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냥 A 에서 B 까지 가는 최단경로로 자신의 판단대로 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대리인'의 단계이다. 대리인의 단계에서는 인간의 욕망에 부합하는 경로가 어떤것이 가장 빠른지를 아는 인공지능이 그 욕망의 실현을 대신해주게 되면서 주도권을 어느정도 기계 알고리즘에 빼앗기는 상황이다. 지금 양다리 걸치고 있는  연인 X와 Y 둘 중에 누구와 결혼을 해야 할지 고민할 때 예전에는 '생물학적 데이터와 생활 습관 데이터를 기반하여 가장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X입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신탁'의 수준이었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을 위해 '대리인'의 위치에 있는 인공지능은 미리 사전 작업을 통해 X의 인공지능과 약속장소도 잡고 그와 잘 될 수 있는 모든 여건과 경로를 지정해서 인간을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 수준이 오면 인공지능은 '주권자'의 위치에 올라 인간은 알고리즘을 견고히 하는 데이터 생성장치 정도가 되어버리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이미 영화 매트릭스에서 본 세계라고 해도 과연이 아닐 것이다. 



이야기는 종교 -> 자본주의교 -> 인본주의교 를 흘러흘러 데이터교에까지 이른다. 데이터교는 세상을 기존의 가치와 이념대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로 바라보는 관점 전체를 말한다. 


일반인들은 경제가 밀을 재배하는 농부, 옷을 만드는 노동자, 빵과 속옷을 사는 소비자로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제란 욕망과 능력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해 그 데이터를 결정으로 전환하는 메커니즘이라고 생각한다. p.505


그리고 이런 데이터교는 하라리가 이미 없애버린 영혼, 자유의지, 의식, 감정 등을 대체하는 세상에서 가장 유력한 가능성이라 하겠다. 인간도 결국 유전자 염색체로 이루어진 물질이며 인간의 활동도 그것들의 전기적 화학적 신호의 오고가는 알고리즘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그 알고리즘을 통해서 데이터를 내놓는 장치가 인간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로크, 흄, 볼테르 시대에 인본주의자들은 “신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데이터교가 인본주의자들에게 그들이 한 대로 똑같이 돌려줄 차례이다. “신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인간 상상력은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산물이다” p.534


니체는 '신은 죽었다' 라고 이야기 했는데, 하라리는 '인간은 끝났다' 라고 말하는 것이 내가 읽은 호모데우스 였다. 


물론 하라리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단지 새로운 관점을 가능케 하기 위한 좋은 정보를 주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이 현시점에 우리가 처한 조건화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은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 다르게 행동하고, 미래에 대해 훨씬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p.542


그러나 그런 새로운 방식, 다른 방식으로의 변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엄포를 잊지 않는다. 과연 하리라가 말하는 인간이 데이터를 만드는 센서장치로 전락하고 데이터가 전 우주적으로 펼쳐지는 데이터교의 세상이 올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일단은 하라리가 그와 같은 주장을 하기까지의 논증과정에서 인간 존재를 닭과 비슷하게 만드는데 활용한 방식의 토대가 무척이나 허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자본주의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이 자본주의의 폭주를 막았듯이 하라리가 우려한 세상에 대한 생각은 앞으로 맞이하게 될 인공지능의 시대가 암울하게 진행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자신이 할말 다 해놓았으면서도 마지막에 조금 여운을 준다는 듯이 세가지 질문을 하며 책을 마무리 하고 있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이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앞서 하라리의 주장에 대한 여러 비판을 던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라리가 바라본 역사에 대한 지도는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세상의 여러가지 지점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보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인다. 그가 펼친 진화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입장의 세상이 모두가 동의되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설득력있게 전달되었으며 새로운 사실을 알게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니깐 말이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다른 사람들은 이 책으로 부터 무엇을 보고 느꼈을지 궁금해진다.  기회가 되면 독서토론을 가져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 토론에 참여하고 싶은 분이라면 꼭 읽고 댓글을 남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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