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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독서경영] 라틴어 수업 - 한동일

[김성민의 독서경영 - 라틴어 수업]


Non scholae sed vitae discimus.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 p.56



 첫 해  24명의 학생들로 조촐히 시작했던 수업이 몇년 뒤 300명이 넘는 학생들로 가득 매운 인기 강좌가 되었다고 한다. 지루하고 어려울 것만 같은 '라틴어' 수업에 무슨 일 있던 것인가? 어디선가 보았던 책에 대한 이러한 소개 영상에 호기심이 발했다. 관심목록에 올려두었었는데 독서토론모임에서 이 책을 선정하였기에 이때다 싶어 읽어보고 되었다.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한동일 교수의 인문학적 사색이 담겨있는 에세이 모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만약 라틴어를 배우고자 하는 분이 공부목적으로 선택한다면 책 제목에 낚이신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책 제목때문에 부담을 느끼셨던 분이라면 전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그저 삶에 대한 이야기, 역사에 대한 이야기, 유럽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로 되어 있기에 누구든 부담없이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동일 교수는 첫날 수업을 시작하며 '라틴어 수업을 왜 듣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그때 여러 답변들이 나오는데 그중에 한 교수님의 관심을 끌며 미소짓게 하는 답변이 '있어보이려고요' 라는 대답이었다고 합니다. 그냥 재밌고 솔직한 답변이라 생각하며 넘길 수도 있을 법한데, 한동일 교수는 '있어 보이려고요' 라는 답변으로 시작해서 '공부는 왜 하는가?' 라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으로 이어갑니다. 뭔가 거창한 포부와 의미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이처럼 소소하거나 남한테 보여주려고 시작을 했다가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게 공부가 아니겠느냐는 말로 이어갑니다. 첫 수업에 들어와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학생들을 생각해봅니다. 라틴어라는 고대 로마시대 쓰였던 언어를 배운다는 두려움과 긴장감에 있을지  모르는 학생들이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얼마나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을까요. 


실제로 이 책은 수업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엮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라틴어에 대한 단어와 문법공부가 아닌 어려운 공부 도중에 흥미를 끌고 동기 부여를 위해 간간히 했던 이야기만을 책에 썼을 것입니다.  만약 라틴어의 인칭이나 시제변화 격 변화등을 세세히 알려주는 책이었다면 책은 팔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치 학창시절 수업시간 진도를 나가던 중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오히려 그 수업 내용보다 더욱 또렷이 기억에 남듯이 이 책은 그런 내용들로 이루어진게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선생님을 통해 들려진 '카르페 디엠', 데카르트가 방법적 회의를 통해 내놓은 명제인 '코기토 에르고 숨'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로마의 음식, 로마인의 놀이, 로마 유학시절에 있었던 에피소드, 심지어 라틴어의 욕 이야기까지 무척이나 흥미로운 주제들로 엮여 있더군요. 읽으면서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이 책에 다양한 라틴어 용어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책에 나오는 라틴어 표현을 외웠다가 어딘가에 써먹으려 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는 이 책에 나오는 인생에 대한 교훈적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며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는 자기계발서로서 이 책을 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책을 읽어내려가며 이 책을 쓴 '한동일 교수' 라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언어를 배우고, 한국말로 사법시험을 치르는 것도 쉽지 않은데 타국의 언어로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의 대법원 변호사가 된 분. 자신을 공부하는 노동자라고 소개하는 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에 새로운 것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것이나 수평적인 환경과 언어에서 보다 다양한 생각을 나눌 수 있다라는 이야기, 혹은 학교가 목적이 아닌 인생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라는 이야기등은 어디에선가 한번쯤 들어봤던 말이기에 그 말 자체로는 큰 감흥이 없었을 말들입니다. 그런데 그 뻔한 이야기가 한동일 교수의 입을 통해 나오게 되면 뭔가 다르게 들리더군요. 지금 책 리뷰를 쓰고 있는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어쩌면 라틴어가 가지고 있는 세련되게 자리잡은 고급진 이미지, 혹은 명품 가치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라틴어를 빼고 (그것이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이야기하더라도 한동일 교수의 삶을 통한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다르게 들리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이 맡은 수업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그 수업에서 학생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의 마지막장은 그간 '라틴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보내온 편지들로 채워져 있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나오더군요. 한 학생이 보내온 편지에, 자신이 했던 말에 대해 교수님이 대답하셨던 인상깊은 말이라며 보내온 내용이었습니다. 


“교수님 저는 늘 받기만 하고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리은아, 네가 받은 모든 도움은 내가 주는게 아니야. 너에게 돌아갈 몫이고, 그저 나를 통해 너에게 전해질 뿐이다.”. p.293


저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창의성과 조직소통에 대한 강의를 하는 사람이기에 책을 읽을 때의 초점이 가르치는 자에 좀더 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한동일 교수를 통해서 교육을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태도와 전문성의 깊이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과 수업의 진행이 혼연일체가 되어 지식과 기술 그리고 태도의 부분을 전달해주는 최선을 다한 강의. 그것이 24명의 첫 강의가 입소문을 타고 300명이 넘는 인기 강의가 되게 했던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공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뒷편 제자들의 편지에도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교수님은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 하는 것이고,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p.299


그런데, 이런 말들은 단지 학생들에게 분만 아니라 평생 배우며 살아야 하는 이 시대의 '어쩌다 어른' 들에게도 필요한 교훈이 아닐까 합니다. 여러나라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보다 몇 마디 말로도 소통할 수 있는 어린아이의 대화속에서 언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나를 잊고 그냥 살아가고 있을 때 한번 쯤 주변과 나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책. 그런 책으로서 이 가을 한번 쯤 가볍게 읽어볼 만 하다고 생각하여 추천합니다.  긴 연휴를 지내고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신 분들에게 좋은 독서가 되시길 바랍니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