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의 독서경영 - 어떻게 살 것인가]
지는 해가 만드는 낙조는
일출만큼 눈부시지 않다.
하지만 아름다움으로 치면
낙조가 일출을 능가할 수 있다. p.121
(죽음을 생각하며...)
얼마전 본 '어벤져스 인피니터 워' 영화에는 타노스라고 하는 막강 파워의 빌런이 나온다. 그는 우주의 절반을 죽임으로써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것의 실행을 위해 인피니티 스톤이라고 하는 전투력을 상승시켜주는 보석을 찾아 나선다. 나는 타노스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무척이나 신선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어린시절 보았던 만화 영화에 나오는 악당들은 이유도 없이 지구에 쳐들어와서 이것저것 때려부수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사이코패스에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듯 한 캐릭터들이었다. 반면에 타노스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있고, 그것이 일면 설득력이 있어 보이기 까지 한다. 내용을 잠시 말해보자면 이렇다. 자신의 행성 타이탄이 급격한 인구증가와 자원고갈로 모두가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타노스는 급진적인 해결책을 주장한다. 인구의 절반을 무작위로 선정해 죽이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인구와 자원의 균형이 맞아 멸망하지 않고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도 안되는 주장에 타이탄 행성의 지도자들은 타노스를 다른 별로 내쫓게 되는데, 그 후 예정되어있던 타이탄 행성의 멸망이 현실로 벌어지고 만다. 자신의 행성이 이처럼 무력하게 멸망한 것을 지켜보면서 타노스는 자신의 생각이 옳고, 그 생각을 실천할 힘과 신념을 지닌 유일한 자가 자신이라는 것에 자각을 하고 '우주 반타작 프로젝트'를 행동에 옮기게 된 것이다.
갑자기 책 이야기가 아닌 영화속 악당을 이야기 한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이 책의 내용과 매우 관련이 높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 타노스와 같은 존재의 사례가 등장한다. 캄보디아의 독립운동가이자, 공산주의 신념으로 가득찼던 폴 포트라는 인물인 그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신념에 따라 올바른 국가를 만들기 위해 지식인과 자본가를 비롯해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해서 150만명이 넘는 사람을 살해했다고 한다. 소위 킬링필드 라고 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유시민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결한 이상, 바위처럼 굳건한 신념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이상과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을 써도 정당하다는 생각은 자신과 타인의 삶을 치명적으로 위협한다. p.272
물론 우리는 폴 포트와 같은 강한 신념도, 그만한 권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며 드는 생각은 신념의 모양과 정도에 차이가 있고 휘두를 수 있는 힘이 다를 수는 있지만 나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혼 초에 나는 아내와 무수히 많은 다툼을 벌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헤프닝이었고 웃으며 넘겼던 일들이었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다 보니 언성이 높아지곤 했던 것이다. 갈등의 사건이라는 것이 우주를 구한다거나 국가발전에 이바지한다거나 하는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냥 일주일째 세면대 위에 올려진 녹슨 동전 때문이었고, 집에 있으면서 받지 않았던 전화 때문이었다. 내 속에 있던 신념은 매우 심플했다. 물건은 제자리에 있어야 하며, 집안일을 맡고 있는 아내가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신념, 전화는 세번이 울리기 전에는 받아야만 하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고 기본적인 전화예절이라는 신념.. 어디서부터 왔는지 모를 이런 신념으로 인해 나는 가정이라는 행성에 살고 있는 유일한 생명체인 아내를 타노스처럼 해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신념에 대한 책이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죽음에 관한 책이다. 아마도 대략 책의 절반은 죽음을 이야기 하고 있지 않나 싶다. 카뮈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왜 자살이 가장 철학적 질문이 되는 것일까? 타인의 죽음은 그저 하나의 개체의 사라짐이지만, 나의 죽음은 전 우주의 사라짐을 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어떻게 죽느냐가 어떻게 사느냐만큼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또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더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은 더 큰 축복으로 다가온다. p.339
20대와 30대 때는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뭔가 맞는 말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실제로 마음에 와 닿진 않았다. 그저 멋있는 수사적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지 아직 팔팔한 내가 죽음을 생각할 때는 아니라는 자신감 혹은 무지에 싸여 있어서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내가 40을 넘어 이제 남성 평균 기대수명의 나머지 절반을 향해가게 된 지금에 있어 조금씩 그 말이 와닿는다. 저자와도 같이 가까운데가 보이지 않는 원시가 찾아오는 나의 신체적 변화.. 단어나 특정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두뇌의 지적 능력의 변화가 책의 내용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에게 해주는 말로 다가왔던 것이다.
갑자기 책 한권을 읽었다고 해서 나의 삶의 태도와 라이프 스타일이 변하는 건 아니겠지만 내가 잊고 있었던 가치에 대해서 하나씩 건드려줄때 자극이 많이 되는 독서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서 시원시원하고 대화하듯 짤막짤막한 그의 문체가 글을 쉽게 읽도록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한때 정치인으로서 다양한 사람들을 대하며 의식했던 습관이 배어서인지 어디 하나라도 과격하게 치우치거나 하는 것이 없게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이 보였다. 그래서일까 이런 작가의 태도가 어떤 내용을 말해도 독자로 하여금 부담감없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 같았다. 이중 내가 하나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할 구절이 있어 인용하고 독서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다.
나이가 많이 들면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으면서 후배들이 지혜를 구하러 오면 조심스럽게 조언을 하는 선에 머무르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조언을 할 때도 꼭 옳은 생각은 아닐지 모른다는 단서를 붙이면 더 좋을 것이다. p.77
죽음에 이르기 까지 날마다 성장과 성숙이 있길 기대한다.
김성민의 북리지 - 함께 성장하는 책 리더십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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